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출현으로 전국 몸살
마약·가짜뉴스도 닮은 꼴
과학적 근거로 박멸해야
전국이 빈대로 아우성이다. 기숙사, 가정집뿐만 아니라 KTX, 목욕탕 등 공공시설에도 빈대 출현 주의보가 발령됐다. 지하철이나 버스 승차 때도 행여나 빈대가 옮지 않을까 빈 자리 앉기가 꺼려지는 풍경이다.
빈대가 무서운 이유는 우리가 잠재적 피해 가능성을 얕잡아봤기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국내에서 빈대가 사라져 출몰에 대한 경각심이 사라졌다. 게다가 빈대가 미칠 사회적 피해를 가벼이 봤다. 그런데 빈대의 피해가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다. 빈대는 커봐야 최대 6㎜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데 빨아먹는 피의 양은 무려 모기의 7배 이상이다. 그만큼 흡혈시간도 최대 10여분 정도로 길고, 한 군데만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피를 빨아먹는다. 빈대에 물리면 많이 아프고 가려움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빈대를 때려잡으면 될 일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게 간단치 않은 모양이다. 시중에서 파는 살충제를 뿌려봤자 무용지물이란다. 국내에 유입된 빈대들은 이미 유럽에서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이 발달돼 기존의 살충제론 효과를 볼 수 없다. 육안으로 구분하기 힘들 만큼 크기도 작고, 서식지도 침대나 소파 틈새 등이어서 확인도 어렵다. 배설물을 통해 빈대 유무를 확인하거나 아예 물려봐야 알 수 있다. 확실한 처방법은 고온의 스팀으로 빈대가 서식할 부위를 다리는 것이다.
빈대의 특성을 파고들다 보니 우리가 흔히 쓰는 '빈대 붙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빈대가 흡혈 상대를 찾으면 숙주가 죽든 말든 상관없이 떼로 몰려 피를 빨아댄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숙주에 달라붙어 기생한다. 시간이 갈수록 빈대 개체수만 늘어나고 숙주는 말라죽는다. 워낙 하는 짓이 염치가 없기에 '빈대도 염치가 있다'는 말이 등장할 정도다.
그러고보니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빈대들이 맴돌고 있다. 사회를 좀먹는 빈대들 말이다. 보이스피싱, 가짜뉴스, 마약이 대표적이다. 불법 보이스피싱 피해가 사그라들 기미가 안 보인다. 금융 건전성을 갉아먹는 보이스피싱의 무대는 규제로 포착되지 않는 음성 지역이다. 아울러 서민들의 고혈을 쉼 없이 빨아먹는다는 점에서 빈대와 빼닮았다. 가짜뉴스는 어떤가. 왜곡된 뉴스와 정보를 유통해 사회의 건전한 소통을 왜곡하고 불법 이익을 챙긴다는 점에서 또 다른 빈대 유형이다. 마약은 말할 것도 없다. 점 조직을 활용해 음성적으로 유통하는 점을 비롯해 막대한 범죄이익을 챙겨간다는 점에서 빈대의 특성을 그대로 닮았다.
빈대의 치명적인 위험은 근절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1980년대까지 기승을 부리던 빈대를 뿌리뽑을 수 있었던 건 전국가적 박멸작전 덕분이다. 중앙과 지방정부가 해마다 소독차로 살충제를 뿌려대는 등 대대적인 단속을 지속한 덕분에 이룬 성과다. 집단 내무반 생활을 하던 군에서도 빈대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주말이 되면 사병들이 매트리스와 모포를 햇볕이 잘 드는 연병장에 하루 종일 말린 뒤 저녁 무렵 차곡차곡 개어서 다시 내무반에 가져오곤 했다. 이런 번거로운 위생 예방활동을 주말마다 했다.
사회의 빈대도 마찬가지다. 일시적 혹은 임시방편적인 수단으론 사회의 건강성을 좀먹는 빈대를 박멸할 수 없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말이 있다. 예부터 빈대가 심해지면 집에 장작을 많이 때워 집의 온도를 급격하게 올려 빈대를 물리쳤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고작 빈대를 잡으려다 무리한 수단을 동원해 집을 태워먹는다는 부정적 의미로 활용된다. 요즘 빈대는 기존의 살충제로 근절할 수 없다. 사회적 빈대를 잡을 때도 명심할 말이다. 박멸하려면 초가삼간 다 태워먹는다는 각오로 발본색원해야 한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사회의 건강성을 해치는 빈대를 잡으려면 합리적 원인 파악이 우선이다.
그리고 과학적 해법을 동원해야 한다. 보여주기식 탁상행정으로 접근했다간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이게 우리 사회의 빈대 퇴치법이다.
jjack3@fnnews.com 조창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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