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평소 자신을 무시해 왔다는 이유로 80대 건물주를 살해한 30대 주차관리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11월 12일 오전 10시께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동의 한 건물 옥상에서 80대 건물주 A씨가 목을 흉기로 찔러 살해됐다. 범인은 해당 건물에서 주차 관리인으로 일하던 30대 B씨다. 범행 이후 B씨는 한 모텔로 이동해 몸을 숨겼다가 같은 날 오후 5시 30분께 서울 용산구 용산역으로 가서 강릉행 KTX에 탑승하여 도주를 시도했다.
A씨 사망 사건을 처음 신고한 사람은 건물 관리인이었다. 출동한 경찰은 B씨가 범행 후 모텔에 숨어 있다가 도주하는 장면을 폐쇄회로(CC)TV로 포착하고 추적에 나섰다. 도주 경로를 추적, 도주 4시간 만인 오후 9시 32분께 강원도 강릉시 강릉 KTX 역사 앞에서 B씨를 긴급체포했다.
아울러 경찰은 B씨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40대 C씨도 지난해 11월 12일 10시 10분께 긴급체포했다. C씨는 B씨가 범행 후 자신의 모텔 주변으로 도주하자 도주 경로를 비추는 CCTV 장면을 삭제하는 등 증거 인멸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가 시작되면서 이른바 '영등포 건물주 살인' 사건의 진실이 속속 드러났다.
직접 범행을 한 B씨는 지난해 11월 12일 오전 A씨 건물 6층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다 오전 10시께 A씨가 출근할 때 옥상으로 데리고 가 미리 준비한 흉기로 목 부위 찔러 살해한 것으로 확인됐다.
충격을 준 부분은 사건 자체가 아닌 사건의 배경이었다. C씨의 교묘한 가스라이팅에 의해 B씨가 범행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 수사결과였다.
검찰에 따르면 C씨는 지난 2019년 5월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쉼터 등을 떠돌아다니던 중증 지적장애 B씨를 발견하고 데려와 일을 시켰다. 이 과정에서 수시로 "나는 네 아빠이자 형으로서 너를 가장 위하는 사람이다" 등의 말을 하며 B씨가 자신을 전적으로 따르도록 가스라이팅을 일삼았다. C씨는 B씨에게 처음엔 모텔 주차장 관리를 맡겼고 시간이 지나면서 모텔 관리와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일까지 시켰지만 임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B씨가 매달 받는 80만~90만원의 장애인 급여 중 ‘모텔 방세’ 명목으로 50만~60만원씩을 갈취했다. B씨는 실제로는 모텔 방에서 지내지 않고 주차부스 등에서 생활했다.
C씨는 이 사건 범행을 위해 평소 B씨와 A씨 사이를 이간질하기도 했다. 그는 B씨에게 수시로 "A씨가 너를 주차장에서 쫓아내려고 한다", "A씨를 죽여야 우리가 주차장과 건물을 차지할 수 있다" 등의 이야기를 하며 적대감을 조장했다. 장기간 C씨에게서 정신적으로 지배받는 상태였던 B씨는 C씨 말에 따라 끝내 A씨를 살해하고 말았다.
사건의 직접 배경은 부동산 관련 다툼이었다. 검찰 공소사실에 따르면 C씨는 A씨가 지난 2022년 9월 자신과 체결했던 영등포 공공주택 재개발 관련 부동산 컨설팅 계약의 효력을 다투기 시작하고 지난해 9월 자신을 상대로 주차장 임대차 해지 및 명도소송을 제기하자, 피해자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C씨는 B씨로 하여금 복면·우비 등 범행도구를 구매하게 하고 범행장소 및 피해자의 동선을 알려주는 방식으로 살인을 교사했다.
다만 C씨는 조사 과정에서 "B씨의 우발적 단독범행으로 제가 동업 관계인 A씨 살해를 지시할 이유가 없다"며 혐의를 극구 부인했다.
서울 남부지법에서는 30일 오전 A씨를 살해 혐의를 받는 B씨에 대한 첫 공판을 진행됐다. 이날 B씨는 혐의를 모두 인정하면서 "공범(C씨)이 시켰고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wongood@fnnews.com 주원규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