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와 비누 제조법은 구한말에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탁비누 제조업은 1906년 서울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1933년 2월 신문을 보면 세탁비누 공장이 전국에 25곳 있는 것으로 돼 있다. 계림비누, 월성화학, 삼흥비누, 삼신비누, 청조비누, 선광비누 등 비누 제조업체들이 당시 광고에서 확인된다. 광복 후 이 공장들은 우리 손으로 가동했을 것이다. 이후 6·25전쟁으로 비누 공장들은 대부분 파괴됐다.
종전 후 공장은 금세 재건돼 1954년 7월 신문을 보면 전국에 119곳의 소규모 비누 공장이 들어선 것으로 돼 있다. 다만 미제와 일제 비누가 대량으로 들어오는 바람에 품질이 떨어지는 국산 비누들은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그래도 일부 기업은 꿋꿋이 견디며 지금까지도 건재하다. 1947년 5월 서울 서소문동에서 설립돼 세탁비누를 판매하기 시작한 '무궁화비누'는 현재도 세제 전문기업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궁화비누는 수십번의 실험 끝에 적절한 강도와 우수한 세탁력을 갖춘 비누를 개발, 전국에서 상인들이 무궁화비누 본사로 몰려들었다고 한다.
중장년층에게는 익숙한 이름인 '다이알비누' 제조업체인 동산유지는 1959년 12월 부산 범일동에 설립됐다. 1969년에는 국내 최초로 샴푸를 판매했고, 인삼비누는 외국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규모를 키워나가던 중에 동산유지는 정부가 비누를 중소기업 특화업종으로 지정하면서 타격을 받았다. 4만t의 세탁비누 생산시설 가동을 중단해야 했다. 경영난에 빠진 동산유지는 여러 차례 구조조정을 거쳐 칫솔 제조업체 크리오에 인수돼 동산 C&G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팔고 있다.
세제 제조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기업은 애경이다. 1954년 채몽인 창업주가 서울 구로동에서 창업한 애경유지공업이 시초다. 1956년 1월 애경은 국내 독자기술로 만든 최초의 화장비누인 '미향'(美香)을 내놓았다(동아일보 1959년 7월 18일자·사진). 세탁비누로 세수를 하던 당시 은은한 향이 나는 미향은 여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출시 한 달에 100만개가 판매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당시 공장이 있던 인천과 서울 사이를 오가는 화물차란 화물차에 전부 애경 제품이 실려 있었다던 전설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미향비누와 함께 오늘날의 애경그룹을 만들어 낸 제품은 최장수 주방세제인 '트리오'다. 쌀뜨물로 설거지를 하던 주부들에게 기름기를 제거해 주는 트리오는 가히 '혁명적인 세제'였다. 그야말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1966년 12월 출시된 트리오 생산량은 4년 만에 무려 18배나 증가했고, 시장점유율이 70%에 이르렀다. 야채, 과일, 식기 3가지를 동시에 닦을 수 있다는 의미의 '트리오'는 한국기생충박멸협회의 우수 추천상품으로 5년 연속 선정되기도 했다. 트리오는 조미료의 '미원'처럼 주방세제의 대명사가 됐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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