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육군자탕(六君子湯)은 인삼, 백출, 복령, 감초, 반하, 진피로 구성되어 있는데, 비위(脾胃)를 보하고 중기(中氣)를 맑게 해서 담(痰)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처방이다. 기능성 위장장애나 역류성 식도염에도 효과적이다.
옛날 어떤 과부가 있었다. 과부는 누에를 치면서 살았는데, 집에는 남자가 없어서 힘쓸 일이 많았고 가난하고 돈이 없어 일꾼도 부릴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자식도 없었다. 그녀는 집에 항상 혼자였기에 누에 치는 일을 마치고서는 대청 위에서 잠이 들곤 하였다.
이렇게 몇 년이 지나고 50세가 넘어가면서 숨이 찬 증상이 생겼다. 숨찬 증상은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나아지곤 했다. 그런데 어느 해 겨울, 다시 숨이 찬 증상이 생기더니 그 이후로 팔이 매우 아프고 더러는 어깨가 빠질 듯했다. 아마도 며칠 전 겨울비가 내리던 날에 찬 대청 마룻바닥에서 잠을 자서 생긴 듯했다.
증상은 심해서 옆에서 부축해야 겨우 일어서고 팔이 아래로 뻣뻣하게 굳어 옷을 벗고 입을 때면 벗거나 입는 것이 어려웠다. 이 때문에 옷을 방바닥에 쌓아두고 기대어 앉아 지냈다. 통증이 하도 심해서 일상생활조차 전혀 할 수가 없었다. 과부는 어쩔 수 없이 여러 의원들에게 치료를 받아 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때 마을에 임상경험이 풍부한 노령의 한 의원이 나섰다. 과부는 의원에게 “목이 뻣뻣하고 아파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누워서 베개를 베지 못하며 앉아서 머리를 가누지 못하겠소.”라고 했다.
의원이 진맥을 해 보니 활(滑)하면서도 무력(無力)했다. 의원은 강활승습탕(羌活勝濕湯)에 인삼 3푼을 더하여 처방했다. 강활승습탕은 원래 목덜미가 뻣뻣한 것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습과 함께 찬 자극으로 인해서 태양경이 한습(寒濕)에 상하여 목덜미가 뻣뻣하거나 빠질 것 같고 뒤돌아보지 못하는 증상에 효과적이다.
강활승습탕은 소위 낙침(落枕)이라고 하는 베개의 문제나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자고 일어난 이후에 나타나는 항강증에도 좋다. 뒷목이 뻐근하면서 나타나는 후두통에도 좋고, 어깨결림과 함께 근육뭉침을 풀어주기 때문에 고황통처럼 견갑골 사이에 나타나는 등통증에도 효과적인 처방이다.
과부는 의원이 처방한 강활승습탕 5첩을 복용하고서는 뻣뻣했던 뒷목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부축하지 않으면 여전히 앉거나 일어설 수 없었다.
과부는 “온몸의 관절이 아프면서 부은 듯한 통증이 있어서 잠도 잘 수가 없소이다.”라고 하소연했다.
이에 의원은 계속해서 소풍활혈탕(疏風活血湯)에 방기를 빼고 인삼 5푼을 더하여 5첩을 처방했다. 소풍활혈탕은 풍습(風濕), 담(痰), 어혈(瘀血)이 사지의 모든 관절로 돌아다니면서 찌르듯 아픈 경우를 치료하는 처방이다.
요즘에도 퇴행성 관절염에 의한 관절통, 류마티스 관절염이나 통풍성 관절염에서 나타나는 심한 통증에도 자주 사용되는 처방으로 어혈(瘀血)을 제거하면서 기혈순환을 촉진하는 효능도 뛰어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부는 소풍활혈탕을 복용하자 팔의 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했다.
의원은 “이것은 어혈이 풀리면서 어깨부위로 피가 몰리기 때문에 욱신거림이 심해진 것 뿐입니다.”라고 안심을 시켰다.
사실 마약이 아닌 이상 탕약을 먹자마자 증상이 사라지는 것도 이상할 노릇이다. 의원은 이어서 2첩을 더 복용하게 했더니 다행스럽게도 어깨의 통증은 절반으로 줄었다.
과부는 “통증이 많이 줄어서 이제 살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기운이 너무 없고 윗배가 더부룩합니다.”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래서 의원은 소풍활혈탕의 복용을 중지시키고 육군자탕(六君子湯)으로 변경을 했다. 의원은 육군자탕에 길경, 지각, 건강을 더하고 또한 산약 더하여 처방했다. 육군자탕은 비기(脾氣)를 보해서 습담(濕痰)을 말리는 처방이다. 보통 비위가 약해서 생겨나는 담을 치료하는 처방으로 담병(痰病)의 근본을 다스리는 처방이다.
인삼, 백출, 복령, 감초로 구성된 사군자탕(四君子湯)과 담음(痰飮)을 치료하는 반하, 진피, 복령, 감초로 구성된 이진탕(二陳湯)이 합방된 것으로 요즘에도 위장이 약해서 나타나는 구역감이나 위산이 역류해서 나타나는 역류성 식도염 환자에게도 다용된다.
