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중구 청년정책협의체가 제안한 '작은 결혼식' 중단 결정
예식장과 부대 비용 400만원 지원한다 했지만 신청 건수 없어
코로나19 끝난 뒤 대규모 고급화 추세 결혼 못 따라가나
청년 정책, 인구 정책 방향 수정 불가피.. 실효성 있는 해법찾아야
지난해 5월에 진행된 울주군의 '작은 결혼식'모습. 예비부부의 결혼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울주군의 작은결혼식은 공공기관 등을 이용해 예식장을 무료 대관하고, 1쌍당 300만원 이내의 예식장 꾸밈·웨딩패키지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부터는 500만원으로 지원비를 인상했다. 울주군 제공
【파이낸셜뉴스 울산=최수상 기자】 예식장은 물론 결혼식 비용을 대부분 지원하는 '작은 결혼식' 사업이 신청하는 예비부부가 없어 1년도 안 돼 중단되는 일이 울산에서 벌어졌다. 한국인 예비부부가 외면한 자리는 다문화가정 부부의 국제결혼이 대신했다. 지방정부가 추진하는 청년 정책과 인구 정책에 대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 한국인 예비부부 외면한 자리, 국제결혼이 메꿔
9일 울산지역 5개 구군에 따르면 울산 중구는 지난해 7월부터 시범사업으로 시행했던 ‘작은 결혼식’을 올해 들어 중단했다.
‘작은 결혼식’은 울산 중구지역 청년들이 참여한 정책협의체가 제안한 지역형 예비 신혼부부 공공 웨딩 프로그램이다.
예비부부 4쌍을 선정해 ’중구 문화의전당‘, ’태화연‘ 등 지역 내 공공기관 및 공원을 무료로 대여하고 예식장 꾸밈, 예복·헤어·메이크업 등을 한 쌍당 4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원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신청이 없어 한 건의 예식도 치르지 못했다.
사업 발표 초기 소규모, 가성비 결혼식으로 웨딩업계와 시민들의 반응은 컸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수요가 없다고 판단한 중구는 결국 올해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고 사업 중단 결정을 내렸다.
웨딩 업계 한 관계자는 “작은 결혼식 후 3개월 이내에 혼인신고 및 전입신고를 해야 하고, 하객 인원은 양가를 합쳐 100명 이내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지만 작은 결혼식 취지에 맞는 부분이라서 큰 걸림돌은 아닌데 신청이 한 건도 없다는 것은 의아했다”라고 말했다.
반면 같은 울산지역이지만 울주군이 시행하는 ‘작은 결혼식’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울주군은 꾸준한 수요로 인해 지난해까지 300만원이었던 지원비를 올해부터는 500만원으로 인상했다.
울주군의 성공 요인을 두고 최근 증가하고 있는 다문화 가정 부부의 국제결혼이 한몫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사업 첫해인 2020년 6쌍에 이어 2021년 7쌍, 2022년 6쌍, 2023년 6쌍이 신청해 지원을 받았는데, 울주군은 이 가운데 절반가량은 국제결혼으로 다문화 가정을 이룬 부부들이라고 밝혔다.
울산 중구지역 청년정책협의체가 제안한 지역형 예비 신혼부부 공공 웨딩 프로그램인 울산 중구의 '작은 결혼식' 홍보물. 당초 기대와 달리 이를 신청한 예비부부가 없어 결국 올해 중단됐다. 파이낸셜뉴스 사진DB
울주군은 도농공 복합지역으로 결혼으로 이주한 외국인 여성 외에도 농장과 산업단지에 일자리를 얻은 외국인 노동자의 유입이 매우 많은 지역이다.
■ 공공기관 예식장 대여도 사실상 사라져
같은 사업임에도 이 같은 차이가 벌어진 것은 결혼에 대한 한국인 예비부부 인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울산에서는 작은 결혼식을 중단한 중구 외에도 대회의실이나 대강당을 저렴한 비용으로 제공하던 울산 남구청 등 지역 공공기관의 예식장 대여 사업 또한 최근 들어 거의 중단됐다.
대여비는 일반 예식장보다 1/3 수준으로 저렴했지만 조명과 음향 등 부족한 예식 시설과 노후된 건물, 뷔페 이용 불편 등으로 이용자가 크게 줄었다.
울산 중구 관계자는 "예식장 대여 사업이나 '작은 결혼식' 사업은 청년들의 의견을 반영한 사업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난 뒤 다시 대규모 고급 결혼식으로 흐름이 바뀌면서 수요가 크게 줄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 예비부부는 “친구나 직장 동료 등이 결혼식을 치른 호텔 또는 고급 예식장들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선뜻 ‘작은 결혼식’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작은 결혼식은 합리적인 비용의 혼인 문화를 정착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지만 결혼이 단순 남녀 간이 아닌 집안 간의 일이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허례허식에 대한 DNA가 남아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정부가 청년들의 결혼·출산·양육을 지원하는 다양한 인구 정책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해야 하겠지만 현 시대 청년들의 인식에 적합한 실효성 있는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통계청의 신혼부부통계 결과’에 따르면 울산의 신혼부부는 2022년 기준 2만2614쌍으로 전년대비 2700쌍이나 줄었다. 청년 인구의 탈울산이 신혼부부 감소의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ulsan@fnnews.com 최수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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