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는 사실을 왜곡
교묘히 악의적으로 포장
가짜뉴스=범죄행위 해당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운명과 권력"이라는 조지 허버트 부시 대통령의 일대기에 대한 책을 선물받아 읽어 볼 기회가 있었다. 이른바 '아버지 부시'로 불리기도 하는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고 재임 시 지지도가 90%에 달하기도 했지만 당시 경제상황은 좋지 않아 그 유명한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 한마디에 빌 클린턴 대통령에게 패배한 사람이다. 그의 치적에 대한 평가는 어떠했든 간에 전직 대통령으로서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사실 이 책에서 오랜만에 필자의 기억을 소환해낸 사람은 리 앳워터(하비 르로이 앳워터)이다. 그는 1988년 부시 당시 부통령이 공화당 예선을 거쳐 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물리치고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한 정치전략가이자 참모였던 사람이다.
리 앳워터는 우리로 치면 선거 상황실장 역할을 맡았는데 그는 선거의 승리를 위해서라면 네거티브 전략(가짜뉴스를 포함해서)을 적극 활용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는 부정적 인상을 많이 준 사람이고 정적도 많았다.
선거 승리 후 부시 대통령은 그를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으로 임명하는데 이 자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전당대회 의장 비슷하기도 하면서 상시 중앙당 조직이 없는 미국에서는 선거가 없을 때는 당 대표와 유사한 역할도 맡는 그러한 자리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정도 실권은 있으나 상·하원 의원이나 장관 등 정무직에 비교하면 정치적 비중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어느 기자가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던 제임스 베이커는 국무장관이 되었는데 당신은 왜 전국위원회 의장밖에 못 되었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앳워터는 매우 인상적인 대답을 한다. '베이커는 정치가(statesman)이고, 나는 정치인(politician)이다'.
이 대답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 역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선거전략은 현실적이지만 이상적이지 않다는 자각을 했던 것 같다. 앳워터는 전국위원장이 된 지 불과 2년 만에 뇌종양으로 사망하는데 사망 전 가톨릭에 귀의하고 듀카키스를 포함한 그의 정적들에게 일일이 사과편지를 보낸 것도 이와 같은 생각의 연장선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주도했던 네거티브의 대표적인 것은 중범죄인들이 회전문을 통해 자유롭게 감옥 바깥을 드나드는 연출을 한 것인데, 이는 듀카키스 주지사 시절 있던 주말석방제도를 통해 나왔던 윌리 호튼이라는 죄수가 한 여성을 강간한 사건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이것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실제로 부시는 낙승을 거두었다) 선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네거티브 전략은 '사실'을 교묘히 '악의적'일 정도로 '포장'하는 것으로서 윤리적(도덕적)으로 문제가 많고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앞의 '회전문' 네거티브에서 볼 수 있듯이 완전히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과는 다르다. 반면 우리 선거에서 자주 발견되는 '가짜뉴스' '허위 흑색선전'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조작하는 것으로, 근절해야 하는 범죄행위이다. 당선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만들어내서 상대 후보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것은 주권자인 국민의 올바른 의사결정을 방해하여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제도를 무력화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제 총선이 70여일 남은 상태에서 이런 가짜뉴스들이 다시 횡행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가짜뉴스는 반드시 밝혀내어 그 주동자를 처벌받게 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행위로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언론사들이 연합하여 가짜뉴스를 탐지하고 고발하는 일을 담당하는 조직도 있다 하는데, 우리도 검토해 볼 만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유권자인 국민도 가짜뉴스에 속지 않도록 하는 깨어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유일호 前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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