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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중대재해법 유예 좌절, 영세기업은 피가 마른다

유예 2년 연장에 여야 합의 실패
1월 임시국회에선 꼭 통과시켜야

[fn사설] 중대재해법 유예 좌절, 영세기업은 피가 마른다
경제6단체 상근부회장들이 지난 3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 입법 추진 중단 및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유예를 위한 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스1
9일 막을 내린 임시국회에서 50인 미만 사업장의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 처리는 결국 좌절됐다. 쟁점법안 합의를 위해 여야 수뇌부가 '2+2 협의체'까지 꾸렸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여야 지도부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피습, 국민의힘 비대위 구성, 쌍특검 재표결 등 정치 현안을 좇느라 법안 처리엔 신경 쓰지 못한 탓이다.

유예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서 중기·영세업체들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상황이 됐다. 이대로라면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장에 유예됐던 중대재해법은 오는 27일부터 바로 시행된다. 개정안은 중대재해법 적용시기를 2년 더 연장, 오는 2026년 1월 27일 시행하는 것이 골자다.

영세사업장에 법 적용 추가 유예가 필요한 이유는 수도 없이 언급됐다. 거대노조 눈치를 보며 미온적이었던 야당도 기업들의 오랜 호소에 전향적인 자세로 돌아선 듯했다. 하지만 급박한 정치일정과 맞물려 야당은 다시 복잡한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와 민생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지금이라도 여야는 다시 머리를 맞대 기업의 절박함에 답을 해줘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2022년 1월 시행 때부터 애매모호한 조항과 처벌 위주의 기조로 비판이 쏟아졌다. 지금도 실효성 논란은 그치지 않고 있다. 법의 취지인 산재예방은 효과를 보지 못했고, 오히려 기업인 범법자만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법 적용대상을 영세업체까지 강제하는 수순을 밟는 상황에 이른 것인데 냉정히 다시 현실을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경영계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소·영세사업장의 80% 이상이 법 시행에 사실상 무방비 상태다. 법에 규정된 세부 안전관리 의무조치를 대비한 기업이 몇 안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전에 제대로 지도·관리를 못한 정부 책임도 없지 않다. 그래서 정부도 사과문을 냈고 작업환경 개선 지원계획도 발표한 것이다. 법상 사고발생 시 의무조치를 다하지 못한 대표는 구속, 징역 등 처벌을 받는다. 대기업과 달리 영세사업장의 경우 대표 처벌은 사업장 폐쇄로 직결된다. 대표의 사법처리 위험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온전히 본업에 충실할 수 있겠느냐는 호소는 과하지 않다.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 6단체가 최근 법 적용 2년 유예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세한 업체의 사정에 경제 6단체가 한뜻을 보인 것은 그만큼 법 시행의 후유증을 같이 걱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경제단체는 "유예 논의가 미뤄지는 현실에 참담한 심정을 표한다"며 "법이 바로 시행되면 준비가 부족한 중기에 처벌이 집중되고 폐업과 근로자 실직 등 부작용 우려가 매우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며 법을 준수할 시간을 주고 예방 노력을 적극 지원할 때라고 강조했는데, 현장을 정확히 지적한 내용이다. 추가 유예기간에 미처 못한 준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지금으로선 최선이다. 경제단체는 2년 연장 후 추가 유예는 더 이상 요구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 정도면 유예를 못해줄 이유가 없다.

여야는 15일부터 1월 임시국회를 연다. 본회의는 25일 예정돼 있다.
법안을 처리할 마지막 시간이다. 법 유예가 영세업체엔 죽고 사는 문제라는 걸 정치권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중기가 무너지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