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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토요일의 도쿄 혼네> ④하치, 시부야
도쿄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 
일본이 사랑하는 '하치', 100살 되다
시부야, 논밭에서 日트렌드의 성지로
외국인·기업 '핫플'로


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노견이 된 하치의 생전 모습. 시부야구 향토박물관 제공

도쿄에서 개를 키운다는 것

【도쿄=김경민 특파원】 일본에서 고양이의 '집사', 개 반려인이 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보통 집들이 한국보다 작은 데다 입양부터 키우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일단 입양부터 쉽지 않습니다. 한국처럼 유기견이나 유기묘를 입양하는 경우에는 비용이 들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애완동물 숍에서 구매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일단 입양하는 데만 200만~300만원은 싼 편입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품종은 1000만원을 웃돌기도 한답니다. 여기다 예방접종을 비롯한 각종 의료비와 사료값 등을 고려하면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도쿄 중심가에서 개를 키우면 부자'라는 인식도 있습니다.

그래도 반려동물에 대한 일본인의 사랑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현재 약 1600만마리의 개와 고양이가 있다고 추계되는데요. 이는 일본의 15세 미만 인구(1435만명)보다 많은 숫자라고 합니다.

일본에서 볼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캣 맘'입니다. 한국에서는 캣 맘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 있잖아요. 일본에서는 남에게 피해를 주기 싫어하는 국민성 영향인지 캣 맘을 볼 수 없습니다. 또 철저한 등록제 덕분에 도심의 길거리에서는 유기견, 유기묘도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이런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반려견은 '충견 하치코(ハチ公)'이라고 불리는 개입니다.

지난해 11월 11일 오타테시에서는 하치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동상에 헌화한 한 초등학생은 "하치는 소중한 사람을 계속 기다리는 아름다운 마음을 주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낭독했습니다. 한 쪽 무대에서는 하치와 같은 아키타 한마리가 사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이벤트를 열어 행사장의 분위기를 띄웠습니다.

유난을 떤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하치코를 캐릭터화하고, 하나의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일본이 사랑하는 '하치', 100살 되다

지난해 100살을 맞은 하치는 자타공인 일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개'일 겁니다. 한국에 돌아온 백구(1993년에 대전으로 팔려갔다가 7개월 만에 약 300㎞의 거리를 되돌아 진도로 돌아온 진돗개)가 있다면 일본엔 하치가 있습니다.

일본 전통 아키타 품종인 하치는 지금으로부터 101년 전인 1923년 11월 10일에 아키타현 오타테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사망한 주인을 시부야역 앞에서 끝까지 기다리다 죽은 '하치(ハチ)'에게, 충성심이 높다는 의미에서 '공(公)'을 붙여 '하치코(ハチ公)'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입니다.

하치는 생후 50일 정도에 도쿄 시부야에 살고 있던 우에다 에이자부로 도쿄대 교수의 집에 입양됐습니다. 당시 우에다 교수는 시부야역에서 전철을 타고 도쿄대학으로 출퇴근했습니다. 하치는 항상 역앞까지 교수를 배웅하고, 다시 주인이 올 때까지 시부야역에서 기다리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1925년 우에다 교수가 도쿄대에서 급사한 이후에도 하치는 10년 가까이 교수가 살아있을 때처럼 시부야역에 교수를 마중 나왔습니다. 이 스토리가 아사히신문에 실리면서 하치는 충견으로 일약 유명세를 치렀습니다.

1934년 기부금이 모여 청동상이 세워졌고, 화려하게 제막식도 열렸습니다. 청동상은 사실 하치가 살아 있을 때에 세워진 것이죠. 하치의 '충성'이라는 이미지가 당시 일본 제국주의 선전에 딱 맞았기 때문입니다.

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1948년 시부야역 앞에서 부활한 충견 하치코 동상 제막식. 시부야구 향토박물관 제공

하지만 하치는 11살이 되던 그 이듬해에 죽었습니다.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고 있던 일본의 전세가 급격하게 꺾이던 때입니다. 전쟁 중 자원 조달에 시달린 일본군은 급기야 많은 시민들에게 사랑을 받던 하치의 청동상마저 군수물자로 공출했습니다. 종전 하루 전인 1945년 8월 14일의 일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하치코 동상은 1948년 종전기념일(8월 15일)에 연합군 총사령부 관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워진 두번째 동상입니다. 하치의 두번째 동상은 패전국으로 전락한 일본의 부흥이라는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

하치의 사후 도쿄대학 농학부에서는 병리해부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부검도 흔하지 않던 시절, 단순한 개 한 마리가 아니라 '국민 개'로서 당시 하치가 얼마나 전폭적인 사랑을 받았는지 가늠케하는 대목입니다.

부검 결과 심장과 간에서 사상충이 대량으로 나왔습니다. 이로 인해 복수가 고여 고통 받았고, 결국 사인에 이르게 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위에서는 닭꼬치의 꼬챙이가 3, 4개 발견됐는데, 이 꼬챙이에 의해 소화기관이 손상됐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부검 후 하치의 시신은 박제돼 국립과학박물관에 지금도 보존돼 있습니다.

