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국내 신용평가사들의 '몸 사리기'가 도마 위에 올랐다. 신평사들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 신청을 하기 직전까지도 신용등급 A를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10년 전 동양 사태부터 논란이 돼온 '뒷북' 평가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은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당일(2023년 12월 28일)에도 A-등급을 유지했다. 워크아웃 소식이 알려진 뒤에야 다급하게 10단계 아래인 CCC등급으로 낮췄다.
A-등급 아래는 △BBB등급(BBB+ BBB0 BBB-) △BB등급(BB+, BB0, BB-) △B등급(B+, B0, B-) △CCC~D 구간으로 나눠진다.
그간 시장에서는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신청 가능성이 수차례 제기됐었다. 주요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대응에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자금 상황 등을 감안할 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대세를 이뤘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차입금 만기가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으나 신평사들은 A-등급을 유지하면서 등급 하향검토 대상에 올려둔 것이 전부였다.
태영건설 사례 뿐만 아니다. 대유위니아그룹 계열사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였다. 앞서 대유플러스의 신용등급은 지난해 9월 말 BB0등급에서 D등급으로 추락한 바 있다. 2022년 3월 발행한 신수인수권부사채(BW) 조기상환청구(행사비율 95%·285억원)에 대응하지 못한 탓이다. 조기상환청구액이 한 달 전에 확정됐으나 신평사들은 어떠한 경고음도 울리지 않았다. 한국기업평가는 대유플러스의 직전 등급(BB0)을 그대로 유지했다. 상황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거나 등급 인플레를 안일하게 판단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대유플러스는 조기상환일(9월 24일) 다음날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신평사들은 이틀이 지난 같은 달 27일에서야 대유위니아그룹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하향 조정했다. 대유플러스의 풋옵션이 트리거로 작용하면서 대유위니아그룹의 도산 리스크로까지 번졌다.
나이스신용평가사는 대유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한 날 부랴부랴 같은 계열사 위니아의 신용등급을 BB-에서 B-로 3단계 강등하고 등급 하향검토 대상에 올렸다. 위니아는 그로부터 이틀 후(9월 27일) 부도를 맞았다.
지난 10여년 동안 동양그룹, STX그룹, 한진해운 등에 '뒷북치기' 식으로 우호적 신용등급을 내줬던 신평사들의 등급 인플레가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012년 신평사들은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까지 우호적인 등급을 줬다가 법정관리 신청 후에야 채무불이행 상태로 강등해 비판을 받았다. 신평사들의 신용등급을 믿은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었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 한진해운 부도를 두고, 살릴 수 있는 기업을 신평사가 죽였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면서 "과거 신용등급을 선제적으로 내려 기업 부도의 책임을 신평사에 묻는 경우가 있었고, 신평사들의 등급 평가는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hj91@fnnews.com 김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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