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줄면 지방은 소멸할 수밖에 없을까.
지역발전 불균형과 인구절벽 이슈가 대두된 후 지방소멸은 백약이 무효한 난제가 됐다. 그동안 셀 수 없는 토론과 지역활성화 시도에도 번번이 실패했고, 아직도 정답 찾기는 요원하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고민한 일본에서 괜찮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일본은 시골 마을을 휴게소로 만들면서 새 길을 찾았다. 한국처럼 고속도로 휴게소를 만든 것이 아니라 국도변의 마을 자체가 여행의 경유지가 되는 개념이다. 일본에서는 이를 '미치노에키'(道の驛·길의 역)라고 부른다. 미치노에키가 등장한 건 1990년대 중반부터다. 약 30년의 세월 동안 열도의 1200개가 넘는 미치노에키들은 일본 지역활성화의 거점이 되고 있다.
그중 수도권 북부 군마현에 있는 가와바무라는 민관 공동 프로젝트 중에서도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미치노에키로 유명하다.
'덴엔플라자카와바'라는 이름의 이 휴게소는 도쿄 신주쿠역에서 130㎞, 차로 2시간 남짓 떨어져 있다. 연간 240만명의 방문객이 찾고, 27억엔(약 240억원)을 소비한다. 웬만한 테마파크와 맞먹는 사업성이다. 2021년 일본 정부는 마을기업 전국 1위 모델로 선정했다.
마을은 작년에 150명을 직접고용했다. 1000여명의 마을사람이 이 휴게소와 관련한 직간접적 경제활동에 엮여 있다고 한다. 마을 전체 인구(약 3000명)의 3분의 1에 달한다. 항상 일손이 부족한 상태로 "언제든지 이사만 오면 일자리를 주겠다"고 할 정도니 그야말로 '농촌 유토피아'다.
무엇보다 파산 위기까지 갔던 흔한 마을이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규모의 경제'를 이뤄낸 스토리가 놀랍다. 인근 유명 관광지와 특산물로 승부를 보는 보통의 미치노에키와 달리 가와바무라는 내세울 아이템이 없었다. 인구소멸 지역이 된 것도 50년이 훌쩍 넘은 1971년의 일로, 그대로 두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동네였다.
하지만 마을은 도쿄 세타가야구와 고향공사를 합작 설립하면서 제2막을 열었다.
결과는 대성공. 도쿄의 구민들에겐 가와바무라는 '제2의 고향'으로 인식됐다. 1981년 3만명이던 교류인구는 2021년 200만명을 돌파했다. 지방 부활의 아이콘으로 매스컴을 타자 마을은 휴게소가 아닌 여행 목적지로 위상을 높였다. 이제 이곳은 10명 중 3명이 10회 이상 재방문하는 만족도가 높은 관광지로 자리 잡았다.
생존전략은 민간 경쟁과 다를 게 없었다. 판을 까는 것을 지자체가 도와줬을 뿐 이후엔 철저한 무한경쟁을 이겨냈다. 질 좋은 제품이 강점인 가와바무라는 '도쿄 1%가 소비하는 물건을 만든다'는 고급화 전략이 적중한 케이스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돈을 싸들고 와 호텔·관광사업을 제안하는 곳도 여러 곳이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한국의 지자체들도 이곳을 잇따라 방문, 벤치마크 의사를 밝혔다. 조만간 지방소멸을 타개할 한국형 '길의 역' 1호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김경민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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