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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로 착각하고 상해 입힌 복싱코치 '무죄'

대법 "충분히 오인할 만한 상황"
2심 벌금형 뒤집고 파기환송

복싱클럽 수강생과의 몸싸움 중에 주머니에서 위험한 물건을 꺼내는 것으로 착각해 복싱코치가 강제로 손을 펴게 하려다 손가락을 부러뜨렸다면 정당방위로 볼 수 있을까.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상해 혐의로 기소된 A씨 상고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2일 밝혔다.

지난 2020년 11월 서울 성북구의 한 복싱클럽에서 수강생 B씨는 회원 등록을 취소하려다 "어른에게 눈 그렇게 뜨고 쳐다보지 말라"고 질책하는 관장과 시비가 붙었다. "내가 눈을 어떻게 떴냐"고 항의하자 관장은 B씨 멱살을 잡고 넘어뜨리려 하고, 몸을 밀어 바닥에 세게 넘어뜨리자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복싱클럽 코치 A씨는 B씨가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휴대용 녹음기를 꺼내려 하자 위험한 물건으로 착각해 빼앗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약 4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손가락 골절상을 당했다.

이 사건은 피해자가 위험한 물건을 꺼낸다고 착각해 주먹을 강제로 펴게 하려다 상해를 입힌 것을 정당방위에 따른 행위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으로 하급심 판단이 엇갈렸다.

이에 대해 1심은 정당방위를 인정,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B씨가 손에 흉기를 쥐고 있었을 경우, 몸싸움 중인 관장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손을 강제로 펼치는 방법 외에 다른 수단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1심 판단이다.

반면 2심은 A씨에게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며 1심 판단을 뒤집었다. 2심은 "관장과 고등학생인 피해자의 신체적 차이, 폭행 상황 등을 고려하면 손에 있는 물건으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낮고, 피해자 손에 있는 물건이 흉기라고 볼만한 정황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피해자인 B씨와 몸싸움을 했던 관장과의 외형상 신체적 차이가 크지 않고, 복싱클럽에 다닌 B씨도 상당한 정도의 물리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다 그 직전까지 몸싸움을 하는 등의 급박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다는 점이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질책을 들은 후 약 1시간이 지나 다시 찾아와 항의하는 과정에서 몸싸움까지 하게 된 것으로 일시적, 우발적 발생한 것이라기 보다 피해자가 항의 내지 보복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계획적·의도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몸싸움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주머니에서 특정한 물건을 꺼내는 것을 상대방의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하려는 것으로 충분히 오인할 객관적 정황이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위법성조각사유의 전제사실에 관한 착오, 정당한 이유의 존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