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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1000원 학식, 학생은 '꿀맛' 학교앞 식당은 '죽을맛' [고물가·고금리 시대의 그늘 <9>]

40개 대학 천원의 아침밥 운영
주머니 얇아진 학생들 큰 호응
외식 기피 분위기에 상인 허탈
"아침 손님, 작년대비 절반 뚝"

대학가 1000원 학식, 학생은 '꿀맛' 학교앞 식당은 '죽을맛' [고물가·고금리 시대의 그늘 <9>]
지난 14일 고려대 '천원의 아침밥' 현장에서 학생들이 아침밥을 먹고 있다. 사진=윤홍집 기자
"학교가 학생들에게 베푼다는 취지는 좋지만 자영업자로선 달갑지 않죠. 매출에 영향을 안 받는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서울 성북구 고려대 인근의 한 분식집에서 근무하는 60대 이모씨는 대학가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천원의 아침밥'과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천원의 아침밥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아침밥을 단돈 1000원에 제공하는 복지사업이다. 이씨는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하는 학생이 늘수록 대학가 상권의 매출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이씨가 일하는 분식집은 오전 손님이 지난해보다 줄었다고 전해진다.

23일 대학가에 따르면 고물가 상황에서 청년복지를 위해 시작된 '천원의 아침밥'으로 인해 인근 상가들이 매출 하락을 우려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천원의 아침밥을 환호하는 대학생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속된 물가상승으로 아침밥을 챙기기 부담스러웠다는 대학생들은 천원의 아침밥 덕에 외식비용을 줄였다고 말한다. 심지어 일부 대학생은 천원의 아침밥이 점심밥, 저녁밥으로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학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로선 천원의 아침밥 사업을 환영하기는 어렵다. 천원의 아침밥을 이용하는 학생이 많아질수록 아침 손님이 감소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설령 줄어드는 매출이 크지 않더라도 불경기로 인해 손님 한 명 한 명이 귀하다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고려대 인근 분식집에서 일하는 이씨는 "지난해 같으면 아침에도 손님이 어느 정도 있었는데 요즘은 자리가 텅 비고 있다"며 "학교에서 아침밥을 1000원에 제공한다면 우린 손님 10명 올 게 5~6명으로 줄어든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내에 위치한 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양모씨(22)는 "전에는 아침 시간대에 컵라면이나 김밥을 사 먹는 손님이 꽤 있었는데 최근 급격히 줄어든 느낌"이라며 "아무래도 천원의 아침밥 영향이 있지 않나 싶다"고 밝혔다.

천원의 아침밥 운영 규모가 작은 대학은 주변 상권이 받는 영향도 그만큼 크지 않아 보였다. 성신여대는 지난 5월부터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각 200식씩 천원의 아침밥을 제공하고 있다. 성신여대 인근 상인들은 천원의 아침밥에 대해 모르거나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이 다수였다.

다만 성신여대는 천원의 아침밥으로 김밥이나 주먹밥 같은 간편식을 제공하는데, 김밥을 주로 판매하는 분식점 업주들은 상대적으로 타격이 있다고 말했다. 천원의 아침밥이 점심이나 저녁까지 확대되는 것에 대해선 자영업자 대부분이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대학가 상권은 점심이나 저녁 매출이 전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점심·저녁까지 천원의 아침밥이 확대된다면 타격이 상당할 것이라는 의견이다.

성신여대 인근 분식집 관계자 김모씨(65)는 "천원의 아침밥을 확대하는 것은 대학가 상권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학생들에게 복지가 돌아가는 건 뭐라고 할 수 없지만 다 같이 먹고살아야 하지 않나. 코로나 때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지금 겨우 버티고 있는 상태"라며 한숨을 쉬었다.


식재료 값 인상에 따라 불가피하게 메뉴 가격을 올리면서 대학가 상권이 학생들에게 외면받고 있다는 푸념도 있었다.

성신여대 앞에서 23년째 샌드위치 가게를 운영하는 50대 박모씨는 "우리 가게는 대학가 상권에 속해 있지만 이제 타깃이 대학생이 아니게 됐다"며 "지난해 7000원 하던 샌드위치가 9000원이 돼버리니 학생들이 어디 사 먹을 수 있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씨는 "가격을 올리고 싶어서 올린 게 아니다"라며 "마요네즈만 하더라도 2.7㎏에 9900원 하던 게 1만6300원까지 올랐는데 어떻게 가격을 안 올리나. 울며 겨자 먹기로 가격 올려봐야 이윤은 적고 손님만 줄어든다"고 하소연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