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경성의 월스트리트 ‘남대문로’
수백년 전 화폐경제 시초 된 전통시장.. 구한말 은행 설립 주도한 시전 상인들
외세로부터 ‘민족자본’ 지켜낸 장본인.. 무교동·소공동·청계천 지나는 남대문로
상거래·금융거래 활발해 돈이 몰리는 곳.. 남대문시장 둘러 은행 본점 자리한 이유
명동사채시장, 기업들 제2 자금조달처.. 7080년대 은행·증권 몰려 ‘금융 1번지’
시장 끼고 성장한 은행들 '상생금융’ 행보.. 은행장들 직접 전통시장 찾아 목소리 청취
주차장·결제 인프라 지원 등 금융애로 해소
남대문로 일대에 대한천일은행 광통관, 한성은행 본점, 한일은행 본점(오른쪽부터) 등이 줄지어 있다. 이들 은행은 각각 1909년, 1912년, 1921년에 차례대로 들어섰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은행원들이 전통시장 출장 등에 사용했던 동전카트. 사진=김경수 기자
신용카드가 보편화되기 전까지 은행직원들은 전통시장에 출장을 자주 나왔다. 동전을 지폐로 바꿔주는 기계인 일명 '동전 수레'를 전통시장 곳곳에서 끌고 다녔다. 동전교환 기계(동전카트)는 손수레에 실어서 은행원들이 시장을 순회했다. 상점 곳곳을 방문하면서 상인들에게 동전을 바꿔줬다. 은행의 현장 출장은 일종의 고객관리를 위한 은행의 출장서비스였던 셈이다.
현금 사용이 줄면서 근래에는 전통시장 출장과 동전카트가 사라졌지만 은행과 상인들은 여전히 깊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역대 정부들이 소상공인 상인들 살리기 정책을 이어가는 것에 은행들도 적극 동참해왔다. 대형 은행들은 최근까지도 '풀뿌리 경제'의 근간이 되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상생금융을 챙기고 있다.
전통시장과 은행의 깊은 인연은 그 기원이 수백년을 더 거슬러 올라간다. 중공업 발달 이전까지 상공업의 중심지였던 시장 인근에서 화폐경제의 시초를 이루는 경제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 유례는 우리나라 대표 전통시장인 남대문시장과 조선의 국영상점이 들어선 육의전 터 인근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남대문시장은 지난 1414년 '정부임대전'을 개시한 것이 시초가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지난 1911년 '조선농업주식회사' 설립을 계기로 지금의 시장이 개장됐다.
숭례문 옆 남대문시장 입구에 가보면 선혜청이 있던 자리라는 표시판이 있다. 선혜청은 대동법을 시행하면서 신설한 관청이다. 대동법은 민초들의 삶을 찌들게 했던 공납제도를 개편해 쌀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특산품을 세금으로 내게 한 조선 초기 공납제는 폐단이 많았다. 관리와 상인들이 백성들이 납부할 공납을 대신 바치고, 백성들에게 원금의 몇 배로 받아냈다. 이자부담을 견디지 못한 자작농들이 소작농으로 몰락하는 일이 많았다. 선혜청의 설립은 민초들에게 희망이 됐다.
선혜청은 점차 커져서 북쪽 창고인 '북창'과 남쪽 창고인 '남창'을 뒀다. 이는 현재 북창동과 남창동의 기원이 됐다. 선혜청은 법정화폐인 상평통보를 발행했던 상평청과도 인연이 깊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선혜청의 소속 기관으로 상평청을 뒀다. 조선시대 상평청의 기원은 고려시대 성종 때 설립된 이름이 비슷한 상평창이다. 상평창은 일종은 물가조절기관으로 현대의 한국은행과 같은 역할을 했다. 상평창은 흉년이 들면 곡식을 풀고 풍년이 들면 곡물을 사들였다.
■남대문로는 '경성의 월스트리트'
남대문시장에서 몇 분 거리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은행과 투자사들이 대거 밀집해 있다.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의 본점이 남대문시장을 중심으로 둘러 싸고 있다.
또한 종각으로 이어지는 남대문로 1가 일대는 이미 1900년대에 금융의 1번지로 불렸다. 대한천일은행, 한성은행, 조선식산은행, 조선저축은행, 조선은행 등이 주변에 들어섰다. 소위 '경성의 월스트리트'였던 셈이다. 종각 인근은 조선시대부터 시전행랑, 육의전 등 한양을 대표하던 전통적인 시장들이 들어서 전국상인들이 몰려는 대표적인 상거래 중심지였다. 수십분 거리에 우리나라 근대 은행의 시초가 되는 우리은행과 조흥은행(현 신한은행)의 첫 지점도 위치하고 있다.
구한말에 활동하던 상인들은 외세 자본에 대응하기 위해 민족은행 설립을 주도했다. 서울과 개성의 유력한 상인들과 관료들은 고종황제의 황실 자금 지원을 받아 1899년 '하늘 아래 첫째가는 은행'이라는 뜻을 가진 대한천일은행(현 우리은행)을 창립했다. 대한천일은행은 일반은행의 역할과 함께 국가의 자금을 관리하는 중앙은행의 역할도 담당했다. 일본의 경제적 침략으로부터 우리 자본을 굳건히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후 지난 1909년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은행 본점인 광통관은 종로에 신축됐다. 광통관은 광복 이후에는 한국상업은행 종로지점, 한빛은행 종로지점을 거쳐 현재는 우리은행 종로금융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광통관은 지난 1899년에 설립된 대한천일은행의 점포로 사용된 건물이다. 인근 청계천에 광통교라는 다리가 있어 광통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여전히 115년 이상 고풍적인 옛 건물에서 은행업무를 보고 있다.
