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부터 지난 8월까지 기준 외교관·가족 저지른 범죄 47건
외교부 초치 처리는 단 1건 불과
강력범죄까지 면책 적용 '논란'
일각 "시대착오적" 반대 목소리
#.1 경찰은 지난 11일 새벽 3시께 '음주운전이 의심되는 차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 인근으로 출동했다. 현장에서 경찰은 운전자 A씨에게 음주 측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A씨가 거부해 1시간가량 실랑이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측정 거부 혐의)으로 현행범 체포했다. 조사 과정에서 A씨가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 소속 외교관으로 확인됐다. 그렇게 A씨는 면책 특권으로 풀려났다.
#.2 지난 7월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소속 외교관은 서울 이태원의 주점에서 직원에게 주먹을 날렸다. 현장 출동한 경찰까지 폭행하는 등 난동을 부렸으나 외교관 면책특권 때문에 조사 받지 않고 풀려났다.
주한 외교관들의 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폭행 등 강력범죄까지도 면책특권이 일괄 적용돼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선 면책특권이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 47건 중 초치 단 1건
1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2021년부터 지난 8월까지 주한 외교사절과 그 가족들로 인한 사건·사고는 47건에 이른다.
이 가운데 외교부가 주한대사를 초치한 것은 단 1건이다. 지난 7월 25일 주점 직원과 경찰관을 폭행한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 소속 외교관 B씨 관련 사건과 관련해서다. B씨 본인은 만취 상태로 주점에서 난동을 부려 현행범 체포됐으나 면책특권으로 조사도 받지 않고 풀려난 바 있다.
캄보디아 외교관 A씨의 음주운전과 관련해서도 외교부가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제한적이다. 외교부는 지난 13일 해당 대사관 관계자를 초치했으며 해당 대사관에 경고 및 재발방지를 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A씨 당사자에게는 음주운전 재발 시 자진 출국을 권유할 예정이라고 통보하는 수준에 그쳤다.
외교관 면책특권은 외교 협약인 '비엔나 협약' 31조에 따라 보장된다. 대상은 외교관과 그의 가족이며 면책특권으로 보호받는 범죄 종류에 제한이 없다. 외교관의 본국 정부가 면책특권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외교관과 그 가족들이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으며 주재국 경찰은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불송치하게 된다.
■ "이유 있지만 시대착오적"
범죄를 저지른 주한 외교관 대부분 면책특권을 적용받으면서 시민들로부터 공분을 사는 사건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에는 한 벨기에 대사의 부인 C씨가 옷가게 직원과 시비가 붙어 폭행한 사건이 벌어졌으나 처벌 할 수 없었다. 지난 2021년 미국 대사관 직원 부부의 경우 가짜 명품 제품을 판매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면책특권 반대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국 외교관 보호라는 가치가 존재하지만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인 것이다.
송명진 법률사무소 세찬 변호사는 "조약을 완전히 부인할 수는 없지만 형사범죄에 대해선 범죄 종류와 상관없이 너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며 "국가간 법 차이가 적은 곳도 있어 시대착오적인 조항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김영식 서원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비엔나 협약은 1·2차 세계대전 때 만들어져 요즘 실정과는 잘 맞지 않는 제도"라며 "외교관이라고 해서 해당 국가에서 강력범죄라든지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 간 합의를 통해 비엔나 협약에 대한 세부조정이 필요하다"며 "중대범죄에 대해서는 외교관 면책특권을 자동으로 포기하게 하는 등 조정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