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재 정치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초기였던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약 3주 뒤 미군 사령부는 B-1 전략폭격기와 사이버 공격용 항공기 등 20여대의 비행기를 동원해 북방한계선을 넘는 모의 공습훈련을 했다. 청와대 참모진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에게 "미국이 북한에 대해 선을 넘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미국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저서 '격노'를 통해 "미국인들은 2017년 7월부터 9월까지의 기간이 매우 위험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고 당시 상황을 기술했다.
같은 해 11월. 한국을 찾은 트럼프는 평택 미군기지를 방문한 뒤 서울로 이동하던 도중 3개의 높은 건물을 지났다. 트럼프는 무슨 건물인지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에게 물었고, 브룩스 사령관은 "삼성"이라고 답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한 것"이라면서 "이곳은 부유한 나라다. 저 고층건물들을 봐라"라고 말했다고 우드워드는 전했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압박하던 그에겐 한국의 어떠한 모습도 돈을 뜯어낼 명분으로 보였다. 이랬던 트럼프가 만약 미국 대통령에 다시 당선된다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어떻게 요동칠지 가늠하기 어렵다. 트럼프 정부 초반과 같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 삶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 또 논의될 수 있다.
변화무쌍한 시대 속에 대외상황은 살벌하다. 문제는 트럼프 복귀 여부가 거대한 여러 변수 중 일부라는 점이다. 미중 패권경쟁은 여전하고 북한은 러시아에 기대, 하루가 멀다 하고 도발을 감행하고 있다. 자국 이익 블록화로 무역허들까지 높아졌다. 경제나 안보 모두 녹록지 않은 현실 속에 한국은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이렇게 엄중한 시점에 국내에서 벌어지는 정쟁을 보면 한심하다. 태평하게 누가 더 잘못했나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총선이 50일도 남지 않았다. 현시대에 누가 나라를 제대로 이끌지 정책적으로 따져봐야 할 때다. 근거 없는 비하, 가짜뉴스로 만연한 싸구려 정치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 상대에 대한 흠집 내기로 승리하는 정치는 잘못된 민생과 외교정책을 야기하는 근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더더욱 냉철한 정책 비교가 이번 총선에서 요구된다.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의 퇴행적인 정치는 심도 있는 정책 준비를 후순위로 미루게 하는 암적 존재다. 우리가 외부의 힘에 무기력하게 휘둘리지 않으려면 시대에 맞는 정책이 뭔지 살피는 게 급선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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