우리은행이 전국에 둔 100년 이상 된 지점들은 유명 전통시장과 상가 옆에 위치한 경우가 많다. 100년이 넘은 우리은행 인천지점은 신포국제시장을 맞대고 있다. 우리은행 인천지점은 대한천일은행 시절인 1899년 5월 10일에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동 부근에서 영업을 시작해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남대문로는 서울 무교동, 소공동, 청계천, 명동까지 연결된다. 이 지역은 소위 돈이 몰리는 구역이었다. 남대문시장 인근의 명동은 소위 '큰손'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남대문시장에서 도로로 몇 분 거리인 명동은 조선 말기부터 본격적인 현대식 금융거리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지난 1922년 주식거래소 격인 경성현물취인소가 명동에 처음 들어선 이래 1970, 1980년대 은행, 증권들이 대거 몰렸다. 명동사채시장은 지난 1970년대까지 기업들의 제2 자금조달처로 활용될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다.
증권사와 어음할인업자, 사채업자들이 몰리면서 한때 한국의 월스트리트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79년 여의도에 증권거래소가 들어서면서 증권사들이 점차 여의도로 이동하면서 쇠락기에 돌입했다. 또한 지난 1980년대 일명 '명동 사채왕'들이 빠져나가고 지난 1990년대 금융실명제가 도입되면서 크게 위축했다. 지난 2000년대 이후 증권사들이 '탈여의도'를 시행하며 미래에셋증권, 대신증권이 남대문 인근 을지로 일대에 본사를 두면서 옛 명성을 일부 회복했다.
■옛 중간상인들의 금융업무 활발
은행들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만해도 전통적 금융거래는 주로 계모임, 객주, 보부상, 전당포 등을 통해 이루어졌다. 금융거래 수단은 환, 어음, 외획 등이 있었으며, 거래상황을 기록하는 문서와 장부 체계를 갖고 있었다. 객주와 여각은 상인들이 모여드는 도시와 항구, 포구 등에서 상인간의 물품거래를 하도록 해주거나 물건을 대신 팔아주고 수수료를 받는 중간상인이었다. 조선 후기 상업 발달과 함께 성장했다. 객주는 위탁판매를 하면서 숙박, 운송, 창고업 등과 같은 업무를 함께 했다. 돈을 맡기거나 빌려주는 일, 환이나 어음의 발행과 인수와 같은 금융 업무를 맡아 현대의 일반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보부상도 이 같은 상거래와 금융거래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했다. 또한 시장 주변에서 성행했던 전당포는 고려시대 중엽부터 전당국 또는 전포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시작됐다. 조선시대부터 전당포로 불리며 성업했다.
조선후기에는 큰 규모의 돈거래나 장거리 거래가 이뤄지는 일이 많아졌으나 주요 지불수단이었던 동전은 부피와 무게의 제약으로 사용이 적합하지 않았다. 따라서 동전을 대체할 지불수단인 환이나 어음과 같은 신용화폐가 더욱 활성화됐다. 환은 발행과 지불장소가 달랐던 반면, 어음은 동일인에 의한 발행과 지불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 일정한 금액의 지불을 약속하는 유가증권이라는 기본 성격은 거의 유사했다. 신용에 기초해 화폐와 비슷하게 유통된 환과 어음은 근대적 형태의 금융기관이 등장하기 이전 신용화폐로 큰 기능을 했다.
■소상공인 '상생의 길' 찾는 은행들
현대의 대형 은행들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에게 최대 수천억원의 금융 지원 외에도 다양한 혜택을 직접 챙기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를 어렵게 극복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서민금융상품의 금리 인하, 소상공인을 위한 특별 출연 및 신상품 출시를 비롯해 이들을 위한 맞춤형 경영컨설팅 확대 등 다양한 비금융적 지원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주요 은행장들은 지난 2023년에 전통시장을 찾아 소상공인들의 요청 사항을 직접 들었다.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서울 남대문시장상인회와 광장시장 인근 우리소상공인종합지원센터를 잇따라 방문해 소상공인들의 요청을 경청하고 은행 지원 방안에 대해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은행은 이후 남대문시장 상인회와 '상생경영 및 동반성장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고 스마트 결제기기 지원을 통해 남대문시장 스마트 결제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기로 했다. 또한 우리은행은 본점 주차장뿐만 아니라 동대문시장, 통인시장 등 전통시장 인근 21개 우리은행 소유 지점 주차장도 주말 개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이승열 하나은행장도 하나금융그룹 임직원들과 함께 서울 종로구 소재 광장시장을 직접 찾아 현장의 소상공인들과 소통하며 실질적인 도움을 약속했다.
진옥동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상생금융 선언에만 그치지 말고 진행 현황을 수시로 확인하라고 은행직원들에게 당부했다.
또한 영업현장에서 소상공인의 목소리를 듣고 보완사항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이재근 KB국민은행 은행장은 소상공인 지원에 기여한 공로로 '중소벤처기업 금융지원상'에서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피해기업과 고금리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소상공인을 지원해 금융애로 해소에 도움을 준 공로를 인정받았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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