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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시대의 급소'와 정치적 리더십

이념화·좁은 시야가 문제
시대정신 정확히 판독 후
리더십 창출은 시민의 몫

[노동일 칼럼] '시대의 급소'와 정치적 리더십
노동일 주필
우리 제헌헌법에 '근로자의 이익균점권'이라는 조항이 있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에서는 근로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이익의 분배에 균점할 권리가 있다." 근로자들이 급여가 아닌 기업 이윤 일부를 분배받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는 말이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의 반영이라 본다. 일제강점기 지식인들이 사회주의에 기울어 있었고, 해방 정국을 좌익이 주도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제헌헌법의 농지개혁 조항 등과 함께 이익균점권 조항도 사회주의적 풍토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공작, 좌익의 준동, 6·25전쟁 등 우리가 나락으로 떨어질 계기는 여러 번 있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고수한 것은 우리 역사의 기적 중 하나이다. 숱한 난관을 뚫고 한미동맹 등을 통해 그 역사를 주도한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과 리더십이 더욱 소중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적 위상을 점할 수 있었던 데는 정치적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다. 자동차가 귀하던 시절 경부고속도로를 만들고, 모래벌판에 포항제철소를 건설하게 한 박정희 대통령. 정국을 불안하게 만들던 군부 쿠데타를 역사의 유물로 만든 김영삼 대통령. 정보기술(IT) 산업 육성을 통해 정보화 강국의 토대를 놓은 김대중 대통령. 산업화와 민주화의 여정에서 빛나는 별들이다. 그 이후 우리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이를 주도한 정치인들이 있었는가. 산업화 이후의 경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길을 잃은 데는 빈약한 정치리더십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철학문화연구소 엮음)는 책에는 '시대정신과 리더십'에 대한 4인 석학의 대담이 실려 있다. 참석자들은 (정치인을 포함한) 우리가 아직도 무지한 이유로 '이념화'와 '좁은 시야'를 든다. 우리나라 정책을 주도하는 그룹들이 사회주의, 민족관념, 동포주의라는 경향성에 갇혀 있는 것은 이념화 때문이다. 우리가 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과정에서 가장 개방적인 사고를 펼쳤던 때는 산업화 시기이며 민주화 이후 우리의 시야가 국내 정치투쟁으로만 좁혀진 것도 문제이다.

각각의 시대에서 화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시대의 급소'라면, 우리 시대의 급소는 어떻게 4차 산업혁명에 잘 적응할 것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시대의 급소'에 국가의 역량을 결집해야" 하며 "이런 일을 하게 도움을 주는 리더십이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리더십"이란 게 석학들의 진단이다. 선거는 이런 논의가 가장 활발해지는 시기이다. 누가 우리 시대의 급소 해결에 가장 적합한 리더인지 국민의 선택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때이다. 현실은 어떤가. 며칠간 집권 2년도 안된 여당의 최대 관심사는 3번째 대표인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거취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가적 과제에 대한 심각한 이견이 존재한다는 등의 얘기도 아니다. 겉으로는 공천, 속으로는 김건희 여사 문제 때문이었음은 모두가 안다. 윤심, 한심 운운이 한심할 따름이다.

야당은 자신들의 거대 의석으로 4년간 이룩한 업적을 국민 앞에 내놓고 재신임을 구해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선거제 꼼수에 대한 미련으로 눈치를 보고 있다. 정정당당한 경쟁 대신 대통령 배우자에 대한 공격과 비열한 정치공작에 편승해 이익을 보려는 치졸한 모습만 연출한다. 시대정신이 무엇이고 그걸 어떻게 실현하기 위해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는 들어보기 어렵다. 누군가를 제거하기 위해 선거에 나선다는 출사표만이 난무한다.
급기야 범죄 혐의로 수감 중인 송영길 전 대표가 '검찰해체당' 옥중 창당 선언까지 한다. 정치혐오를 부추기고 싶지 않지만 난장판이요, 코미디라는 평가 외에 달리 할 말이 없다.

"급변하는 세계의 시대정신을 정확히 판독하고 우리 사회의 내부 문제들을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는 리더십을 창출하는 과업은, 결국 평범한 시민들의 몫"이라는 대담자들의 결론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너무 무력한 말처럼 들리지만 그처럼 강력한 진리가 어디 있겠는가.

dinoh7869@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