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중 교사 발언은 비공개 대화
대법원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아이 가방에 몰래 녹음장치를 넣어 교사 목소리를 녹취했다면 법정에서 증거로 활용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교사의 정서적 아동 학대에 대한 책임을 묻는 형사재판에서 부모가 아이를 통해 몰래 한 녹음은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교실에 학생들이 많았어도 일반 대중에겐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이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는 취지다.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11일 담임으로 있던 초등학교의 학생에게 모욕적인 발언의 정서적 학대 행위를 한 혐의(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교사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동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3월 한 초등학교 3학년 교실 수업 중 10여일 전 전학 온 학생에게 "학교 안 다니다 온 애 같아, 1·2학년 때 공부 안 하고 왔다 갔다만 했나 봐" 등 모두 16차례 걸쳐 정신건강·발달에 해를 끼치는 언급을 한 혐의로 법정에 서게 됐다.
A씨의 이 같은 표현은 피해 아동의 말을 들은 부모가 아동 가방에 녹음장치를 넣어 등교시키면서 드러났다.
1심은 죄질이 가볍지 않다며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아동학대 재범예방강의 40시간 수강도 명령했다.
반면 A씨는 "피해 아동의 부모가 타인 간의 대화를 비밀리에 녹음한 것은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며 항소했다. 또 피해 아동의 수업 태도를 수정하고 다른 학생의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의를 준 '훈육의 일환'이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2심은 "증거 능력이 있다"며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초등학교 3학년이 스스로 법익을 방어할 능력이 없는 점 △부모가 녹음하게 된 동기 △부모와 아동은 동일시할 정도로 밀접한 인적 관련이 있는 점 △녹음 외에는 A씨 범죄행위를 밝혀낼 유효·적절한 수단을 강구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판단되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재판부는 이어 A씨의 발언이 30여명 학생들이 있는 가운데 이뤄졌기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에서 녹음할 수 없다고 규정한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의 대화'가 아니라 '공개된 대화'라고 봤다.
재판부는 아울러 아동학대범죄 신고 의무자인 교사 A씨의 발언은 중대한 범죄 행위이므로 증거를 수집할 필요성이 인정되며, 녹음파일 제출로 A씨 사생활 비밀이 일정 침해되더라도 이는 기본권의 제한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다만 2심은 A씨의 발언 16차례 중 2차례는 대상이 다른 학생이라는 점을 근거로 무죄로 선고하면서 초범이라는 점 등도 감안, 벌금 500만원으로 형을 낮췄다.
대법원에서도 쟁점은 '몰래 녹음'의 증거 능력 여부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 발언의 경우 교실 내 학생 30여명 외에 불특정 다수에겐 공개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원심과 달리 '공개되지 않은 대화'라고 봤다.
또 피해 아동의 부모는 A씨의 대화 상대방이 아니었다는 점을 근거로 '타인 간의 대화'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결국 이 사건 녹음 파일은 통신비밀보호법 제14조 1항을 위반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 간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라며 "증거능력이 부정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다만 해당 녹음파일의 증거능력에 관한 법리오해를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하는 것으로 유무죄를 판단한 것은 아니다"고 부연했다.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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