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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의 밤, 수놓는 일루미네이션 [김경민의 도쿄 혼네]

<토요일의 도쿄 혼네> ②일루미네이션
겨울에 태어나는 빛의 도쿄
日일루미네이션, 130여년의 역사
LED의 등장, 늘어나는 관광객 "돈 되네?"


도쿄의 밤, 수놓는 일루미네이션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 미드타운 일루미네이션. 사진=김경민 도쿄특파원


겨울에 태어나는 빛의 도쿄

겨울철 도쿄를 방문하신 분들은 저녁이면 길거리마다 찬란한 조명들로 물 든 광경을 쉽게 보셨을 겁니다. 바로 '빛의 축제' 일루미네이션인데요. 오늘은 일본의 일루미네이션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뭘해도 끝장을 보는 일본은 일루미네이션에도 '진심'인 나라입니다. 일루미네이션은 빛, 조명이라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겨울철(11~2월)이 되면 곳곳에서 일루미네이션 행사가 열립니다. 이제는 일본의 겨울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 기간 동안 일루미네이션을 통해 겨울의 추위를 따뜻하게 이겨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보냅니다. 전 세계 여행객들이 한 겨울의 일본을 찾는 주된 이유 중 하나입니다.

단풍이 들기도 전인 11월 초부터 일본 전국에서는 색색의 전구들이 먼저 거리를 수놓기 시작합니다. 이런 일루미네이션의 매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도시가 도쿄입니다.

도쿄의 일루미네이션은 그야말로 눈부신 화려함을 자랑합니다.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이 아름다운 빛의 향연은 시민들에게 겨울의 따뜻함을 전하고, 도시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합니다. 겨울의 도쿄는 작은 골목의 나무들까지 전구를 칭칭 감고 있습니다.

지난해 도쿄는 유난히 여름이 길고 더웠는데요. 어느새 나무들이 전구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제 겨울이 오는구나' 싶었습니다.

특히 도쿄타워 주변이나 롯폰기, 긴자, 오다이바, 신주쿠 등의 번화가에서는 더욱 화려한 일루미네이션 행사가 펼쳐집니다.

도쿄의 일루미네이션 행사 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도쿄 미드타운 일루미네이션'입니다. 도쿄 미드타운은 도쿄의 한 중심지인 롯본기 힐즈에 위치한 상업 엔터테인먼트 단지입니다. 매년 겨울 시즌에 규모가 큰 일루미네이션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도쿄의 밤, 수놓는 일루미네이션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 롯본기 힐즈의 도쿄 미드타운 일루미네이션. 도쿄 관광 공식사이트 GO TOKYO 홈페이지 캡처

도쿄의 밤, 수놓는 일루미네이션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 롯본기 힐즈의 도쿄 미드타운 일루미네이션. 도쿄 관광 공식사이트 GO TOKYO 홈페이지 캡처

도쿄 미드타운 일루미네이션은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스크린과 조명 장치를 활용해 다양한 영상과 그래픽이 표현됩니다. 이를 통해 도쿄의 도시적인 아름다움과 활기를 느낄 수 있어요. 무엇보다 이 곳의 일루미네이션 거리는 도쿄타워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건질 수 있는 스팟인데요. 요즘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도 이번에 가족들과 롯본기를 찾아 일루미네이션을 만끽했는데요. 도쿄타워가 잘 보이는 루이비통 매장 앞 횡단보도는 신호가 바뀔 때마다 사진을 찍으려는 수십 수백명의 사람들이 교차하는 장면이 장관이었습니다. 고작 20m 남짓한 이 횡단보도에는 2명의 경찰관이 배치돼 "신호가 바뀌었습니다. 건너주세요!"라며 안전 방송을 계속했던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따뜻한 도쿄의 겨울 날씨와 빛나는 조명, 사람들의 모습이 섞이면서 자연스럽게 로맨틱한 겨울 분위기가 만들어지더라고요.

도쿄의 밤, 수놓는 일루미네이션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 롯본기 힐즈의 도쿄 미드타운 일루미네이션. 도쿄 관광 공식사이트 GO TOKYO 홈페이지 캡처

또 오다이바 국제무역센터에서는 거대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대규모 조명으로 장식된 건물들이 밤 하늘을 환상적으로 빛내줍니다. 도쿄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신주쿠와 시부야역 주변도 일루미네이션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시부야 크로스워크에서는 거대한 스크린과 함께 빛나는 조명이 도심의 중심을 장식합니다.

유독 도쿄는 세계 어느 메트로시티보다 화려한 일루미네이션을 자랑하고 있는데요. 겨울철 해가 빨리 지는 도쿄 날씨의 특성 때문에 일루미네이션이 발달하게 됐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겨울의 도쿄는 오후 4~5시 정도만 돼도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서 일루미네이션을 즐길 시간이 많은 것 같네요.

