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암울한 경제·정치 환경 속에 이란 고급 인력들의 해외 유출이 '통제불가능한' 단계에 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란 당국에 의해 살해당한 이란 대학생 마샤 아미니를 추모하는 집회가 지난해 9월 2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가운데 한 시위자가 아미니의 사진을 들고 있다. 로이터연합
핵무기 개발과 경제제재 악순환 속에 갇혀 희망을 잃은 이란 고급인력들이 이란을 탈출하고 있다.
두뇌유출 속도가 가팔라 이제 통제불능 수준으로 들어섰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이하 현지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를 인용해 2020~2021년 부유한 OECD 회원국들로 이민유입이 가장 가파르게 증가한 나라가 바로 이란이라고 보도했다.
OECD에 따르면 이란에서 이들 OECD 회원국으로 이민한 이들이 2020년에는 약 4만8000명 수준이었지만 이듬해 11만5000명으로 141% 폭증했다.
팬데믹 봉쇄로 국경이 폐쇄됐던 점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가파른 증가세다.
테헤란의 이란이민기구(IMO)는 정치적 망명이나 취업비자, 학생비자를 받아 이란을 이탈하는 이들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고 밝혔다.
IMO가 유엔난민기구(UNHCR)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 이란인들이 1년 전보다 44% 폭증했다.
IMO에 따르면 해외 유학은 8년 연속 증가세다. 2013년 4만9000명에서 2021년 7만명으로 늘었다.
IMO는 이란이 현재 "통제불가능한 수준의 대규모 인구 유출" 단계에 들어갔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경제·정치 상황이 심각한 두뇌유출을 부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란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은 지난 4년간 40%를 웃돌고 있다. 미국 주도의 이란 핵무기 개발 제재 충격이다.
이 와중에도 이란 정권은 주민들의 불만을 무력으로 잠재우고 있다. 지난해 히잡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대생 마사 아미니가 숨진 이후 불거진 대규모 반정권 시위는 당국의 무자비한 탄압 속에 분쇄됐다.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수니파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다른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견제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간 전쟁도 이란 두뇌 유출을 자극하고 있다.
가자지구 전쟁 속에 이란의 지원을 받는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접전 중이어서 언제 그 불똥이 이란으로 튈지 모른다.
이스라엘은 미국을 등에 업고 이란이 도발할 조짐을 보이면 선제 타격하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치, 경제 그 어느 곳에서도 희망이 없는 이란인들이 결국 나라 밖으로 탈출하고 있는 셈이다.
이란의 엘리트들, 숙련공, 기술자들, 예술가, 운동선수 등이 참담한 현실의 탈출구로 해외 도피를 택하고 있다.
옥스퍼드대 이민관측기구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3월까지 영국 도버해협을 건너 유럽에서 영국으로 밀항한 이들 가운데 최대 비중을 차지한 것이 이란 사람들이었다. 이 기간 1만8000명이 작은 보트를 타고 영국으로 건너왔고, 이 가운데 21%가 이란 국적이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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