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구조 의혹설 되풀이
기업가치평가 패싱 우려
공정성 잣대로 제도 손질
논설위원
일반인들은 소유분산기업을 복마전이라고 여길 것이다. 최고경영자(CEO)가 사리사욕을 채우려 무리한 연임을 시도하고, 사외이사들은 죄다 CEO와 한통속이라는 이미지로 점철돼 있다. CEO 교체와 정기주주총회가 맞물린 시점엔 어김없이 이사진의 윤리적 결함이 봇물처럼 터진다. 그런데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새로 물갈이된 이사진도 또 그러려니 한다. KT와 포스코에 이런 낙인이 찍혔고, 지금은 KT&G가 그렇다.
소유분산기업을 둘러싼 논쟁은 지배구조 문제에서 출발한다. 한국에서 익숙한 지배구조는 대주주인 오너 중심의 주인 있는 회사를 떠올린다. 소유와 경영이 합쳐진 오너 중심 경영은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독단경영에 따른 오너리스크를 짊어지고 있다. 소유분산기업은 전문경영인 중심이기에 독단경영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에 대한 책임이 분산돼 회사가 엉뚱하게 산으로 갈 수 있다. '주인 없는 회사'라는 꼬리표가 붙는 이유다. 주인 없는 회사이다 보니 전문경영인이 장기적인 자리보전을 위해 '참호'를 파고 '진지'를 구축한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감시와 견제장치를 유명무실화하고 친한 사외이사를 포진시키고 우호주주 확보에 회사자원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이 정도로 회사 지배구조가 망가졌다면 사람을 바꿀 게 아니라 제도를 갈아엎어야 한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주총 시즌만 되면 잠잠하던 정의의 깃발이 나부낀다. 국민을 앞세운 '보이지 않는 손'이 이사진의 도덕성에 십자포화를 퍼붓는다. 경영권 혼란을 틈타 시세차익을 노리는 세력도 가세해 각종 음모론이 난무한다. 문제는 CEO와 사외이사들이 새로 바뀌어도 기존의 지배구조엔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꿀단지를 노리는 다른 세력으로 바뀐 복마전이 재연될 거라고 '합리적 의심'을 할 수 있다.
국민과 주주를 위한다는 '정의'가 한바탕 휩쓸고 간 자리에 황폐함만 남는 게 소유분산기업의 딜레마다. 기업의 주요 이해관계자인 직원들은 한순간에 방관자 혹은 암묵적 동조자로 전락하고, 주가 하락에 따른 주주의 피해는 보상받을 길이 없다. 회사가 한번 흔들리면 지역사회나 협력업체에 미치는 타격도 크다.
소유분산기업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기업의 가치'라는 목표를 최우선 순위에 둬야 한다. 말로만 정의를 외치며 속셈은 다른 곳에 있다면 기업의 가치만 훼손될 뿐이다. 기업문화에 공정이 바로 서면 기업의 가치도 올라간다는 실증연구들이 많다. 공정한 제도와 문화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이 가운데 소유분산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은 절차 공정성과 정보 공정성 관점에서 합리적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변죽만 울리는 음모론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경계의 대상이다.
나아가 기업 가치에 대한 냉철한 평가가 바로 서야 한다. 사실 소유분산기업 논쟁에서 빠진 중요한 평가항목이 한 가지 있다. 기업의 실적과 펀더멘털이다. 소유분산기업 논쟁은 주로 경영진의 도덕적 의혹 위주로 쏠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기존 경영진이 이룬 실적과 펀더멘털에 대한 평가는 쏙 빠졌다. 경영진 평가에 실적과 펀더멘털이 빠진다면 그건 경영이 아니라 정치다. 실적은 매출과 영업이익 그리고 주가 등 객관적 지표로 확인 가능하다.
이와 달리 펀더멘털은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뒷받침할 만한 혁신과 체질변화로 파악 가능하다. 포스코가 '굴뚝기업' 이미지에서 벗어나 글로벌 '소재업체'로 변신한 점, KT가 전통 통신사업자에서 디지털 플랫폼 기업(디지코)으로 탈바꿈한 성과, KT&G가 국내 1위 사업자에서 글로벌 5위 기업으로 도약한 성과들은 경영진 평가 과정에서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 실적과 펀더멘털 관리에서 실패한 경영자는 용서받을 수 없지만 탁월한 성과를 내면 연임 이상도 가능한 게 기업 세계다. 경영은 기업 가치평가로, 정치는 선거로 심판하자.
jjack3@fnnews.com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