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군사관련 주요이슈 결산 (上)
돌파구없이 2년 가까이 이어지는 우크라戰
소모전에 유라시아 지정학적 위기 계속돼
하마스 선제 공격에 이스라엘 피의 보복
다시 불붙은 중동 화약고에 비극적 참사
핵집착 집요해지는 北, 러시아 연대 강화
"중심 잡힌 역동적인 군사외교전략 필요"
[파이낸셜뉴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교전이 이어지는 가운데 12월 6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 약 두 달 만인 전날 가자지구 남부에서 본격적인 대규모 지상전에 나섰다. 사진=AFP·연합뉴스
2023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올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군사관련 주요 이슈를 통해 신냉전의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이 취해야 할 글로벌 군사외교전략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 지를 2회에 걸쳐 정리, 전략적으로 모색해 보고자 한다.
우선 지구촌 패권을 둘러싸고 경쟁을 펼쳤던 미∙중은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를 계기로 지난 11월 15일(현지시간) 양국 간 정상회의를 열고 군사 소통 재개 등 일련의 합의에 성공했다.
하지만 미국의 대중국 전략 경쟁의 핵심 원칙이 분리와 배제를 의미하는 디커플링(decoupling)에서 위험 감소·완화·관리를 의미하는 디리스킹(de-risking) 단계로 진입하려는 가운데 美 바이든 대통령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중국에 강경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초당적 기류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등 전방위적으로 불씨는 산재해 있어 갈등이 재점화할 우려도 안고 있다는 관측이다.
우크라이나의 반격작전은 지지부진하고 러시아가 북한에까지 손을 내밀며 전쟁지속능력 확충을 모색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어느덧 1년 10개월째 소모전 양상을 보이면서 유라시아 지정학적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미국의 패권 질서가 약화하는 틈을 타 무장 정파 하마스의 선제 기습 공격으로 촉발된 이스라엘 전쟁은 67일째 이어지면서 피의 보복을 다짐한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으로 가자지구는 인권 측면에서 비극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한반도에선 북한이 신냉전 구도의 틈새를 역이용해 북러 거래를 통해 정찰위성을 이용한 핵강압에까지 나섰다.
국제 의료구호 단체인 '국경없는의사회' 미국 회원들이 12월 6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 앞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즉각적인 휴전을 호소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본부가 있는 곳으로 지목된 의료시설 등에 대한 공습을 이어가면서 의료진들의 희생도 커지고 있다. 사진=AP·연합뉴스
■피로도 쌓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다시 불붙은 중동 화약고
지난 6월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숙이 관여해 온 러시아 용병 단체 바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군부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켜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전쟁의 흐름에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초대형 사건이었다. 일각에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권 붕괴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그의 지도력에 큰 흠집이 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 반란 시도는 불발에 그쳤다. 프리고진은 사건 2달 후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이후 바그너그룹은 존재감을 크게 상실,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은 여전히 여러 전선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10월 터진 중동 분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우크라이나 지원에 가장 앞장서고 있는 미국에선 전쟁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우크라이나 지원에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유럽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여론이 확산하고 있으며 일각에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점령된 일부 영토를 포기하고 이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최근 친러시아 정부가 들어선 슬로바키아는 전임 정부의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안을 폐기했다.
하지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지도부는 우크라이나 지원이 유럽의 안보와 세계 안보에 중대한 핵심이라는 관점을 유지하고 있다.
나토 외교장관들도 지난달 말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의지를 재확인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지구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의 침공으로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 두 개의 큰 전쟁을 보면서 근본적인 차이점을 짚어 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선제 기습 공격을 당했지만 사실상 외부의 큰 도움이 없어도 언제든 싸울 수 있는 전쟁 수행 능력을 갖춘 반면 우크라이나는 국제사회의 원조가 없으면 전쟁을 지속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은 스스로를 지킬 권리가 있다며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나타냈던 미국 정부도 인질들의 석방과 가자지구 민간인의 인도적 위기를 들어 이스라엘 설득에 나섰지만, 이스라엘은 이번엔 반드시 하마스를 섬멸하겠다는 초강경 자세를 보이고 있다.
11월 23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도네츠크주 바흐무트 인근 전선에서 우크라이나 제10 산악돌격여단 '에델바이스' 소속 대원들이 러시아군의 드론 공격으로 불타는 버스 옆을 달리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겨울 추위가 시작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동부 전선에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사진=AP·뉴시스
■北 핵 집착 한미일 겨냥한 타격능력 과시, 이룰수 없는 꿈...핵보유국 지위 강압
북한은 개성 등 일부 대도시에서의 아사자 발생설 등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더욱 집요한 '핵 집착'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북러 간 밀착·연대의 흐름이 확대·강화될 가능성 있단 관측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벌이며 무기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와 코로나19 팬데믹과 국제사회의 제재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북한의 필요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진단하고 있다.
