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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영 칼럼] 여의도와 용산, 쌍두 체제의 그늘

거야, 입법 폭주·탄핵 남발
소여, 거부권·검찰에 기대
국정 교착, 포퓰리즘 기승

[구본영 칼럼] 여의도와 용산, 쌍두 체제의 그늘
구본영 논설고문
연말 정국이 을씨년스럽다. 여야는 정기국회 종료일(9일)까지 새해 예산안을 합의하지 못했다. 12월 임시국회에서 야당이 단독 예산안 처리를 강행할 경우 헌정사에 오점을 남길 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28일 본회의에서 쌍특검법(대장동 50억클럽·김건희 여사 주가조작 의혹)까지 밀어붙이면서 대치는 정점을 향하고 있다.

한국 정치에서 정쟁은 익숙한 풍경이다. 올해는 강도가 유난스러울 뿐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암컷이 설친다"(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 "방울 달린 남자들이 여성 하나보다 못하다"(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함세웅 신부) 등 막말 홍수에서 보듯이. 이런 '증오정치'는 표차가 박빙이었던 대선 결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대장동 비리와 처가 리스크로 '비호감 대결'을 벌였던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연장전을 치르고 있는 꼴이어서다. 쌍특검법 격돌이 그 징표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 반이 넘었다. 그간 입법권을 쥔 야당과 행정권만 가진 소수 여권이 사사건건 부딪쳤다.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168석)으로 방송법 등을 일방통과시키면 윤 대통령이 거부권으로 맞섰다. 양곡관리법·노란봉투법 등은 민주당이 여당일 때는 처리할 엄두도 내지 않았었다. 특히 민주당은 걸핏하면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될 법한 장관 탄핵 카드를 빼들었다. 취임 석 달도 안 된 방통위원장을 탄핵하려 하자 몇 달간 발이 묶일 이동관 위원장은 제 발로 물러났다.

시행령으로 국정을 운영하는, 윤 정부의 자구책도 한계를 드러냈다. '문재인표 탈원전' 폐기를 선언했지만 민주당이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개발사업비 등 원전 관련 예산 1800여억원을 삭감했다. 입법으로 뒷받침하지 못하니 우주청 등 윤 정부의 여타 국정 어젠다도 물 건너갔다. 지난 대선 전 '정치판의 타짜' 김종인은 "이재명이 당선되면 더 폭주할 것이고, 윤석열이 이기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식물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의 예측이 다 들어맞은 건 아니지만, 작금의 국정이 정상궤도를 벗어난 건 분명하다. '용산' 행정 권력과 '여의도' 입법 권력이 물과 기름처럼 따로 노는 형국이니…. 그리스 신화 속 머리 둘 달린 괴수견(오르트로스)처럼.

이 같은 '오르트로스 통치체제'는 민주공화정의 원리와는 거리가 멀다. 국정 현안이 정상적 '견제와 균형' 시스템에서 타협·절충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야가 정반대로 질주하며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하고 있으니 그렇다. 이는 국가공동체 속 누구에게도 이롭진 않다. 여야 스스로에게도 해롭다고 봐야 한다. 날 선 막말이 자기 진영을 단결시킬 순 있을지 모르나, 중도 표를 잃는 등 역효과가 더 크다면 말이다.

그럼에도 쌍특검법을 매개로 '너 죽고 나 살자' 게임은 지속될 낌새다. 거야 입장에서 '대장동 50억클럽 특검'은 '이재명 방탄'을 위해서, '김건희 특검'은 내년 총선을 앞둔 공세용으로 요긴하기 때문이다. 여권이 이 진흙탕 싸움에서 빠져나올 카드도 마땅찮아 보인다. 최근 불거진 김건희 여사 '디올 백 동영상'에서 보듯이 설령 몰래카메라 함정에 빠졌다손 치더라도 자충수를 둔 건 사실인 까닭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피해는 미래 세대가 입는다는 점이 심각하다. 국가 백년대계 논의는 교착되고 혈세를 쏟아붓는 선심 경쟁만 기승을 부릴 게 뻔하다면. 이미 그 조짐이 보였다. 여야가 예타를 무시하고 11조원이 들어가는 달빛 고속철도 예산을 짝짜꿍하려 하지 않았나.

문재인 정부의 한전공대 신설 같은 애물단지 공약은 내년 총선에선 새 발의 피일지도 모른다.
포퓰리즘 확산이 '용산'과 '여의도'라는 쌍두체제의 부산물이라면 정치권의 자체 제동은 어렵다. 그래서 "국민은 자신의 수준에 맞는 민주주의를 가진다"는 경구를 떠올리게 된다. 총선 시계가 빨라지면서 유권자의 어깨만 무거워지게 됐다.

kby777@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