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장대인(張戴人)이라고도 불렸던 장자화(張子和)가 지은 <유문사친(儒門事親)>에는 마음을 다스려 병을 치료했던 다양한 치험례가 나온다.
옛날 장대인(張戴人)이라는 의원이 있었다. 장대인은 명의 중 한 사람으로 약을 잘 썼다. 그러나 모든 병을 약으로만 치료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다른 많은 의원들이 약을 처방해서 치료 효과가 없으면 장대인을 찾았다.
장대인은 한 남자의 심통(心痛)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어느 마을에 관리가 있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금은보화를 싣고 산을 넘다가 도적들에게 습격을 당해서 죽게 되었다. 관리는 그 소식을 듣고서는 크게 슬퍼하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 후에 관리에게 갑자기 흉통이 나타났다.
“아 심장이 너무 아프다. 명치까지 답답하구나.” 관리의 흉통은 날마다 심해지더니 그치지 않았다.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윗배에 덩어리가 잡히는 듯하더니 사발을 엎어놓은 듯 부어올랐다.
관리의 흉통은 실제로는 심장통은 아니었다. 이것은 위장증상을 겸한 신체형 자율신경 장애에 의한 흉통으로 보통 위완심통(胃脘心痛)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역류성 식도염에 의한 흉통도 실제 심장통과 구별해야 한다. 또한 심리적인 문제를 겸한 경우를 칠정심통(七情心痛)이라고 한다.
그 관리는 가슴의 통증이 심해서 참을 수 없었다. 한 의원이 약을 써 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의원은 다시 침을 불에 달궈서 놓는 번침(燔鍼)이나 뜸치료를 해보고자 했지만 관리는 불침과 뜸 치료는 무섭다고 거부했다. 그래서 그 의원은 어쩔 수 없이 장대인을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장대인은 왕진을 가서 진찰을 했다. 관리를 눕혀 놓고 전중혈(膻中穴)을 눌러 보니 자지러지는 듯한 통증을 호소했다. 전중혈은 양쪽 젖가슴 사이의 정중앙 부위로 이 자리를 눌러서 통증이 심하다는 것은 기가 울체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이나 화병에서도 나타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무당이 굿을 하려고 왔다. 보통 제대로 된 의원이라면 ‘어찌 환자의 병을 무당에게 맡기는 것인가?’하고 호통을 쳤을 텐데, 장대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오히려 무당에게 “여기에 잘 오셨네.”라고 덕담까지 했다.
장대인은 무당을 불러서 “내 부탁이 있소. 다른 말과 행동은 하지 말고 여러 가지 미친 듯한 소리나 흉내를 내서 병자를 즐겁게 해 주시오.”라고 하면서 몰래 엽전 꾸러미를 건넸다.
무당은 돈을 벌려고 굿을 하는 터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무당은 갖가지 동물 흉내를 내고 이상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작두를 타는 듯하다가 일부러 미끄러져서 넘어지기도 했다. 관리는 그것을 보고 웃음을 참지 못해 크게 웃었다. 굿이 끝난 이후에도 관리는 혼자서 웃어댔다.
웃음을 참지 못할 때는 남몰래 벽을 향해서 고개를 돌리고 하루 이틀 동안 있기도 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가슴 아래에 뭉친 덩어리가 모두 흩어졌고 흉통도 사라졌다.
관리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제 제 흉통이 모두 없어졌습니다.”라고 하면서 좋아했다.
의원이 장대인에 물었다. “대인은 그 관리를 어떻게 치료를 하신 겁니까?”
그러자 장대인이 말하기를 “<내경>에 ‘우즉기결(憂則氣結)’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우울해하면 기가 뭉친다는 의미입니다. 또 말하기를 ‘희승비(喜勝悲)’라고 했는데, 이 의미는 기쁨은 우울하거나 슬픔을 이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희즉기완(喜則氣緩)’하기 때문에 기뻐하게 되면 뭉친 기운이 풀어집니다. 따라서 관리를 기쁘고 즐겁게 해서 뭉친 기운을 풀어서 우울하고 슬픈 감정을 몰아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모르고 오로지 약이나 침구(鍼灸)만을 이용해서 치료하려고 한다면 그 통증만 증가시킬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의원은 장대인에게 고개를 숙였다.
한번은 장대인이 분노가 지나쳐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부인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관리의 부인은 분노로 인해서 음식을 전혀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사실 부인은 억지로 시집을 왔기에 억울함이 있었다. 시집을 와 보니 자신의 친정보다 가난하고 남편도 그렇게 맘에 들지 않았다. 부인은 가족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하인들을 꾸짖기만 했다. 심지어 수가 틀리면 주위 사람들을 죽여버리겠다고 악담을 퍼붓기까지 했다.
