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도쿄=박소연 기자】 저지르지도 않은 횡령 누명을 쓰고 수천만 원의 빚더미에 오른 사람들이 세상을 등졌다. 회계 시스템 오류 때문이다. 수십 년 전 영국에서 발생한 ‘우체국 스캔들’을 다룬 드라마가 최근 인기를 끌면서, 이 사건을 촉발한 일본 정보통신 회사 후지쓰에 대한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15일 요미우리신문은 이른바 영국 ‘우체국 스캔들’과 관련해 시스템을 개발한 후지쓰에 배상금 부담, 국회 청문회 출석, 정부 입찰 배제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영국 우체국은 1999년 후지쓰의 회계 시스템 ‘호라이즌’을 도입했다. 이후 우체국 창구 현금 잔액이 시스템상 숫자보다 낮은 일이 잇따랐다.
영국에서는 우체국 창구가 각 지역의 개인 사업주에게 위탁되고 있다. 우체국장을 맡고 있는 개인 사업주는 잔액 부족분을 자기 부담으로 메워야 했다.
이에 따라 1999~2015년 지점장과 점원 700명 이상이 회계 부정 및 절도 등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영국 가디언은 "수백 명이 투옥되거나 파산했고, 최소 4명은 자살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는 후지쓰가 개발한 회계 시스템 호라이즌의 오류 때문이었다. 우체국 직원들은 저지르지도 않은 횡령 누명을 쓰고 형사 처벌을 받거나 금전적인 손실을 본 것이다.
수십 년 전 '우체국 스캔들'이 다시 물 위로 떠 오른 것은 지난 1~4일 실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 '미스터 베이츠 대 우체국'이 방영되면서다. 총 4편으로 이뤄진 이 드라마는 영국 웨일스 지역 우체국 점주인 앨런 베이츠가 횡령 혐의로 기소돼 우체국을 상대로 법정 싸움을 벌이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드라마는 당시 피해를 본 이들이 법적 구제를 받지 못하고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조명했다.
드라마 방영 이후 영국 여론은 들끓고 있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지난 7일 사설을 통해 “후지쓰는 우체국 스캔들에 대한 비용을 지급해야 한다”며 “후지쓰의 역할이 무엇이냐. 이 회사는 이번 사태에서 잘 드러나지도 않았고, 우체국 계약을 포함해 영국 공공부문 계약을 계속 받아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후지쓰는 영국 세무 당국 등의 시스템 개발을 현재도 맡고 있으며, 2022년도 수주액은 4억2700만파운드(약 790억엔)이다.
후지쓰는 영국 정부의 조사에 전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오는 16일에는 후지쓰 간부가 영국 의회에 출석해 증언할 예정이다.
psy@fnnews.com 박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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