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실체적 경합'→2심 '상상적 경합'…"공탁 제한적으로 고려"
13일 서울 강남구 언북초등하교 앞에 마련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 운전 차량에 치어 숨진 초등학생을 기리는 추모 공간에서 학생들이 기도를 하고 있다. 2022.12.13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서울 강남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 상태로 운전을 하다 길을 건너던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운전자가 2심에서 감형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이규홍·이지영·김슬기 부장판사)는 24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도주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고모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1심에서 징역 7년이 선고됐는데, 2년이 감형된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고씨가 사고 후 도주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심은 피고인이 사고 현장으로부터 직선거리 16~21m에 위치한 주거지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즉시 사고 현장으로 돌아온 점, 사고 현장에 돌아온 직후 주변에 있던 사람에게 자신이 운전자라고 알린 점 등을 봤을 때 도주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일부 혐의의 경합 관계를 1심과 달리 판단했다. 1심은 특가법상 어린이보호구역치사 혐의, 위험운전치사 혐의가 별개로 성립한다고 보고 '실체적 경합'이라 판단했지만, 2심은 '상상적 경합'으로 봤다.
실체적 경합은 여러 개의 죄에 대해 각각 형량을 적용하는 것이며, 상상적 경합은 하나의 행위로 여러 혐의가 발생할 경우 가장 중한 죄로 처벌하는 것을 뜻한다.
재판부는 "하나의 운전 행위로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 여러 죄를 상상적 경합범으로 볼 수 있다"며 "원심은 실체적 경합 관계라고 판단, 법리를 오해해 양형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고씨가 공탁금을 내건 점도 양형에 일부 반영됐다. 고씨는 1심 선고 직전 3억5000만원, 2심 선고 직전 1억5000만원 등 총 5억원을 공탁한 상태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을 거부하며 엄벌을 탄원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해 공탁 사실을 매우 제한적으로 고려한다"고 밝혔다.
이어 "형사공탁제도가 시행된 이후 피해자 측에서 공탁금 수령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엄벌을 탄원해도 유리한 양형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면서도 "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수령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있지만, 공탁을 회수도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를 변제하기 위해 노력한 점,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의 태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폈다"고 설명했다.
고씨는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모 초등학교 앞 스쿨존에서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는 초등학생을 치어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고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28%로 면허 취소 수준이었다.
선고 직후 피해자의 아버지는 취재진에게 "이번 판결로 인해 더 고통스러울 것 같다"며 "아이의 희생으로 가해자가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가혹하다는 것을 보여줘 사회가 바뀌길 바랐는데, 이번 판결은 역행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탁금이 양형에 반영된 것에 대해서는 "돈으로 형량이 낮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줄 것 같다"며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