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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강진에도 사람 살린 日의 '네박자'

[재팬 톡] 강진에도 사람 살린 日의 '네박자'
김경민 도쿄특파원
2024년 1월 1일 오후 4시10분쯤. 새해를 맞아 오랜만에 집을 대청소할 때였다. 평소보다 꼼꼼하게 청소에 열중하고 있던 와중, 갑자기 현기증 같은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청소를 이어가려던 그때, 건물이 휘청휘청 크게 흔들렸다. 집 안의 화분 잎사귀와 주방에 걸린 조리도구, 벽에 걸린 물건들이 서로 부딪치면서 소리를 내더니 점점 잦아들었다. 일본 도쿄 15층짜리 맨션은 체감상 1분 남짓 흔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지난가을 새벽에도 규모 5 정도의 지진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냥 '가까운 바다에 지진이 왔나 보다' 하며 일본 야후의 속보를 찾아봤다.

그런데 보통 지진이 아니었다. 진원지도 흔히 있었던 도쿄, 지바 인근 등이 아닌 그 반대편, 우리 동해 쪽이었다. 혼슈 이시카와현 '노토반도 지진'이라고 이름 붙여진 규모 7.6의 강진이었다.

지진 발생 직후 일본 기상청이 노토반도에 최대 5m 대형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NHK방송 화면에는 '쓰나미! 도망쳐!'라는 자막이 큰 글씨로 떴다. 경고 자막은 '쓰나미! 피난!' 'Evacuate!(대피하라)' 등이 계속 번갈아가며 전파됐다.

일본 방송에서, 그것도 공영 NHK에서 '도망쳐'라는 문구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차분하게 속보를 전하던 여성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오후 4시13분 쓰나미 경보가 내려진 이후로는 더욱 크고, 다급해졌다.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순간이었다. 아나운서는 "쓰나미 경보입니다! 즉시 도망치세요!" "지금 당장 집을 떠나서 높은 곳으로 가십시오!" "멈추지 말고 바다에서 떨어진 곳으로 대피하십시오!"라고 격앙된 소리로 말했다. 그러면서 각지의 쓰나미 정보를 서둘러 보도했다. 직설적인 자막과 아나운서의 긴박한 음성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바로 알게 했다. 몇 초 뒤 현장 CCTV 중계화면에는 주민들이 집 밖으로 나와 피신하는 모습, 건물 몇 채가 풍진에 휩싸인 듯한 모습 등이 그대로 방송됐다.

일본 정부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지진 발생 직후인 오후 4시11분 총리관저 위기관리센터에 대책실이 설치됐다. 관방장관과 방재담당상이 4시30분 이전 관저에 들어갔고 신속한 대응에 나섰다.

이튿날에는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본부장으로 하는 비상재해대책본부가 열려 본격적인 수습이 진행됐다. 기시다 총리는 지자체의 요청에 앞서 지원하는 '푸시형 지원'을 실시했다. 전국의 자위대와 경찰·소방 인력을 재해지역으로 급파했다.

공무원들에겐 3가지 지시사항을 강조했다. △인명제일로 전력 대응 △피난정보를 국민에게 적확하게 전달 △피해상황의 신속한 파악 등이다.

이번 강진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규모 9.0) 이후 가장 큰 지진이다. 6300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5년 한신대지진(7.3)보다도 강하다. 노토반도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는 9일 현재 180여명으로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던 건 언론과 정부당국의 신속한 대응, 국민의 협조, 튼튼한 내진설계 등 민관의 '네박자'가 맞아떨어진 덕분이다.

이번 지진으로 '한반도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라는 말이 또 나온다. 2016년 경주 지진과 2017년 포항 지진 이후 '사골'이 되다시피 한 표현이다. 8년이 지났음에도 이 문구가 반복되는 건 공염불의 방증일 것이다.

우리는 지진이 발생할 때마다 허둥댔다. 재난방송은 부정확한 정보로 혼란을 부추겼다.
당국의 늑장대응은 시정되지 않았다. 전국 건축물 10개 중 8개가 내진설계가 안 된 것은 고사하고, 있어야 될 철근까지 빼먹는 '순살 아파트' 사건까지 발생했다. 지금 당장 일본과 같은 대형 지진과 쓰나미가 한반도에서 발생한다면 대규모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국민들은 어떻게 생명을 지키고, 어디에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km@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