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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이어 배터리... 도 넘는 中수출규제, 日기업 '중국 엑소더스' [김경민의 도쿄 혼네]

갈륨, 게르마늄, 희토류, 흑연 수출규제
반도체·배터리 핵심소재 무기화하며 압박
조달처 다각화·국산화로 대응
값싼 중국산 끊겨 생산 비용 부담 늘 듯

반도체 이어 배터리... 도 넘는 中수출규제, 日기업 '중국 엑소더스'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김경민 특파원】 중국이 전기자동차(EV) 소재 수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업체들이 탈중국화를 본격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에 소재 수입을 의존해온 일본 EV 업계는 조달처 다각화와 국산화 추진으로 공급 불확실성을 줄여간다는 전략이다. 갈륨, 게르마늄, 희토류에 이어 흑연까지 중국이 경제안보를 위협하는 무기로 활용하면서 전 산업계에 걸친 전방위적 대응이 시급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엔 흑연, 거세진 중국산 소재 압박

28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중국이 12월부터 EV 배터리 등에 사용되는 흑연의 수출 통제를 강화하면서 다수의 일본 업체들이 핵심 부품 생산에 필수적인 자원 조달 리스크를 분산하려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중국 정부는 다음달부터 일부 흑연의 수출을 허가제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 수출 자체는 금지되지 않았지만 현지 기업들은 당국의 심사나 허가가 없으면 수출할 수 없다. 흑연 수출량 감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흑연은 EV용 리튬이온 배터리 음극재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일본은 천연 흑연의 80% 이상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미쓰비시케미컬그룹은 중국에서 흑연을 수입하고 카가와현의 공장에서 음극재를 생산하고 있다. 흑연 수입이 지연된 경우 중국 산둥성의 공장에서 음극재 생산을 늘리는 것을 검토 중이다. 모잠비크나 노르웨이에서 흑연을 생산하는 호주 기업과 협력을 검토하고, 조달처 다양화를 모색하고 있다.

닛산자동차도 "흑연을 포함한 EV의 주요 소재를 다른 지역에서 조달할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시점에서 배터리 등의 공급에는 영향이 없지만 닛산은 공급 업체를 통해 흑연 재고를 쌓거나 대체 조달처를 선택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파나소닉홀딩스 소속 배터리 사업 부문인 파나소닉에너지는 캐나다의 흑연 기업과 음극재 양산에 대한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일본 정부가 캐나다 정부와 배터리 공급망 강화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공동 연구가 성사됐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2022년 흑연 생산량은 130만t으로 전년 대비 15% 증가했다. 중국이 생산의 70%를 차지하며 인공 흑연 생산량도 많다. 양쪽 모두 저렴한 가격으로 국외에 공급한다.

사토 노보루 나고야대 명예 교수는 "흑연의 조달 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며 "기업이 비용을 부담하면서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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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처 찾고 자체 개발도, "이제 중국에 의존 안 한다"

중국의 핵심 소재 수출 규제는 흑연 뿐만이 아니다.

중국 정부는 지난 8월부터 전자 부품 및 반도체 소재인 레어메탈(희귀금속)인 갈륨과 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를 강화, 두 소재의 수출이 크게 감소했다. 지난해 11월에는 2년 동안 EV의 모터 등에 사용되는 희토류의 관리를 강화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미쓰비시케미컬그룹은 갈륨에 대해서도 조달처를 확대하고 있다. 현재 무역회사를 통한 중국발 갈륨 수입은 중단된 상태다. 당분간은 재고로 대응하고 수입 규제가 계속되면 중국 이외의 공급처를 찾을 계획이다.

기업들은 중국의 수출 관리 대상이 아닌 원료에 대해서도 조달처를 다양화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에 사용되는 전해질의 원료인 리튬 화합물에서는 칸토덴카화학이 남미 등 다른 지역의 화합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시험하고 있다. 이 회사는 또 EV의 폐전지에서 리튬을 추출해 전해질로 재생하는 실증실험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반도체 이어 배터리... 도 넘는 中수출규제, 日기업 '중국 엑소더스' [김경민의 도쿄 혼네]

반도체·배터리 소재는 경제안보 무기

일본 정부는 외교 채널이나 기업 자금 지원을 통해 중요 자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생각이다. 지난 16일 중일 정상회담에서 두 정부는 '중일 수출 관리 대화' 신설을 합의했다. 양국은 앞으로 수출 관리 상황을 정기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경제산업성은 2023년도 추가경정예산에 2600억엔(약 2조2700억원)을 투입해 음극재용 인공 흑연의 국산화에 참여하는 일본 기업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한 2022년도 예산 개정에서 중요 광물의 광산 개발·정련·가공에 약 2000억엔(약 1조7500억원)의 자금을 마련했다. 기업이 해외에서 희귀금속을 개발하면 최대 절반을 보조한다.

닛케이는 "수출 규제 등 경제적 위협을 놓고 중국에 대한 국제적 비판이 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중요 자원의 공급망을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고 구축하는 것은 경제안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면서 "흑연 대응은 그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일본에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문화가 있습니다.
혼네는 진짜 속마음이고, 다테마에는 밖으로 보여주는 겉마음입니다. 개인보다는 조직·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좀처럼 혼네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일본은 다테마에의 파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