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을 대한민국으로
부르며 무력통일 재천명
남쪽 친북에 미련접은 듯
구본영 논설고문
새해 들어 북한의 태도가 거칠다. 지난 5일 서해 북방한계선 해상완충구역에서 백령도·연평도 방향으로 포탄 200여발을 난사하더니, 13일 중거리급 탄도미사일까지 쏴 올렸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한국이 "불변의 주적"이라며 "통일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제거해 버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도 "남조선 영토 평정" 등 호전적 언사를 쏟아냈다. "북남 관계가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라면서. 짐짓 남한을 화해·협력을 통한 통일의 파트너로 보지 않겠다는 시그널이다. 남측과의 교류단체를 모두 정리하겠다고 밝힌 것도 그 연장선이었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새삼스럽진 않다. 1950년 6·25 남침 실패 이후 협상을 통한 통일도 3대 세습독재정권이 줄곧 외쳐온 키워드였다. 그러면서 북 수뇌부는 적화통일이란 목표 자체는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세 불리할 땐 늘 무력통일 대신 연방제를 통한 평화통일을 내세웠다. 즉 경제난이 가중되거나 국제적 고립 시 '우리 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말이다.
일찍이 '김씨 조선'의 시조 격인 고 김일성 주석은 고려연방제를 제창했다. '1국가2체제'의 연방제 국가로 통일하자는 취지였다. 물론 평화통일이란 외피는 걸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 남한 내 종북세력을 등에 업고 연방정부와 의회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속셈이 깔려 있었다. 이른바 통일전선전술을 적절히 구사해 궁극적으로 적화통일을 이루겠다는, 북한판 흡수통일론이었던 셈이다.
이는 중국 정부의 '일국양제' 노선과 유사하다. 홍콩 민주화 시위가 무자비하게 진압된 데서 보듯 1국가2체제는 허울뿐이고 결국 '하나의 중국'을 지향한다는 점에서다. 지난 13일 대만 총통선거 결과도 중국식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가 반영됐을 법하다. 국민당에 비해 일국양제에 더 부정적인 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된 배경이다.
김정은은 이번에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선언하면서 종전과 달리 남조선을 '대한민국'으로 지칭했다. 말로나마 구사했던 대남 화해협력 노선을 전면 폐기하고, 유사시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심지어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며 핵무기 사용까지 시사했다. 연방제 통일론이 더는 먹혀들지 않을 것임을 절감하자 남한, 특히 친북세력을 향해 히스테리를 부리고 있는 꼴이다.
그간 북한 정권은 한국 정부가 진보든 보수든 상관없이 핵·미사일 개발에 주력해 왔다. 반면 우리는 햇볕정책을 맹신한 정권이 들어서면 북핵을 '대미 협상용'으로 두둔하곤 했다. 심지어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에서 김정은의 눈속임용 비핵화 의지를 대변해주다시피 했다. 핵무장으로 세습독재 체제를 유지하는 게 최우선 과제인 북한 정권엔 문 정권이야말로 '쓸모 있는 바보'였을 게다. 옛 소련의 레닌이 공산혁명에 활용할 만한 서방의 얼치기 좌파 지식인들을 그렇게 부르며 비웃었듯이.
그렇다면 북한의 거친 '말 폭탄'에 우리 정부의 과도한 대응은 금물이다. 거덜 난 경제곳간을 메우려고 최고 성능의 미사일과 포탄 수백만발을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로 수출하고 있는 북이 아닌가. 말로만 무력통일 불사를 외치면서 실제론 4월 총선을 앞둔 남한 사회를 교란하려는 의도가 진실에 가깝다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긴 눈으로 북핵 저지를 위한 입체적 대북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러시아 문호 안톤 체호프는 "연극의 1막에 등장한 총은 3막에서 반드시 발사된다"고 했다. 당장은 허장성세이겠지만, 훗날 만에 하나 북의 핵 불장난에 대비해 한미동맹을 통한 확장억제 강화는 필수다. 북한 지도부와 대화의 창은 열어두되 북 주민을 겨냥한 방송 등을 통해 북한 체제를 아래로부터 개혁·개방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듯싶다.
kby77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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