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北 '대사변' 실전 준비 메시지는 6·25전쟁 후 70년간 가동돼
-핵무기 고도화 2격 능력 근접... 중러 뒷배 역학 이용 전략적 판단
-'통일불가론'은 남한무력적화 통일하겠단 의미로 그 자체가 모순
-2024년은 4대 세습의 초석 다지기, 김주애 후계구도 원년 시사
-트럼프 재집권=북 핵보유국 절호의 기회, 군사긴장 최고조 조성
-北 한미일 안보리 동시 이사국 겨냥, 중러 이용 선제적·공세적 견제
-韓 2024년 고난도 퍼즐 풀이에 외교·안보력 극대화가 핵심 단초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김정은이 '대사변'이라는 단어까지 꺼내어 들고, 남북관계를 적대관계로 규정하는 등 2024년의 목표를 전쟁연습으로 설정하는 모양새가 연출되고 있다. 특히 김정은이 군 주요지휘관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무력 충돌' 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조선인민군에 실전을 준비하라는 명확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2024년은 시작과 동시에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북한정권이 전쟁준비를 해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6·25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이 속전속결전으로 전쟁승리라는 목표달성에 실패하고 아들과 손자에게 정권을 물려주며 권력을 유지해 온 북한정권에게 제2의 6·25전쟁 설계는 70년 동안 가동되어 왔다. 단지 과거와 다른 것은 김정은은 이러한 한반도 무력통일 전략을 숨기지 않고 대내외적으로 천명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무력통일 전략을 회색지대(Gray zone)에 두지 않고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초강수를 두는 것일까? 그것은 과거와는 두 가지 변수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핵무기 변수로 김정은의 북한은 핵무력을 실전배치가 가능한 수준으로 고도화시킨 후 이제는 제2격 능력 완성까지 근접 상태로 핵무기가 한반도 전쟁의 주도권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파괴력 있는 무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국제정치 변수로 중국과 러시아가 자신을 두둔해 줄 수밖에 없는 신냉전의 국제적 역학을 역이용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변수가 절충되는 환경에서 김정은이 한반도 무력통일 전략을 공개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김정은이 “통일불가론”을 꺼내어 들면서 동시에 남한 점령을 목표로 삼았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일을 정책으로 선택하지 않는다면 두 개 국가로 영구적으로 분리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그런데 남한점령을 염두에 둔 것은 통일을 하겠다는 의미이기에 모순 그 자체다. 왜 이런 모순이 발생하는 것일까? 김정은의 통일불가론은 한반도 전체가 자유민주주의가 되는 통일은 절대 안 된다는 의미를 역설하면서 자국의 주도하는 무력통일이 유일한 답이라는 의식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통일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통일과정에서 김정은 정권 실각 가능성을 우려하는 과정에서 모순적 메시지가 불쑥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두 가지 변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해로 2024년을 꼭 집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2024년을 4대 세습의 초석을 다지는 해로 삼으려는 포석과 무관치 않다. 김정은은 군 수뇌부를 바로 앞에 두고 무력충돌 준비 지시를 한 당일 날 저녁에 김주애를 대동하고 신년음악회를 관람했는데 그 자리에는 당정군 간부들이 있었다. 이는 김정은이 전쟁연습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하는 간부들에게 김주애를 차기 지도자로 각인시키는 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2023년을 마무리하고 2024년을 시작하기 위한 그 자리에 김주애를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애를 쓴 것은 2024년을 김주애 후계구도 초석 다지기의 원년으로 삼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둘째, 2024년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도 있다고 판단하고 기회의 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트럼프가 재집권 시 자신이 공식 핵보유국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내심 기대하는 모양새다. 따라서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면 향후 트럼프와 협상 시 유리한 고지에서 거래를 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거래는 핵무기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는 북한에 제재를 일부 완화하면서 대신 추가 고도화를 막는 수준에서 절충하는 방식이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핵보유국의 지위를 부여해 주는 최종상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의 핵 프로그램을 완성시켜 주는 최고 수준의 전략적 거래다. 따라서 이 목표 달성을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차원에서 군사적 긴장을 극대화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김정은이 2024년에 긴장수위를 끌어올리려는 세 번째 이유는 유엔 안보리에서 동시에 이사국으로 역할을 하게 된 한국, 미국, 일본에 대한 선제적 견제라고 볼 수 있다. 2023년 3자 안보협력 플랫폼을 공식화한 상황이기에 한미일은 2024년에 유엔 안보리에서 체계적인 공조를 통해 북핵에 대한 압박 수위를 극대화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도래되어 수세적으로 방어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공세에 나서서 이러한 공조의 판을 흔들어보겠다는 속내가 있는 것이다. 북한이 전쟁까지 운운하며 긴장수위를 끌어올리면 중국·러시아가 유엔 안보리를 통한 한미일의 대북 압박을 약화시키는 데 그 역할을 높일 것이라는 셈법도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2024년은 외교·안보에서 고난도 퍼즐을 매일매일 풀어야 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문제를 지혜롭게 줄어 내는 데 있어서 한미동맹, 한미일 안보 아키텍처 등 기존의 ‘안보중심 외교’뿐 아니라 나토-AP4 등 ‘융합외교’도 중요하고 유사입장국과의 ‘가치연대외교’도 중요할 것이다.
더불어 중앙아시아, 글로벌 사우스 등 다양한 국가들과의 ‘확장외교’와 비유사입장국과의 ‘포용외교’도 중요할 것이다. 결국 억제력 강화와 외교력 극대화가 고난이도 퍼즐 해결의 중요한 단초가 될 것이다. 2024년에도 외교·안보는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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