관리와 부인 사이에는 아직 자식이 없었는데, 부인이 하도 화를 내는 바람에 관리는 합방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많은 의원들이 처방을 해 봤지만 부인의 증상은 거의 반년 동안 차도가 없었다. 부인은 몸이 핼쑥해졌다. 그래서 부인의 남편이 장대인에게 진료를 요청했다.
장대인이 진찰을 해보더니, “부인의 증상은 약으로는 치료하기 어렵습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관리는 당황하며 “그럼 이대로 두고만 보란 말이요?”라고 되물었다. 장대인은 “다른 방법으로 치료를 해 보겠습니다.”라고 했다.
장대인은 2명의 기녀(妓女)에게 화장을 진하게 시켜서 광대처럼 분장을 한 후 부인 앞에 나서게 했다. 그랬더니 부인이 박장대소를 하면서 크게 웃었다. 다음 날에는 기녀들에게 서로 붙잡고 씨름을 시켰더니 그 모습을 본 부인은 다시 더 크게 웃었다.
그러고 나서는 사람을 시켜서 부인의 양쪽 옆에서 음식을 차려놓고서는 과장하면서 게걸스럽고 맛있게 먹도록 했다.
그러자 부인은 “그 음식이 그렇게 맛이 있소? 나도 한번 먹어봐도 되겠소?”하고 물으면서 맛을 보기까지 했다.
며칠이 지나지 않아서 부인은 분노하는 것이 점차 줄어들더니 식욕이 점차 좋아지면서 식사량이 늘었다.
장대인은 관리에게 “부인은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에 항상 화가 나 있었던 것이요. 그러니 어떻게든지 조금이라도 즐겁고 웃을 만한 일을 만들어주시면 이유없이 분노하는 일이 없을 겁니다.”라고 당부했다.
관리는 항상 부인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어떻게든지 웃도록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부인은 조금씩 자신의 삶과 처치에 만족하더니 분노하는 증상이 사라지고 얼마 후에는 합방도 하게 되어 자식도 낳게 되었다.
한번은 걱정이 많은 한 부잣집 부인의 불면증을 치료한 적이 있었다. 그 부인은 예민한 성격으로 별것 아닌 일로도 근심 걱정이 많았다. 약 2년 전에 부자였던 친정집이 망한 이후로 근심 걱정에 휩싸여 거의 2년 동안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리고 심장이 벌렁거리고 불안 초조해했다. 문제는 잠을 전혀 자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의원들이 치료를 해 봤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부인의 남편은 결국 장대인을 찾아 치료를 부탁했다.
장대인이 진찰을 해보더니 “양쪽 촌구맥이 모두 늘어져 있을 것을 보면 이것은 비(脾)가 사기(邪氣)를 받은 것입니다. 의서에 ‘비주사(脾主思)’라고 했는데, 바로 비(脾)는 사려(思慮)를 주관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비기(脾氣)가 뭉쳐서 근심과 걱정이 끊이지 않고 입맛이 없고 심장이 벌렁거리면서 건망증과 불면증이 나타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해 주었다.
남편은 “그럼 어떻게 치료하면 되겠습니까?”하고 물었다.
장대인은 “의서에 보면 목극토(木克土)라고 했습니다. 간목(肝木)의 기운이 비토(脾土)의 기운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간목의 감정은 분노이기 때문에 부인을 화나게 하면 비토(脾土)의 기운인 근심 걱정이 꺾일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남편은 “제 부인은 화를 낼지 모르는 사람이오.”라면서 걱정했다.
장대인은 부인의 분노를 유발하기 위해서 남편과 작당 모의를 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부인의 패물이며 집문서, 땅문서 등 재산을 모두 거두어 부인 모르게 다른 곳으로 숨겨두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는 날마다 술을 마시고 취해서 밤늦게 들어오고 부인이 재산을 행방을 물어도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다.
부인이 조금씩 화가 날 즈음, 이제는 집에도 아예 들어오지 말고 잠시 멀리 떠나 있으라고 했다. 마을에는 ‘남편이 부인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는 소문이 났다. 그러나 이 소문도 남편의 하인들을 시켜서 일부러 내게 한 것이다. 부인은 그 소문을 듣고서는 대노(大怒)를 했다.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부인은 “아이고 내 팔자야. 분하고 원통하다.”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서는 땀을 흠뻑 흘리고 나더니 그날 밤은 곤히 잠들었다. 다음 날도 하루종일 잠만 잤다. 이렇게 누워있기를 8~9일 정도까지 하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음식을 찾았다.
장대인은 부인을 찾아 진맥을 해보더니 “이제야 맥이 평화로움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하고서는 밖을 보면서 “이제 들어오시오.”라고 누군가를 불렀다.
그랬더니 문밖에 있던 남편이 패물과 집문서 땅문서를 가지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야 환하게 웃으며 장대인에게 감사를 전했다.
