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다음엔 국민의 힘 배현진 의원이다. 최근 괴한으로부터 피습된 정당인들 얘기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2일 부산을 방문했다가 60대 남성으로부터 공격받았다. 이 남성은 ‘내가 이재명’이라는 종이왕관을 쓰고, 이 대표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접근한 뒤 흉기로 이 대표의 목을 노렸다. 상처가 깊거나 부위가 조금 달랐으면 생명이 위독해졌을 수도 있다.
국민의 힘 배현진 의원은 지난 15일 자주 찾는 장소에 들렀다가 변을 당했다. 배 의원 측에 따르면 중학교 2학년 학생이 “국민의 힘 배현진 의원입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이 학생은 배 의원이 신분을 확인해주자 주머니에 감춰둔 둔기로 배 의원의 머리를 10차례 넘게 가격했다.
불과 한달 사이 정치인 테러가 연이어 발생한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총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이번 범죄는 정확한 동기 파악과 함께 엄벌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다. 정치인 테러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벌이는 ‘묻지마 칼부림’ 사건 같은 이상동기범죄와는 다르다. 대부분은 목표가 명확하고 자신의 신념과 다른 사람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역대 정치인 테러 사건들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극단행동 뒤에는 정치인이나 당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폭행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8년 5월, 30대 남성 김모씨는 김 대표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는 척 하다가 안면을 가격했다. 이재명 피습범이 접근해온 수법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유한국당이 남북정상회담을 ‘정치쇼’라고 비방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면서 당초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를 폭행하려 했으나 찾지 못하자 김 대표를 폭행했다고 진술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당시 한나라당 대표시절이던 2006년 5월에 신촌 현대백화점 앞에서 5·31 지방선거에 출마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하던 중 괴한 지모씨로부터 커터칼로 얼굴 부위를 공격당한 바 있다. 지씨는 과거 전과로 오랜기간 수감한 것이 억울해 여당측에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고 범행 동기를 밝혔다.
이재명 대표와 배현진 의원 가해자들에게도 공통점이 감지된다. 이들은 평상시 유튜브나 방송,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즐겼으며 특히 정치 관련 콘텐츠에 관심을 보였다는 의혹이 전해진다. 이재명을 공격한 김씨의 이웃에 따르면 그는 평상시 정치 유튜브를 즐겨 봤다고 한다. 그는 범행 직후 경찰 조사에서도 “이재명을 죽이려고 했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배 의원을 폭행한 중학생의 동기는 현재까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이 학생이 폭행 전 배 의원의 신분을 확인한 점, 이재명 지지자들 사이에 끼어 동영상을 스스로 촬영한 점 등을 살펴보면 행동을 촉발시킨 배경을 어렴풋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전문가들은 정치 양극화가 이번 테러의 토양이 됐다고 본다. 각자 진영 논리에 빠져 상대를 강하게 헐뜯는 메시지가 피의자 머릿 속에 깊이 각인된 결과라는 것이다. 유튜브 등 콘텐츠 플랫폼 업체들의 ‘필터 버블’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높다. 사용자 선호 콘텐츠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알고리즘이 오히려 사용자들을 확증편향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확증편향 자체가 범죄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정치 극단주의자들에게는 범행을 결정짓는 방아쇠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는 명분과 세력의 싸움이다. 총선이 다가올수록 이슈를 선점하기 위한 팬덤 정치와 네거티브 공세는 더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는 과격한 언동과 혐오를 부추기는 발언을 더욱 경계하기 바란다.
확증 편향을 부추겨 만든 팬덤 정치는 그만큼의 반작용도 커지기 마련이다. 혐오는 파괴력이 있지만 지속성 있는 메시지를 던질 수 없다. 아울러 검·경 등 수사기관도 빈틈없는 수사로 음모론 등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아야 한다.
ksh@fnnews.com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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