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화재가 일어났던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아파트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다. /사진= 주원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불 났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찾아왔습니다. 희생하신 가장 분과 나이 차이도 얼마 안나 더 마음이 안좋습니다"
27일 오전 서울 도봉구 방학동의 한 아파트. 노란색 소방 통제선이 쳐져 있는 화재 현장 앞에서 만난 김모씨(31)는 한참을 서성이다 이같이 말했다. 성탄절에 32명의 사상자를 낸 화재가 일어난 지 3일이 지났지만 아직 주민들은 고통과 충격을 호소했다. 화마가 삼키고 간 거대한 흔적 앞을 지나가던 주민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애도를 표했다.
아이 살리고 숨 멎은 아빠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5일 오전 4시 57분께 이곳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로 30대 남성 2명이 목숨을 잃었다. 화재가 발생한 장소인 3층의 윗집에 살고 있던 30대 남성 박모씨는 0세 아이를 안고 추락해 숨졌다. 2세 아이는 아내가 재활용 포대에 먼저 던져 놓고 자신도 뛰어내렸다고 한다. 아이들과 아내는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박씨는 끝내 숨졌다.
해당 아파트는 2층부터 11층까지 그을린 자국이 까맣게 남아있었다. 2층부터 4층까지 유리창은 모두 깨져 있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짐작 가능했다.
주민들은 모두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입을 모았다. 13층에 살고 있는 한모씨(65)는 "사건 당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덜컥한다"며 "애기 아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전했다. 아파트 건너편 동에 살고 있는 소모씨(74)도 그을린 자국을 보며 "연말에 이런일이 생기고 남일 같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으로 찾아왔다"며 "얼마나 상황이 다급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을까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아파트 주민들은 아직까지 화마의 후유증을 호소하는 모습이었다. 아파트 주민 A씨는 어머니와 함께 연기 냄새가 베인 침구류를 털고 있었다. 같은 동 주민 60대 최모씨는 "아이들이 아직까지 기침을 하고 있어 병원에 갔다"고 전했다.
경찰, 화재 현장 추가 감식
한편 이날 서울경찰청 과학수사대는 이날 오전 도봉구 아파트 화재 현장에 대한 추가 감식을 실시했다. 경찰은 정확한 화재 원인 및 경위를 규명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할 예정이다.
앞서 경찰은 지난 26일 소방당국,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유관기관과 화재 현장 합동감식을 벌인 결과 부주의로 인해 화재가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화재가 일어난 301호의 작은 방에서는 담배꽁초와 라이터가 발견됐다. 경찰은 "전기적 요인 발화 가능성은 배제되고 인적 요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확인됐다"며 실화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해당 세대에 살고 있는 노부부는 법원의 퇴거 명령도 거부하고 계속 거주하고 있던 상태라고 한다.
관련해 주민들은 "3층에 있는 노부부와 교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해당 동 담당 경비원은 "301호 남성 얼굴은 간간히 보였지만 전혀 교류가 없었고 밖에서 담배 피는 모습도 본 적이 없고 여성 얼굴은 한번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30대 홍모씨도 "창문에 정치적 메세지가 적힌 쪽지가 적혀 있는 모습은 봤지만, 누가 살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며 "화재 원인이 빨리 밝혀지길 바란다"고 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