워싱턴서 무기통제 등 국장급 협상 예고
기후위기 공동대응 논의는 이미 진행중
美 동맹국들의 對中정책도 변화 움직임
무역갈등 빚던 호주 총리 나흘간 訪中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미국과 중국 관계가 견제·제재 일변도에서 소통·대화로 변화하면서 이제 관심은 이르면 이번 주 안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 주석의 실제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에 집중되고 있다. 양국은 회담 개최 시기와 장소 등에 대해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으나 상대국에 대해 우호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정상회담을 향한 초 시계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미중이 세계를 양분하는 주요 2개국(G2)이고, 상대를 견제하며 서로의 진영을 공고히 다지고 있다는 점에서 만남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정세에 긍정적 효과를 주기에 충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있으며 시 주석은 경기 침체와 청년실업, 서방과 단절 등을 직면한 만큼 두 지도자 모두에게 '국내 정치 리더십 회복'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다만 미국의 대중국 고율 관세와 반도체 제재,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러시아-우크라이나, 대만, 북한 핵, 군비 감축 등 입장이 갈리는 부분도 많아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성과 부분에선 성급한 낙관을 경계하는 의견 역시 상존한다.
■ 美, 中향한 모든 정책의 끝은 '정상회담'
현재 미중 양국에서 벌어지는 상당수의 관계는 대부분 정상회담으로 귀결된다.우선 미중은 오는 6일 워싱턴에서 핵 군축을 주제로 만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자리에선 무기 통제와 비확산, 오판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으로 알려졌다.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도 지난 2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미는 다음 주 워싱턴에서 국장급 군비 통제 및 확산 방지 협상을 한다"면서 "중국과 미국은 양측이 합의한 바에 따라 국제 군비통제조약의 이행과 확산 방지 등 광범위한 주제에 대해 대화하고 교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기존 핵 강대국인 러시아와는 이미 오래전 핵 군축 협정을 체결했으나 상대적으로 핵전력이 약했던 중국과는 아직 핵 군축 관련 협정을 맺지 않았다.
중국은 미국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서명했다. 하지만 미국과 러시아 간 핵전력 제한 협상에 참여하라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제안은 핵전력이 미국과 러시아에 비해 소규모라는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달 보고서에서 지난 5월 말 기준 중국의 운용 핵탄두가 500기를 넘어섰으며 2030년에는 1000기에 이를 것이라면서 2035년까지는 중국이 핵전력을 증강해 나갈 것으로 내다봤다. WSJ은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이후 처음으로 중국과 핵 군축 회담을 준비하고 있다"며 "이번 회담은 양국이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산적한 난제에 대한 논의를 시작한 가운데 열린다는 점도 주목된다"고 평가했다.
또 존 케리 미국 대통령 기후문제 특사는 지난 4일부터 캘리포니아주 서니랜드에서 셰전화 중국 기후변화 특사와 만나 기후 위기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1월 발리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기후 위기에 공동 대응하기로 한 것에 기초한 후속 협의라고 미 국무부는 설명했다.
중국 생태환경부도 소셜미디어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양측이 기후변화 대응 협력 문제와 함께 이달 말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성공 지원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케리 특사와 셰 특사는 지난 7월 중국에서 만나 온실가스 저감 방안 등을 논의했고, 지난달에도 화상회담을 통해 기후변화에 공동으로 대응하자며 한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중국과 고위급 협의는 올해 6월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 이후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으로 이어지며 지속되고 있다. 지난 10월 26∼28일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미국을 방문해 블링컨 국무장관과 회담하고, 바이든 대통령을 예방하며 화답하기도 했다.
10월 30일에는 성김 미국 대북특별대표(주 인도네시아 미국대사 겸임)가 류샤오밍 중국 정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와의 영상 협의를 갖고 북러 군사 협력과 중국의 '북한 국적자(탈북민) 송환' 관련 보도에 대해 논의했다.
마크 램버트 국무부 중국 조정관 겸 부차관보 역시 3일 베이징에서 훙량 중국 외교부 국경해양사 사장(국장급)과 만나 남중국해와 동중국해 문제 등 다양한 해양 현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통상 외교에서 정상회담 이전에 장관들이 실무진을 대동해 협의에 나서는 것은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받아들인다.
■ 中 공들이고, 美동맹국 기조도 변화
미국보다는 적극적이진 않지만 중국도 정상회담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 포착된다.