과부는 육군자탕 가미방 10첩을 복용하고 뻣뻣했던 뒷목과 어깨와 팔의 통증이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기운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느글거림과 윗배가 불편한 것은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다.
의원은 좀 더 처방을 복용하기를 권했다. “지금 증상이 많이 호전이 되었으나 아직 뿌리가 뽑힌 것은 아니니 육군자탕을 더 복용해서 그 근원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러면 재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요.”라고 했다.
그러나 과부는 가난하여 탕약을 더 이상 복용하기를 꺼려했다. 의원은 안타까워하면서 과부에게 약방문을 적어주면서 이 처방전대로 약재를 구할 수 있으면 만들어 복용하도록 했다. 그 과부는 그 이후로 돈이 생기면 의원의 처방대로 계속해서 육군자탕을 복용해서 남아 있는 증상이 모두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노령의 의원에게 ‘명의가 인술까지 베풀었네.’라면서 칭찬이 자자했다.
어느 날 처음에 과부를 처음 치료했던 한 의원이 찾아왔다.
“의원님의 명성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이 그 과부에서 육군자탕 가미방의 약방문을 적어주셨고 그 처방을 복용하고서 완치되었다는 소문이 장안에 파다합니다. 그 처방 연유를 듣고 싶습니다.”라고 요청을 했다.
치료를 담당했던 노령의 의원은 “과부의 병은 습담(濕痰)이 흉격 사이에 응체되어 숨이 차기도 하고 어깨와 목까지 증상이 번지기도 했던 것이오. 따라서 마땅히 육군자탕을 많이 복용시켜 흉격 사이의 습담을 치료했기 때문에 어깨와 목이 저절로 나아진 것이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다시 질문을 하기를 “그럼 처음부터 육군자탕을 처방하신 것입니까?”하고 물었다.
노령의 의원은 “그렇지 않소이다. 초기의 증상은 실증(實症)을 겸하고 있어서 사기(邪氣)를 깎아 내리고자 했을 뿐이요. 처음에 과부는 어깨와 목의 증세가 급박하여 한시도 버티기 어려웠기 때문에 먼저 강활승습탕과 소풍활혈탕으로 말단(末端)을 치료했지요. 이 처방들은 관절과 근육의 통증을 잡는 명방들이요. 그런데 과부가 기운이 없다고 한 터에 소산(疏散)시키는 약재를 많이 쓰면 기운이 더더욱 소모될까 염려되어서 어깨와 뒷목의 증세가 모두 반으로 줄었을 때 두 처방은 중지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의원은 “<내경>의 ‘실(實)하면 사(瀉)하고, 허(虛)하면 보(補)한다’는 치법을 사용하신 거로군요.”라고 거들었다.
노령의 의원은 “맞소이다. 목과 어깨의 심한 통증이 줄면서도 과부는 비위가 약하고 몸이 허한 증상을 보였기 때문에 앞의 두 처방의 복용을 멈추고 이어서 육군자탕을 처방한 것입니다. 그래서 흉격의 담이 내려가고 기운을 차리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비위와 관련된 복부증상도 좋아진 것입니다.”라고 차분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질문을 했던 의원은 얼굴이 붉어졌다. 사실 자신은 변증(辨證)을 하지 않고 소위 말하는 비방(祕方)만 떠올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식처럼 했던 비방이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별다른 처방을 할 수도 없었다. 의원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모든 처방은 때가 있는 법이다. 환자의 증상은 구름처럼 변화무쌍한데 한가지 처방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따라서 환자의 증상에 따라서 처방을 달리해야 한다. 명의일수록 환자의 증상을 유심히 살피고 고통스러워하는 바를 귀담아듣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제목의 ○○은 ‘처방’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경보신편> 婦人門. 