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상반기 3조원 손실 예상
사모펀드 사태 이어 분쟁소지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와 연계된 주가연계증권(ELS) 가입자의 수조원대 손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홍콩증권거래소 상장 50개 우량 중국 국영기업들로 구성된 H지수는 2021년 초에 비해 반토막으로 추락했다. 침체일로인 중국 경기를 감안할 때 짧은 기간 안에 반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에 따르면 H지수 연계 ELS 가운데 약 8조4100억원어치가 내년 상반기에 만기를 맞는다. H지수가 현재 수준에 머문다면 내년 상반기에만 3조원 넘는 손실이 불가피한 셈이다. 증권업계의 해당 상품 판매잔액도 3조5000억원에 달해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금융당국은 27일 관련 상품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손실 가능성, H지수의 변동성 등을 충분히 설명했는지에 대한 전수조사에 나섰다.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과거 라임·옵티머스·파생결합펀드(DLF) 등 여러 펀드 사태 당시 불거진 '불완전 판매' 논란이 다시 일어나 민원과 분쟁에 휘말릴 소지가 높다고 하겠다.
금융권에서 판매 규모가 가장 큰 KB국민은행에서는 금감원 은행검사1국의 현장조사가, 하나·신한·우리·NH농협 등 주요 판매 은행들에 대해선 서면조사가 진행된다. 증권사 중에서도 최대 판매사인 미래에셋증권과 KB증권 등 5∼6곳이 조사대상이다.
ELS 상품 가입자 중 노후자금을 맡긴 고령자층이 상당수에 달한다. 증권업계의 경우 ELS 판매경로의 약 80%가 '비대면 채널'이기도하다. 어떤 가입자는 "국채보다 안전하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가입자는 "나라가 망하기 전까지는 절대 원금손실 날 일이 없다"는 상품 소개를 받았다고 분노를 표출했다.
문제는 불완전판매를 증명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불완전판매를 판정하면 최대 80%까지 금융사에 책임이 부과되지만 현실적으로 녹록지가 않다.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법 도입 이후에는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관련된 특징들을 설명하는 녹취를 시행하고 있어서 불완전판매를 인정받기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홍콩발 시한폭탄이 째깍대고 있다. 완전판매를 하려면 한 상품을 파는 데 40∼50분이 걸리고 절차가 매우 복잡해서 현실적으로 완전판매는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 급소로 작용할 수 있다.
모든 투자에는 자기 책임 원칙이 있다지만 사모펀드 사태에 이어 또다시 대규모 원금손실이 발생한다면 금융 신뢰도가 땅에 떨어지는 걸 감수해야 한다. 수수료를 챙기려고 고위험 투자상품에 대한 불완전판매 행태를 제대로 개선하지 않은 금융권에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게다가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늑장 대응에 나서는 감독당국의 뒷북 시스템도 이번 기회에 손봐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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