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과거에 비해 일을 안 한다고 하는데, 여전히 야근하거나 집에서 업무를 처리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법관에게는 왜 이렇게 엄격한지 모르겠어요."
재판 지연 원인을 두고 일각에서 법관들이 '일과 삶의 균형'(워라밸)을 챙긴 데 따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자 한 판사는 이같이 말했다.
'재판 지연' 문제는 사법부의 최대 현안으로 꼽히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합의사건 1심 판결이 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2018년 297.1일에서 2022년 420.1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형사합의 1심(불구속 기준)의 평균 처리 기간은 159.6일에서 223.7일로 길어졌다.
일각에선 판사들의 '워라밸 중시 문화'가 재판 지연을 악화시켰다고 지적한다. 과거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밤샘 근무까지 했는데, 워라밸을 챙기면서 업무량이 줄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 지연의 원인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재판이 밀리는 경우가 생겼고, 사건의 복잡성이 더해지면서 신속한 처리가 어렵게 됐다. 여기에 법원장 후보 추천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 폐지가 재판 지연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이 부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에 대해선 우려가 들기도 한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로 법원장이 일선 법관들의 눈치를 보느라 사건 처리를 독려하지 않아서,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가 폐지되면서 법관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아서라는 게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판사들의 업무 과중으로 귀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관 부족' 문제 해소가 시급하다. 사건은 더 다양하고 복잡해졌는데, 인원이 그대로이면 결국 부담은 판사들의 몫이 되고, 재판 지연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실제 조희대 대법원장은 법관 증원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기도 했다.
최근 방청했던 재판에서 숨을 헐떡이며 들어왔던 재판장이 기억에 남는다.
오후 2시 재판에서 그는 "식사를 마치고, 자료를 검토하느라 급하게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도 잡히지 않아 계단으로 오느라 숨이 좀 차는데, 숨 좀 고르고 시작하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식사 시간도 여유롭게 챙기지 못하는 법원에서 일부 기업에서 추진되고 있는 '주 40시간', '주 4일 근무제'는 먼 나라 이야기로 느껴질 뿐이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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