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결선 투표에서 극우 후보 밀레이 55.7% 득표로 승리
심각한 경제난으로 좌파 페론주의 반감 증폭
밀레이, '막말' 쏟아내는 '아르헨 트럼프'...달러 도입 공언
진짜 트럼프, 밀레이 당선에 "자랑스럽다"
공약 실행하기 어려워, 좌파 정권 교체는 시장에 긍정적
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자유전진당(LLA)의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대선 승리 연설을 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1983년 민주화 이후 ‘페론주의’ 좌파 운동이 지배하던 아르헨티나에서 '무정부 자본주의자'를 자처하는 극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외신들은 현지에서 극우 후보에 대한 불안감이 크지만 물가상승률이 142%에 달하는 최악의 경제난 때문에 좌파 정권 ‘심판론’이 힘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신생 극우, 해묵은 페론주의 이겨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에 따르면 아르헨티나에서는 19일(이하 현지시간) 대선 결선 투표가 열렸다. 이날 개표율 99.3% 기준으로 자유전진당(LLA)의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가 55.7%의 득표율을 기록해 44.3%를 얻은 ‘조국을 위한 연합’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를 제쳤다. 조국을 위한 연합은 좌파 집권당인 정의당(PJ)을 중심으로 올해 결성된 좌파 및 중도 정당 연합체다. 밀레이는 지난달 대선 투표에서 29.99%의 득표율로 마사(36.78%)에 밀렸지만 1~2위 후보만 참여하는 결선 투표에서 역전극을 이뤄냈다.
LLA는 2021년에 설립된 정당으로 아르헨티나 상원 72석, 하원 257석 가운데 각각 8석, 38석을 가지고 있으며 23석의 주지사 자리 가운데 1석도 얻지 못한 군소 정당이다.
그러나 LLA는 심각한 경제난 가운데 페론주의(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 이념) 정부를 공격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국유화와 복지 확대 등에 과하게 집중하여 좌파 진영 중에서도 대중영합주의로 불리는 페론주의는 지난 1983년 아르헨티나 민주화 이후 현지 정계를 지배했다. 민주화 이후 12명의 대통령 및 임시 대통령 가운데 8명이 페론주의를 주장하는 PJ 소속이었다. 4명의 비(非) 페론주의 대통령 가운데 1명은 임기 중 사임했고 1명은 임시 대통령이었다.
페론주의 정부는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하지 못했다. 아르헨티나의 지난 10월 물가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142.7%로 32년 만에 가장 높았다. 미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아르헨티나의 연간 물가상승률이 올해와 내년에 각각 200%, 300%에 이른다고 전망했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올해 53세인 밀레이는 초선 하원의원으로 비주류 인사였으나, 지난 8월 대선 예비선거에서 1위를 차지하며 이목을 끌었다. 외신들은 현지 유권자들이 페론주의 정부의 장기 집권에 피로를 느낀다고 분석했다.
그는 경제난을 타파하기 위해 18개 정부 부처를 8개로 줄이고 국영 기업을 민영화하며, 대부분의 세금을 폐지하겠다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연간 국내총생산(GDP)의 40% 수준인 보조금 및 복지 등 공공지출을 15%까지 줄이겠다고 선언했으며 중앙은행을 폐지한다고 밝혔다. 또한 아르헨티나 페소 대신 미국 달러를 통화로 채택한다고 약속했다. 밀레이는 19일 승리 연설에서 페론주의자들이 “우리에게 극도의 물가상승으로 향하는 파괴된 경제를 남겨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약속을 이행하고 사유 재산과 자유 무역을 존중하는 정부를 원한다”며 "오늘 아르헨티나 재건이 시작된다"고 선언했다.
19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조국을 위한 연합' 본부 앞에 세르히오 마사 후보의 전단지가 떨어져 있다.AFP연합뉴스
아르헨의 트럼프, 성공할까?
밀레이는 다음달 10일 4년 임기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FT는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에 달러가 거의 바닥났고 외국 자본을 유치할 방법이 없다며 단기간에 통화를 달러로 교체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아르헨티나 컨설팅업체 FMyA의 페르난도 마룰 국장은 달러 도입을 추진할수록 암시장 환율만 자극한다고 지적했다. 아르헨티나의 공식 환율은 달러당 약 350페소지만 암시장 환율은 900페소에 이른다. 마룰은 "다만 국채 시장이나 증시에서는 밀레이의 승리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아르헨티나는 방금 큰 변화에 투표에고 이는 아르헨티나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에 마침표를 찍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밀레이는 의회 및 지방 정부에서 입지가 약해 국정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며 우파 진영과 연합할 가능성이 있다.
외신들은 밀레이의 집권으로 외교 정세 또한 바뀐다고 내다봤다. 밀레이는 선거 기간 중에 “공산주의자들과 거래하지 않을 계획”이라며 중국 및 좌파 정부가 들어선 브라질과 거리를 두겠다고 밝혔다. 밀레이는 동시에 “미국 및 이스라엘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아르헨티나는 지난 8월에 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이 참여하는 국제 모임인 브릭스(BRICS)의 가입 승인을 받아 내년 1월부터 가입할 예정이었으나, 밀레이의 집권으로 가입을 철회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편 밀레이는 경제와 외교 정책 외에도 총기 규제 완화, 장기 매매 합법화 등 파격적인 공약을 내세웠다. 그는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을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하는 등 막말을 쏟아내 아르헨티나의 '트럼프'라는 별명을 얻었다. 밀레이는 개인적으로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알려졌다. 트럼프는 19일 밀레이 승리 직후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나는 당신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적었다. 이어 "당신은 당신의 나라를 바꾸고 정말로 아르헨티나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라질의 트럼프'로 불렸던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브라질 대통령도 "밀레이가 승리한 데 대해 아르헨티나 국민에 축하를 보낸다"며 "남미에 희망이 다시 빛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성명을 통해 축하 인사를 건네면서 "미국은 밀레이, 그리고 그의 정부와 공동 우선 사항들에 대해 협력하기를 기대한다"고 알렸다.
지난 10월 4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주 아베야네다에서 촬영된 자유전진당(LLA)의 선거 포스터. 포스터에는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진과 함께 "(LLM 대선후보인) 하비에르 밀레이는 그를 싫어한다. 사람들은 그를 사랑한다. 당신은 어느쪽인가?"는 문구가 인쇄되어 있다.AFP연합뉴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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