시 주석은 지난 3일 장쑤성 쑤저우에서 열린 '제5회 중미 자매도시 회의'에 보낸 서한에서 "미중 관계 기초는 민간에 있고 힘의 원천은 인민의 우호에 있다"며 "우호 도시는 양국 인민의 우의를 심화하고 상호 이익과 상생을 실현하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10월 25일 미국 뉴욕에 있는 미중관계 전국위원회에 보낸 서한에서도 "중국은 미국과 함께 의견 차이를 타당하게 관리하고 글로벌 도전에 공동으로 대응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같은 달 9일 중국을 방문한 미국 민주당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 일행을 만난을 때는 "중미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관계"라며 "중미 관계를 개선해야 할 이유가 1000가지가 있지만, 양국 관계를 망칠 이유는 하나도 없다"고 양국 관계 개선 필요성을 역설했다.
중국 상무부는 자국이 제재를 가했던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을 향해 투자 환경 개선과 서비스 제공을 약속하며 '화해' 메시지를 발신했다. 중국 당국 입장을 대변하는 관영 매체들도 "중미 관계는 하락을 멈추고 조속히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 궤도로 복귀해야 한다. 협력은 항상 중미 양국에 최선의 선택"이라며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이다.
미중 화해 모드는 미국의 동맹 혹은 우호국으로 불리는 주변국 대중국 정책에서도 읽을 수 있다. 이들 국가가 미국의 반중국 정책에 동참해온 만큼 기조 변화 자체도 미국의 영향이 일정 부분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 가능하다.
중국과 무역 갈등을 빚던 호주의 앤서니 앨버니지 총리가 4일 저녁 중국 상하이에 도착해 나흘간의 방중 일정을 시작했고, 제6회 상하이 국제수입박람회에는 호주 기업 2000여개 이상이 참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6일 베이징에서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한다.
또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지난 3일 시 주석과 화상으로 만나 "중국과 협력해 인적 교류를 촉진하고, 유럽연합(EU)과 함께 중국 관계의 긍정적 발전을 촉진할 의향이 있다"고 피력했다.
에마뉘엘 본 프랑스 대통령 외교 보좌관은 10월 30일 외교부장과 '제24차 중프 전략대화'를 갖고 "프랑스는 중국의 발전을 제한할 의도가 없다"면서 "EU와 중국은 경쟁자가 아닌 파트너"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홈페이지에서 주장했다.
제임스 클레벌리 영국 외무장관은 올해 8월 베이징을 방문해 왕이 부장, 한정 국가부주석을 잇따라 만났다. 고위급 인사가 중국을 찾은 것은 홍콩 민주화 시위 이후 5년 만이다.
한국은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항저우 아시안게임 참석을 계기로 시 주석과 만나 그의 방한을 요청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이후 외교의 무게 중심을 미국으로 대폭 기울였던 그간 행보와는 다소 차이가 난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갈등 등과 별개로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가 잇따라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 성과 위한 난제 산적
그러나 양국 관계에 청신호만 켜진 것은 아니다. 미중은 아직 미국의 대중국 고율 관세와 반도체 제재, 중동문제, 우·러 전쟁, 대만, 신장위구르 인권, 북한 핵, 군비 감축 등을 놓고 여전히 서로를 견제하기 때문에 성과를 위해선 넘어야 할 난제도 산적해 있다. 미국은 2020년 1월 체결한 1차 미중 무역합의(2020년부터 2년 동안 중국이 미국 제품 수입을 2017년 대비 2000억달러 확대)를 중국이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하는 반면 중국은 코로나19 때문에 지킬 수 없다고 맞선다.
또 미국은 인공지능(AI)용 등 첨단 반도체에 대한 대중국 수출 통제를 한층 강화하는 방안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미국은 시 주석의 핵심 대외 확장전략인 일대일로(육·해상 신실크로드) 세력 약화를 위한 동맹 결성했으며, 우호·동맹국과 함께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보고 있는 대만해협·남중국해에 자국 항모를 계속 보내고 있다.
반면 중국 역시 희토류를 비롯한 전략자원 수출통제, 일대일로 10주년 정상포럼, 반간첩법 시행, 주요7개국(G7) 대항마인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경제 5개국) 참여국 확대 등으로 저항하는 중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하마스 전쟁에선 미국은 이스라엘, 중국은 팔레스타인으로 치우쳐진 메시지를 던지거나 정책을 펼친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이미 시작부터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중국의 '레드라인'인 대만을 놓고는 미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면서도 대만관계법 등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며 중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신장 인권 문제 또한 풀리지 않고 있는 숙제다.
핵군축 회담의 경우 국장급 협상에는 중국이 응하면서도 미국의 고위급 군사 회담 재개 요청에는 답변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왕이 부장은 10월 26∼28일 방미 마지막 날 싱크탱크 애스펀 연구소 주최 좌담회에서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며, 자율주행에 맡겨둘 수 없다"고 지적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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