一婦寡居家貧, 或多勞身, 養蚕時, 或臥廳上, 老境有膈間氣急症, 一朔自愈, 數三年來, 每一發作而自愈矣. 次年冬又發自愈, 其後兩臂苦痛, 或骨節如脫落, 衣服脫着, 扶而起立, 兩臂直垂, 艱脫艱, 項强且痛, 不得回顧, 臥不敢堪枕, 坐不勝頭, 積衣於壁上, 憑坐經過, 諸醫不治. 予進羌活勝濕湯, 加胡蔘三分, 五貼, 項强稍愈, 艱得扶扶坐, 繼用疏風活血湯, 去防己, 加胡蔘五分, 服五貼, 臂痛似添劇, 加用二貼, 肩臂痛半愈. 繼用六君子湯, 加吉更ㆍ只角ㆍ乾干, 人蔘代以胡蔘五分, 山藥一戈, 服十貼, 項强肩臂痛皆. 上腹微有妨碍, 因漸差效, 猶未得平復者, 貧不能多服子湯也, 可惜哉. 此病濕痰留滯膈間, 或氣急, 或延及肩項, 宜先多服六君子湯, 治膈間濕痰, 則肩項當自愈, 而肩項之症急迫, 時刻難支, 故先用勝濕湯ㆍ活血湯以治標, 而肩項之證, 皆半愈而止者, 多用疏散之劑, 恐或耗氣, 故只得救急而止, 繼用六君子湯而治膈痰, 膈痰因下, 腹部而愈. (부인문. 어떤 과부가 집이 가난하여 일을 많이 하였는데, 누에를 칠 때면 대청 위에서 잠이 들곤 하였다. 늘그막에 흉격에서 숨이 찬 증상이 생겼다가 1달 만에 저절로 나았고, 3년 동안 매년 1번씩 발작했다가 저절로 낫곤 하였다. 이듬해 겨울에도 증상이 발생했다가 저절로 나았는데, 그 뒤로 팔이 매우 아프고 더러는 뼈마디가 빠질 듯하여 옆에서 부축해야 겨우 일어서고 팔이 아래로 뻣뻣하게 굳어 의복을 벗고 입을 때면 벗거나 입는 것이 어려웠다. 또 목이 뻣뻣하고 아파서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누워서 베개를 베지 못하며 앉아서 머리를 가누지 못하였다. 이 때문에 벽 위에 옷을 쌓아두고 기대어 앉아 지냈으나 여러 의원들이 치료하지 못하였다. 내가 강활승습탕에 호삼 3푼을 더하여 주었더니 5첩을 먹고 뻣뻣했던 뒷목이 조금 나아졌으나 부축하지 않으면 앉거나 일어설 수 없었다. 계속해서 소풍활혈탕에 방기를 빼고 호삼 5푼을 더하여 5첩을 복용하자 팔의 통증이 더 극렬해지는 듯하였으나, 2첩을 더 사용하자 어깨와 팔의 통증이 반으로 줄었다. 계속해서 육군자탕에 길경, 지각, 건강을 더하고 인삼 대신 호삼 5푼, 산약 1돈을 더하여 썼더니 10첩을 복용하고 뻣뻣했던 뒷목과 어깨와 팔의 통증이 모두 나았다. 윗배에 약간 걸리던 것도 그 이후로 점차 나아졌으나 아직 평소대로 회복되지 못하였는데 가난하여 육군자탕을 많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니 애석할 따름이다. 이 병은 습담이 흉격 사이에 응체되어 숨이 차기도 하고 어깨와 목까지 증상이 번지기도 했던 것이니, 마땅히 먼저 육군자탕을 많이 복용시켜 흉격 사이의 습담을 치료하면 어깨와 목은 저절로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깨와 목의 증세가 급박하여 한시도 버티기 어려웠으므로 먼저 강활승습탕과 소풍활혈탕으로 말단을 치료하였고, 어깨와 뒷목의 증세가 모두 반으로 줄었을 때 멈춘 것은 소산시키는 약재를 많이 쓰면 기운이 소모될까 염려되어서였다. 그러므로 급한 증상만 구해낸 후 복용을 멈추고 이어서 육군자탕을 사용하여 흉격 사이의 담을 치료하자 흉격의 담이 내려가고 복부도 낫게 되었다.)
<동의보감> ○ 必先度其形之肥瘦, 以調其氣之虛實, 實則瀉之, 虛則補之. (반드시 먼저 형의 비수를 헤아린 뒤에 기의 허실을 조절하는데, 실하면 사하고 허하면 보한다.)
○ 羌活勝濕湯. 項强. 諸痙項强, 皆屬於濕. 治太陽經中寒濕, 項强或似拔, 不得回顧. (강활승습탕. 목덜미가 뻣뻣한 것. 모든 경병으로 목덜미가 뻣뻣해지는 것은 모두 습에 속한다. 태양경이 한습에 상하여 목덜미가 뻣뻣하거나 빠질 것 같고, 돌아보지 못하는 것을 치료한다.)
○ 疏風活血湯. 治四肢百節流注刺痛. 皆是風濕痰死血所致, 其痛處, 或腫或紅. (소풍활혈탕. 사지의 모든 관절로 돌아다니면서 찌르듯 아픈 경우를 치료한다. 이것은 모두 풍, 습, 담, 어혈로 생긴 것으로 아픈 곳이 붓거나 붉게 된다.)
○ 六君子湯. 凡治痰, 用利藥過多, 致脾氣下虛, 則痰反易生而多. 法當補脾胃, 淸中氣, 則痰自然運下, 乃治本之法也. 治氣虛痰盛. (육군자탕. 담을 치료할 때 잘 통하게 하는 약을 지나치게 쓰면 비기가 처져서 허해지기 때문에 도리어 담이 쉽게 생겨 더욱 많아진다.
담을 치료할 때는 비위를 보하고 중기를 맑게 해야 담이 저절로 내려가게 된다. 이것이 근본을 치료하는 방법이다. 기가 허하여 담이 성한 것을 치료한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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