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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 밀려도 좋으니 취소만 안되길"… 중환자들 '전전긍긍'[의료계 파업에 불안감 가중]

매월 받던 치료가 무기한 연기
"의사가 환자를 사지로 내몰아"
텅텅 빈 병실에 시민들 '분노'
개원의로 파업 번질까 우려도

"수술 밀려도 좋으니 취소만 안되길"… 중환자들 '전전긍긍'[의료계 파업에 불안감 가중]
전공의들이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방침에 반대해 무더기로 현장을 이탈하면서 동네 병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5일 서울의 한 동네 병원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사진=강명연 기자

의대정원 확대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에 이어 전임의까지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면서 중증환자를 책임지는 대학병원의 혼란은 커질 것으로 보인다. 개원의가 중심인 대한의사협회(의협)까지 단체행동에 돌입할 경우 전면 의료대란으로 번져 환자들의 피해가 확산될 전망이다.

■"매월 받는 치료, 한달 건너뛰라니"

25일 기자들이 만난 시민들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진료나 수술이 지연됐다며 의료대란 장기화를 우려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1년째 황반 치료를 받고 있는 김모씨(91)는 지난주로 잡혀 있던 치료일정이 4월로 밀렸다. 김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주사를 맞으러 가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와 예약을 다시 잡았다"며 "그동안 증상이 많이 나아졌는데 한 달을 건너뛰어야 한다니 걱정"이라고 말했다.

고관절 괴사로 인공관절 수술을 앞둔 장모씨(64) 역시 3월 초로 예정됐던 일정이 4월로 연기됐다. 장씨는 "연골이 닳아 생활에 지장이 커서 수술을 결심했지만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수술을 못한다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전남대병원에서 뇌혈관 수술 후 입원 중인 B씨(67)는 "저는 무사히 수술을 마쳤지만 지난주 수술을 위해 입원했던 사람들은 다 퇴원시켜서 병실이 텅텅 비었다"며 "의사들 때문에 환자들이 사지로 내몰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임의까지 집단행동에 가세하면 대학병원 혼란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장씨는 "의사들이 언제까지 파업할지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무섭다"며 "다음달 수술은 예정대로 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사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전임의들이 의료현장 이탈에 가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공의 과정을 마친 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전임의들은 보통 2월 말 계약을 한다. 지난주 전공의가 비운 공백을 전임의와 교수들이 채웠지만 전임의마저 병원을 떠나면 더 이상 환자를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료계는 앞으로 일주일에서 열흘이 버틸 수 있는 한계로 보고 있다.

■의료파업 동네 병원 번질까

의료 소비자들은 의료대란이 동네 병원으로 번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개원의 중심의 의협은 조만간 집단행동 여부를 놓고 찬반투표를 할 예정이다. 다만 정확한 단체행동 시기 등은 정해지지 않았다.

동네 병원에 다니는 심모씨(90)는 "혈압, 고지혈증 등 아산병원으로 내과를 다니다가 몇 년 전 동네 병원으로 옮겼다"며 "큰 병원은 다섯달씩 약을 주지만 동네 병원은 주기가 짧아 수월했는데 개원의로 파업이 번지면 큰일"이라고 했다.

당뇨로 동네 내과를 다니는 이모씨(87)는 "의사들이 파업한다는 뉴스를 보고 걱정돼 병원에 전화했는데 걱정 말고 오라고 해서 다행"이라면서도 "갈등이 길어지면 매주 가던 동네 병원이 문을 닫지 않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10년 전 척추수술을 받은 뒤 정기적으로 병원에 다니는 김모씨(60)는 "당뇨, 고혈압 등 지병이 많아 다니던 병원에서 진료를 보는 게 중요한데, 사람 목숨을 담보로 의사들이 환자들을 위협하니 불안하면서도 화가 난다"고 비판했다.

의대 교수들은 의료단체와 정부가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 10개 거점 국립대 교수회장으로 구성된 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거국련) 회장단은 25일 입장문을 통해 "정부와 의료계는 자신들의 정당성만 강조하며 의료대란을 심화하고 있다"며 "정부는 책임 있는 의료단체와 공식적인 대화를 즉시 시작하고, 2000명 증원 원칙을 완화해 현실을 고려한 증원 정책을 세워달라"고 요구했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김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