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피해자 보고 웃고, 증거 인멸에 급급"
검찰 20년 구형에 감경 없이 그대로 20년 선고
유족측 "검사 구형 더 높았더라면...아쉬움 남아"
롤스로이스를 몰다 행인을 치어 숨지게 한 20대 남성 신모씨가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여동생은) 부모님 손 벌리는 일도 없었고 사고친 적도 없다. 오히려 부모님을 저보다 더 챙겼다. 동생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너무 착해서 걱정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압구정 롤스로이스 뺑소니 사건으로 사망한 배모씨의 친오빠는 여동생을 두고 이같이 말했다. 여동생은 지난해 8월 2일 오후 8시10분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인도를 걷던 중 롤스로이스 차량에 치였다.
사고 5분 전 성형외과 건물에서 비틀거리며 나왔던 롤스로이스 운전자 신모씨(29)는 사고 후 신고도 하지 않고 현장을 이탈했다. 이 사고로 피해자 배씨는 머리·배를 다치는 등 전치 24주의 중상을 입고 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졌다.
배씨의 오빠는 "(가해자가) 구속되기 전까지도 직접적으로 연락 온 건 없었다. 법원으로 송치되고 난 뒤 변호사님 통해서 사과편지를 보내고 싶다는 식의 얘기를 들었지만 개인적으로 연락받은 건 없다"라고 밝혔다.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신씨는 사고 직후 이뤄진 마약 간이검사에서 ‘클럽 마약’으로 불리는 케타민 양성 반응이 나왔다. 신씨는 당일 오후 병원에서 향정신성의약품 2종을 투약받고 나와 운전대를 잡았다가 10분만에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됐다.
CCTV 영상에 따르면 압구정역 인근 성형외과 건물 입구에서 신씨가 비틀거리며 나온다. 그는 휘청이며 걷다가 도로를 무단횡단한 뒤 길 건너 공영주차장에 주차된 롤스로이스 차에 탄다. 이 차량은 4분 뒤 출발했고 우측으로 쏠리며 달리다가 100m를 채 가지 못하고 배씨를 향해 돌진했다.
2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6단독 최민혜 판사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위반(도주치사)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된 신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약물의 영향이 있으니 운전하지 말라는 의사의 지시를 무시했다가 사고를 내고 체포 과정에서 피해자를 보고 웃는 등 비정상적 행위를 했다"면서 "범행 직후에는 증거인멸에 급급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석 달 이상 의식불명으로 버티다 사망했고 유족들은 피고인의 엄벌을 탄원하고 있다"며 "죄책이 무거워 중형 선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선고 후 유족을 대리하는 권나원 변호사는 "검찰의 구형대로 선고해 주신 재판부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판결 요지 등을 보면 재판부가 죄질이 중하다는 사실을 모두 인정했고 치료 내지 시술을 빙자한 마약 투약 의혹과 현장 도주 또는 증거인멸 시도 같은 것을 모두 인정했기 때문에 만약 검사의 구형이 조금 더 높았다면 조금 더 중한 형이 선고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권 변호사는 "피해자의 부모님은 여전히 큰 상심으로 재판 상황을 정확히 듣는 것 자체를 괴로워한다"며 "피해자의 오빠가 탄원서나 자료를 제출해 왔다"고 설명했다.
"가해자가 사과한 적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권 변호사는 "결심 이후 변호인을 통해 피해자 부모님을 만날 수 있겠느냐는 의사를 타진해 온 적은 있다"면서도 "진정성 있는 사과와 혐의 인정 및 잘못을 뉘우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는 뜻을 계속 전했지만 가해자 측은 '고민하고 있다'고만 할 뿐 끝까지 입장 변화가 없었다"고 말했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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