올해 북한 도발의 특징은 한미동맹의 주요전력과 일본에 위치한 유엔사 후방기지를 특정해 자신들의 핵 및 미사일 등 다양한 플랫폼을 동원한 전략·전술적 동시 타격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일례로 북한은 지난 7월 19일 새벽 평양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변칙 기동이 가능한 최고 고도 50㎞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 550km를 비행한 뒤 떨어졌는데 이는 방향을 돌릴 경우 전날 부산에 기항한 美 오하이오급 전략 핵잠수함인 '켄터키'함(SSBN 737)을 겨냥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북한은 사전 준비가 짧고 기습 발사가 가능한 다양한 사거리의 고체연료기반 탄도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북한의 핵운반 기술은 계속 발전 중이며 미국 본토가 북한의 공격 범위에 들어올 수 있음을 시사했다.
전문가들은 국제제재가 그들의 핵 고도화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과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를 얻어내려는 강압 의도가 깔려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북한의 순항미사일 및 탄도미사일 도발 횟수는 11월 22일,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효력정지가 개시된 날 심야에 동해상을 겨눈 단거리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실패한 발사까지 포함하면 현재까지 24회에 이른다. 또 3차례에 걸친 수중드론(핵 어뢰 주장) 발사와 2번의 ‘군사정찰위성’ 발사 실패와 1번의 궤도 진입 성공이 있었다.
4월에는 고체형 연료를 도입한 ICBM ‘화성-18형’과 소량화·경량화·규격화돼 다양한 전술핵 투발수단에 장착 및 탈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카트리지형 신형 핵탄두 ‘화산-31’ 등 신무기체계를 선보였다.
아울러 북한은 올해 이례적으로 1년에 3번의 열병식을 벌이기도 했으며, 지난달 21일 군사정찰위성을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을 이용한 발사체를 쐈고 우리 정부는 대응 차원에서 '9·19합의' 중 군사분계선(MDL) 일대 '비행금지구역' 설정 효력 정지를 발표하자 북한 국방성은 다음날 9·19합의 '전면 파기'를 선언하고 나섰다.
최근 한미 정보 당국의 관측에 따르면 신포급 잠수함의 잇단 정비 동향이 포착돼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9월 8일 올린 사진에 지난 6일 열린 전술핵공격잠수함 '김군옥 영웅함' 진수식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참석해 있다. 사진=조선중앙통신 캡처
■대북 억제력 달성 위해 역동적인 군사외교전략 이어가야
전문가들은 이처럼 격변기 과정에 있는 신냉전 시대를 맞아 한국은 어느 때보다 강화된 '대북억제력' 태세를 갖춰야 하며, 특히 미중 간 패권경쟁 속 국제사회에서의 책임과 역할에 중심 잡힌 역동적인 군사외교전략을 세우고 수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손대권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는 "패권을 다투기엔 아직도 중국의 국방력은 미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국내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도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수적이어서 신냉전에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짚었다.
손 교수는 "중국은 북한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를 강조하지만 북한과의 협력이 지나치게 강화될 경우, 진영대결 구도가 고착화 될 것을 우려해 북러와의 협력을 경제 영역으로 제한하고 있는 중"이라고 관측했다.
이어 "예를 들어 지난 7월 27일 북한 전승절 70주년 행사에 리홍중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을 파견함으로써 급을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며 "과거 북한 전승절 40주년과 60주년엔 각각 그보다 영향력이 있는 후진타오와 리위안차오를 파견했던 것에 비해 급을 낮춘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올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75주년에도 경제를 담당하는 인사인 류궈중 중국 부총리를 파견함으로써 북중 협력을 안보 영역보다는 경제 영역으로 선을 그은 것"이라고 부연했다.
손 교수는 "반면 북한에 있어 신냉전의 대결 구도의 강화·고착화는 오히려 생존 도모에 유리한 중러의 원조 확보 환경을 조성하고 양국의 비호하에 추가적인 유엔 제재 없이 핵개발을 지속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현재의 국제정세를 이례적으로 신냉전으로 규정하면서 중국과 상반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며 "이에 북한은 러시아와의 협력 강화로 양국 간의 안보협력을 확대하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은 "올해 한국은 복잡한 군사외교 함수가 가동되는 상황에서 한미동맹을 역대급 수준으로 강화하고 한미일 안보 아키텍처(Architecture=지극히 현실적인 의미의 청사진)를 설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며 도전을 상쇄하고자 했다"며 "나아가 유사입장국과의 연대를 강화하는 가운데 나토-AP4 협력도 정례화 수순을 밟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짚었다.
반 센터장은 "2024년에도 신냉전 구도가 지속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더 강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며 "다만 미국과 중국이 디커플링을 바라지 않고 우발적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정상급 소통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신냉전 구도 완화를 위한 청신호도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일중 정상회의에 청신호가 켜진 것도 신냉전 구도 완화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그는 "2024년에 한국은 미국, 일본과 유엔 안보리에서 활동하게 되는 국제정치적 모멘텀을 잘 살려 자유주의적 국제질서 수호에 기여하고 한반도에서 대북 억제력 제고도 달성한다는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복잡한 함수를 풀어내는 역동적인 군사외교전략을 꾸준히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11월 22일 전날인 21일 밤 발사한 군사정찰위성의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국가항공우주기술총국은 11월21일 22시42분28초에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정찰위성 '만리경 1호'를 신형위성운반로켓 '천리마 1형'에 탑재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고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 캡처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