도쿄 외에는 교토의 국제 일루미네이션 페스티벌이 손에 꼽힙니다. 국제적인 조명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도시의 유서 깊은 사원, 신사, 정원 등을 아름답게 밝힙니다. 일본 전통 문화와 자연 경관을 일루미네이션과 결합해 새로운 매력을 뿜어냅니다.

도쿄의 밤, 수놓는 일루미네이션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 신주쿠역 일루미네이션 거리. 사진=김경민 도쿄특파원

日일루미네이션, 130여년의 역사

일루미네이션 행사의 시작은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방법 중 하나로 건물이나 거리를 빛으로 장식해 행복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는 어둠 속에서 빛을 통해 희망과 기쁨을 표현하는 강력한 시각적 수단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초기에 크리스마스가 크게 축하되지 않았지만, 20세기 후반부터 서구 문화의 영향을 받아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문화가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것과 함께 도시의 건물과 거리를 빛으로 장식하는 일루미네이션도 함께 소개됐습니다.

일본이 일루미네이션에 열광하게 된 계기는 메이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한 대형 슈퍼의 연말 상거래 장식이 일루미네이션의 시작이라고 하는데요.

신문은 1885년 요코하마에서 창업한 고급 슈퍼, 메이지야의 '크리스마스 장식'이 원형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메이지야의 창업자 이소노 케이는 미쓰비시의 창시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자금 지원을 받아 영국에 파견돼 4년가량 현지 기업에서 근무했습니다. 이소노는 현지에서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방법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합니다.

이를 참고해 이소노는 1880년대부터 요코하마 점포에 유사한 장식을 시작했습니다. 1900년 도쿄 긴자에 진출한 메이지야는 요코하마에서처럼 긴자점에서도 크리스마스 장식을 했는데 '대박'이 납니다. 메이지야의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기 위해 긴자를 목표로 한 사람이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라고 하네요.

이 곳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긴자 주변의 다른 가게도 메이지야와 비슷한 장식을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루미네이션 문화는 긴자에서 도쿄로, 또 전국적으로 금방 퍼져 나갔습니다.

1960년대 무렵부터는 각 가정에서 크리스마스 트리 전광 장식을 두르고 일루미네이션을 즐기는 움직임이 확산됐습니다. 2000년대에는 해외 출신이나 해외 부임 귀국자를 중심으로 집 외벽을 전광 장식하는 가정도 나타났습니다.

도쿄의 밤, 수놓는 일루미네이션 [김경민의 도쿄 혼네]
도쿄 신주쿠역 일루미네이션 거리. 사진=김경민 도쿄특파원

LED의 등장, 늘어나는 관광객 "돈 되네?"

특히 발광다이오드(LED)가 발명되면서 일루미네이션은 빠르게 대중화됐습니다. 기존 백열전구에 비해 전기료가 압도적으로 저렴하고 광원이 오래 지속된다는 장점 때문이었죠.

이후 일본의 일루미네이션은 단순히 크리스마스를 축하하는 행사를 넘어서 겨울철 도시의 풍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중요한 문화적 요소로 발달했습니다.

또 이런 행사들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 뿐만 아니라 도시의 야경을 활성화시키고 관광객을 유치하는 경제적 효과도 가져다 주었습니다.

'일루미네이션 행사가 돈이 된다'는 것을 안 일본 관광청은 매년 볼만한 일루미네이션 거리를 추려 가이드에 넣고 있습니다. 유명 일루미네이션 거리는 다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한 인파들로 겨울 내내 북적북적합니다.

일본일루미네이션협회(JIA)에 따르면 2010년대에는 일부 전화번호부에 일루미네이션 카테고리가 생겼습니다. 이전까지 일루미네이션은 '전기공사'나 '장식'으로 분류됐는데 당당히 새로운 산업 분야로 인정받게 된 것입니다.

일루미네이션이 축제급으로 발전한 것도 이 때 쯤입니다. JIA는 2011년 고베에서 첫 유료 행사인 '일루미나주'를 열었습니다. 300만개의 전구를 사용한 박진감 있는 전시가 화제를 모으며 약 3개월 만에 18만명을 동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의 많은 도시들이 겨울철에 다양한 일루미네이션 행사를 제각각 열게 되었습니다.

기술 향상으로 색채 표현력이 높아지면서 이제 일루미네이션은 단순한 장식이 아닌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몇마디 글로 일루미네이션의 장관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백문불여일견. 이 겨울 도쿄를 방문한다면 꼭 빛나는 일루미네이션을 즐겨 보시기 바랍니다.

일본에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문화가 있습니다.
혼네는 진짜 속마음이고, 다테마에는 밖으로 보여주는 겉마음입니다. 개인보다는 조직·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좀처럼 혼네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일본은 다테마에의 파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