하치 동상은 하치가 태어난 오타테시에도 하나 더 있습니다. 시부야역 동상과 비슷한 시기에 세워졌지만 이 동상 역시 태평양전쟁 당시 쇳물로 녹여졌다가 1987년에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2012년에는 우에다 교수의 고향인 미에현 쓰시의 긴테츠히사이역 앞에 우에다 교수와 하치가 마주 보는 모습의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습니다.

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 아오야마 묘지에 있는 우에다 에이자부로 도쿄대 교수의 무덤. 오른쪽에 그의 충견 하치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시부야구 향토박물관 제공

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하치의 박제. 일본 국립과학박물관 제공


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아키타현 오타테시에 서 있는 하치코 동상. 공동취재단

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하치의 탄생 100주년을 축하하고 '충신 하치코' 동상에 화환을 씌우는 지역 초등학생. 공동취재단

논밭에서 日트렌드의 성지로

하치가 다녀간 100년의 시간 동안 시부야 일대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을 했습니다. 동상이 된 하치는 같은 자리에서 일본의 변화를 목도했습니다.

지금 시부야는 일본의 유행을 선도하는 화려한 문화 일번지인데요. 1885년에 일본 철도 시나가와 선(현재의 JR 야마노테 선)역이 개업했을 무렵의 시부야는 전원 지대였습니다. 당시 시부야역의 하루 이용객이 당시에는 겨우 십여명에 불과했다고 합니다. 현재 하루 26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 유명한 스크램블 교차로를 오가면서 시부야역을 이용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 곳이 얼마나 변모했는지 실감이 납니다.

특히 일본의 부흥을 세계에 각인시킨 1964년의 도쿄 올림픽은 시부야에도 전기가 됐습니다. 그 때 도로 교통망, 인프라가 정비되면서 현재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1971년 11월에는 시부야 폭동 사건으로 전국이 떠들썩했습니다. 미군 주둔을 인정한 오키나와 반환협정 조인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대가 폭도화해 기동대 등을 화염병과 쇠파이프로 습격한 사건입니다.

1973년 시부야는 대표 쇼핑몰인 '파르코', 1979년 '시부야 109'가 잇따라 문을 열자 유행에 민감한 10~20대가 모이는 젊은이들의 거리로 발전했습니다.

1980년대 시부야 캐쥬얼 스타일을 뜻하는 '시부카지', 'DC브랜드' 등 이른바 일본의 버블패션이 각광을 받았고, 진하고 검은 얼굴 화장을 드러냈던 '갸루패션'에 이르기까지 시부야는 시대를 대표하는 패션과 음악이 탄생하는 무대로 탈바꿈했습니다. 요즘 시부야-하라주쿠가 젊은이들의 패션 성지가 된 것도 이 때부터입니다.

1987년에는 영화 '하치 이야기'가 개봉하면서 잠시 기억에서 밀려났던 하치가 다시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9년에는 미국에서 리처드 기어가 주연을 맡은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등 하치의 스토리는 해외에서도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부터 하치코 동상은 만남의 장소 뿐만 아니라 방일 외국인들이 찾는 관광지로 큰 인기를 끌게 됐습니다.

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갤럭시 Z 플립4 X BTS' 디지털 영상이 상영되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 시부야 미야시타공원에서 시민들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사진=김경민 특파원

101살 '충견' 하치와 시부야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 시부야역 하치코 동상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단

"거긴 꼭 가야돼", 더 '힙'해진 시부야, 외국인·기업 '핫플'로

이제 시부야는 방일 외국인 10명 중 6명이 찾는 국제적인 관광 도시가 됐습니다.

'2022년도 국가·지역별 외국인 여행자 행동 특성' 조사에 따르면 방일 외국인이 방문한 도내의 장소(복수 회답)는 시부야가 58.4%로 가장 많았습니다. 방문 장소 중 가장 만족한 장소로 응답률이 높았던 곳도 시부야였습니다. 특히 시부야는 이번 조사에서 처음으로 긴자를 누르고 1위가 돼 명실상부 도쿄 최대의 번화가로 자리잡았습니다.

시부야에서는 최근 100년를 내다보는 대규모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2018~2020년에 걸쳐 '시부야 스트림' '시부야 솔라스타' '시부야 후쿠라스' '미야시타 공원' 등의 상업 시설과 사무실이 연달아 개장했습니다. 향후 '시부야 사쿠라 스테이지' 등도 오픈을 앞두고 있습니다.

해외 스타트업들도 시부야로 모이고 있습니다. 시부야구는 지난해 8월까지 미국, 한국, 스웨덴 등에서 11개사를 유치했습니다. GMO 인터넷그룹, 사이버 에이전트, 구글 일본법인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대표적입니다.

국내외 스타트업과 글로벌 기업들이 속속 모여들면서 특유의 문화가 발산되고, 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선순환이 시부야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다시 얼굴을 바꾸는 시부야를 향해 언론들은 '잘한 재개발'의 모범 사례로 꼽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간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 시부야는 옛 모습을 찾기 힘들 정도로 변화했습니다. 그러나 충견 하치만은 한 자리에서 변함 없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본에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문화가 있습니다.
혼네는 진짜 속마음이고, 다테마에는 밖으로 보여주는 겉마음입니다. 개인보다는 조직·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좀처럼 혼네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일본은 다테마에의 파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