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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히 주무셨나요" 한국은 지금 '수면 장애 사회' [2024 대한민국 보고서①]

<①경제·사회 모든면에서 악영향 '수면 장애'>
한국인, OECD 국가 중 수면 시간 가장 짧아
만성 스트레스 유발하는 사회 구조 변화해야
정부, 문제의식 공감…수면 장애 대응

"안녕히 주무셨나요" 한국은 지금 '수면 장애 사회' [2024 대한민국 보고서①]
수면장애로 인해 병원 진료를 받은 한국인이 2022년 기준 110만명을 돌파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편집자주]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등 어느 것 하나 상황은 녹록지 않습니다. 갈수록 팍팍해지는 서민의 삶,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살펴봐야 할까요. 파이낸셜뉴스는 신년 기획으로 일상 뒷편에 숨겨진 문제들을 연속 보도합니다. 이는 사회에 전하는 일종의 보고서이기도 합니다.

[파이낸셜뉴스] "어제도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수년째 수면장애를 앓고 있다고 밝힌 20대 대학생 김 모 씨의 푸념이다. 김 씨는 "불면증 이유는 스트레스일 것 같다. 그런데 또 다른 문제는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멍하게 있고 그게 일상이다"라고 털어놨다.

잠 못드는 대한민국.. 수면장애 진료 한해 110만명

'잠이 보약'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잠'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하지만 질병, 스트레스 등 이유로 잠을 제대로 못자는 수면 장애 환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최근 5년간 수면장애 비기질성 수면장애 진료 현황' 자료를 보면, 잠 못 드는 사람은 2018년 91만606명, 2019년 99만8천795명에 이어 2020년 103만7천279명으로 100만명을 돌파했다. 이어 2021년 109만8천980명으로 늘고서 2022년에는 116만3천73명으로 처음으로 110만명을 넘어섰다.

2018년과 비교해 2022년 수면장애와 비기질성 수면장애로 진료받은 인원은 25만2천467명이 늘어나 5년 새 27%의 증가세를 보였다. 2022년 기준으로 연령별로 살펴보면 60대 26만6천925명(22.9%), 50대 21만8천627명(18.7%), 70대 19만6천58명(16.8%), 40대 16만3천467명(14%), 80대 이상 13만2천526명(11.3%), 30대 10만9천944명(9.4%), 20대 6만4천788명(5.5%), 10대 8천623명(0.7%), 10세 미만 2천115명(0.18%) 등의 순이었다.

50대 이상 중장년층이 81만4천136명으로 전체 인원의 약 70%를 차지했다. 수면장애 치료에 들어간 진료비는 2018년 1천526억에서 2022년 2천852억으로 약 1천326억이 늘어 약 87% 증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예 '수면 장애 사회'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생체리듬이 깨지면서 면역세포의 활동량이 떨어진다. 여기에 수면 중 분비되는 멜라토닌 호르몬의 경우 면역 기능 유지에 일조하는 데, 잠이 부족해지면 멜라토닌 분비도 영향을 끼쳐 면역기능이 떨어지게 된다. 결국 제대로 된 사회 생활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개인의 건강 악화까지 초래한다. 결국 수면 장애는 연쇄적으로 여러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일종의 시한폭탄 같은 문제인 셈이다.

한국인 수면 시간 가장 짧아…경제적 손실도 초래
"안녕히 주무셨나요" 한국은 지금 '수면 장애 사회' [2024 대한민국 보고서①]

특히 스트레스는 불면증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이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신체를 흥분상태로 만들어 수면을 방해한다. 잡념을 야기해 숙면을 방해하고 뒤척이게 만든다. 불면증 환자들이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은 이유다.

한국인의 수면건강 실태는 매우 좋지 않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7시간 41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8시간 22분에 훨씬 못미치며 꼴찌를 기록했다. 한국인 수면 만족도는 5점 만점에 평균 2.87점에 불과하며 매년 하락하는 추세다.

직장인들 사이에서 숙면은 일종의 누릴 수 없는 사치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40대 직장인 최모씨는 "살면서 스트레스를 안받을 수 없지만, 관리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관리가 쉽나, 결국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뒤척이고 술 먹고 자고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30대 회사원 박모씨는 "제대로 잠을 자는 직장인들이 몇이나 될까"라면서 "조금이라도 자는게 어디냐"라고 말했다.

수면 부족이 자칫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김성균 보험연구원 연구원이 발표한 '수면 부족의 사회・경제적 손실' 보고서에 따르면, 수면 부족으로부터 발생하는 OECD 주요 국가의 연간 경제적 손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85~2.92%로 추정된다. OECD 5개국 각국의 수면 부족으로부터 발생하는 연간 GDP 대비 경제적 손실 추정치는 캐나다 0.85~1.35%, 독일 1.02~1.56%, 영국 1.36~1.86%, 미국 1.56~2.28%, 일본 1.86~2.92% 수준이다.

이렇다 보니 슬립테크(Sleep-tech, 수면을 돕는 하이테크 기술) 시장도 점차 커지고 있다. 한국수면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수면시장은 2011년 4800억원에서 2021년 약 3조원으로 10년 동안 5배 넘게 커졌다. 글로벌 수면 시장은 2026년 321억달러(약 40조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하지만 이를 다르게 해석하면 그만큼 수면 장애 환자가 지속해서 늘고 있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으로도 볼 수 있다.

수면 허락하는 사회로 갈 수 있어야…정부, '수면 장애' 문제의식 공감

"안녕히 주무셨나요" 한국은 지금 '수면 장애 사회' [2024 대한민국 보고서①]

전문가들은 수면장애, 불면증의 주된 요인 스트레스 만들지 않는 사회 구조가 중요하다고 제언한다. 김석주 대한수면의학회 이사장은 지난해 8월 국회의회관에서 열린 '대국민 수면건강 인식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잠보다 공부나 야근이 중요한 사회적 분위기에서는 어떤 대책도 소용이 없다"라며 충분한 수면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대한수면학회 정유삼 회장은 "수면건강을 증진시키고 수면 부족을 줄여 수면 질환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치료하도록 정부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및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수면이 부족하면 반응 속도가 감소해 운전 중이나 위험한 상황에서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체 교통사고의 25% 정도가 졸음 운전에서 비롯된 것이고, 생명과 관련된 사고에선 무려 75%가 수면 부족과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정부는 수면 장애에 대한 문제 해결의 시급성을 공감, 수면의 사회적 인식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곽순헌 보건복지부 건강정책과장은 "앞으로 지속적인 수면 관련 대국민 실태조사를 통해 데이터를 구축하고 자료를 토대로 대국민 교육 홍보자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아울러 "학생건강검진 항목에 수면건강 조사가 들어가도록 하고, 장시간이나 교대근무로 수면장애를 겪는 근로자의 건강보호를 위한 프로그램이나 사전 검사 등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