모든 증상이 약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약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증상은 마음을 다스려 치료할 수 있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 제목의 ○○은 ‘마음’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유문사친(儒門事親)> ○ 息城司侯, 聞父死於賊, 乃大悲哭之, 罷, 便覺心痛, 日增不已, 月餘成塊, 狀若覆杯, 大痛不住, 藥皆無功. 議用燔針炷艾, 病患惡之, 乃求於戴人. 戴人, 適巫者在其旁, 乃學巫者, 雜以狂言以謔病者, 至是大笑, 不忍回. 面向壁, 一, 二日, 心下結塊皆散. 戴人曰: 內經言, 憂則氣結, 喜則百脈舒和. 又雲:喜勝悲. 內經自有此法治之, 不知何用針灸哉? 適足增其痛耳! (식성에 사는 사후의 관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버지가 도적들에게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슬퍼하면서 대성통곡을 하였다. 그 후에 갑자기 심통을 느꼈는데 날마다 증가하여 그치지 않았고, 한 달쯤 되었을 때 덩어리가 생겼는데 모양이 잔을 뒤집어 놓은 것과 같았다. 통증이 심하여서 잘 참지를 못하였고, 약을 써도 모두 효과가 없었다. 불에 달구침을 놓거나 뜸을 사용하려고 의논하는데 환자가 싫어하여 이에 대인을 찾아와 도움을 구하였다. 대인이 이르렀을 때 마침 무당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어서, 이에 무당에게 여러가지 광언으로써 병자를 즐겁게 해 주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하였더니 크게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얼굴을 벽을 향한 채 1~2일 동안 있었더니 심하에 뭉쳐있던 덩어리가 모두 흩어졌다. 대인이 말하기를 내경의 말에 ‘우즉기결’한다고 하였는데, 기뻐하게 되면 모든 맥이 펼쳐지는 것이다. 또 말하기를 ‘희승비’라, 내경에 이러한 방법으로 치료하라고 하였는데, 제대로 알지 못하고 어찌 침구를 사용한단 말인가? 그 통증만 증가시킬 뿐이리라!)
○ 項關令之妻, 病食不欲食, 常好叫呼怒罵, 欲殺左右, 惡言不輟. 眾醫皆處藥, 幾半載尚爾. 其夫命戴人視之. 戴人曰, 此難以藥治. 乃使二娼, 各塗丹粉, 作伶人狀, 其婦大笑; 次日, 又令作角抵, 又大笑; 其旁常以兩個能食之婦, 誇其食美, 其婦亦索其食, 而爲一嘗. 不數日, 怒減食增, 不藥而瘥, 後得一子. 夫醫貴有才, 若無才, 何足應變無窮? (항관령의 부인이 노하는 병으로 음식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고, 항상 소리치거나 꾸짖는 것을 좋아하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하고 악언을 그치지 않았다. 많은 의사들이 모두 처방을 하여 약을 먹였지만 거의 반 년 동안 여전하였다. 그 남편이 대인으로 하여금 진료하게 하였는데, 대인이 말하기를 “이것은 약물로 치료하기는 힘듭니다.”하고, 이에 2명의 기녀로 하여금 화장을 하게 하여 희극배우처럼 만들었더니 그 부인이 크게 웃었다. 다음날 또한 그렇게 하여 씨름을 하게 하였더니 또 크게 웃었다. 그녀의 곁에서는 항상 양쪽으로 잘 먹는 부인을 두고서 음식이 맛있음을 과장하게 하였더니 그 부인도 역시 그 음식을 찾아서 한 번 맛보게 되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노하는 것이 줄어들면서 식욕도 증가하여 약을 먹지 않아도 나았으며, 나중에 자녀도 낳았다. 무릇 의사에게는 재주 있음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니, 만약 재주가 없다면 어찌 변화가 무궁한 것에 충분히 호응할 수 있으리오!)
○ 一富家婦人, 傷思慮過甚, 二年不寐, 無藥可療. 其夫求戴人治之. 戴人曰:兩手脈俱緩, 此脾受之也. 脾主思故也. 乃與其夫, 以怒而激之. 多取其財, 飲酒數日, 不處一法而去. 其人大怒汗出, 是夜困眠, 如此者, 八, 九日不寤, 自是而食進, 脈得其平. (한 부잣집 부인이 사려가 지나치게 심하여서 2년 동안 잠을 자지 못하였는데,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 없어서, 그 남편이 대인을 찾아와서 치료해 주기를 요구하였다. 대인이 말하기를 “양쪽 수맥이 모두 완하니 이것은 비가 사기를 받은 것으로 ‘비주사’하는 까닭이다.”라고 하면서, 이에 그 남편과 함께 분노가 밀려들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의 재물을 많이 취하여 여러 날 동안 음주하고선 한 가지 방법도 가르쳐 주지 않고 도망가 버렸다. 그 부인이 크게 노하면서 땀을 흘리고는 그날 밤 곤하게 잠을 잤다. 이와 같이 잠자기를 8~9일 동안 깨지 않더니, 그 이후로 음식을 먹고 맥도 그 평해졌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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