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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환자는 발동동 구르는데 무슨 명분으로 파업하나

의협, 11일부터 파업 찬반투표 시작
직역 이기주의 극치, 당장 중단해야

[fn사설] 환자는 발동동 구르는데 무슨 명분으로 파업하나
대한의사협회가 의대 정원 확대 추진을 반대하며 전 회원을 대상으로 찬성 여부를 묻는 투표를 실시한 1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건물 앞에 관련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한의사협회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11일부터 총파업 찬반투표를 시작했다. 정부는 보건의료위기 '관심' 단계를 발령했다. 의·정 갈등이 다시 극한으로 치달으면서 국민들 피로감도 쌓인다. 의사 파업으로 진료를 받을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를 국민들의 모습을 의협은 상상이나 해보기 바란다.

정부가 발령한 '관심' 단계는 재난위기관리 표준 매뉴얼에 따른 것인데, 이 단계를 발령한 것은 지난 6월 민주노총 보건의료 총파업 이후 처음이다. 정부는 의료현장의 혼란을 막을 비상대응반을 가동할 것이라고 한다. 그래도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일이 벌어지기 전에 충분히 의료계와 소통해 파국을 막지 못한 정부도 분명한 책임이 있다.

의협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며 세 결집으로 이를 저지하려 한다. 투표가 끝나는 오는 17일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서 총궐기대회를 열 계획이다. 앞서 의협은 '범대책 특위'까지 구성해 대통령실 인근 등에서 철야시위도 벌였다.

의료계가 문제 삼고 있는 정원 확대는 필수의료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시급히 추진해야 할 과제다. 지금 확정해도 의사가 배출되기까지는 10년 넘게 걸리는, 한시가 급한 문제다. 내년 상반기 전공의를 최근 모집한 서울 '빅5' 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서 대규모 미달 사태를 빚었다. 흉부외과, 응급의학과도 상당수 병원이 정원을 못 채웠다.

지역 병원 사정은 훨씬 더 나쁘다. 이대로는 필수의료체계가 무너지고 기형적인 수도권 쏠림이 더 가속화될 게 뻔하다. 정원을 늘린다고 필수의료와 지역 병원이 바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선 의사 수를 늘려 놓고 풀어야 할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의사 수는 한참 모자란다.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 평균이 3.7명인데 한국은 2.6명이다. 18년째 정원을 묶어놓은 결과다. 정원 확대 논의는 2020년에도 있었으나 불발로 그친 것은 팬데믹 기간 특수했던 의료상황 탓이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 의사 수 확대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어느 때보다 높다. 보건의료노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83%가 의사·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지역 의료원과 지역 국립대병원은 의사 부족이 심각해 병원 문을 닫아야 할 판이다. 전국 40개 의대가 2030년까지 4000명 가까이 정원을 늘려달라고 요청했는데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수요를 뛰어넘는 터무니없는 숫자가 아니다.

지금 상황들을 놓고 보면 의협의 정원 확대 거부는 명분이 없다.
4000명 확대가 무리하다고 판단되면 뒷받침할 근거를 제시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면 된다. 의사들이 깃발투쟁으로 얻는 것은 이기주의 집단이라는 낙인밖에 없다. 정부는 의료계를 마지막까지 설득해야 하겠지만, 설령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선뜻 양보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