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 상점은 기사와 무관함.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파이낸셜뉴스] 엔화 가치가 내려가는 ‘엔저 현상’이 장기화하며 일본 내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이중가격제’ 도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같은 상품이라도 일본인에게는 저렴하게, 외국인에게는 비싸게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6일 외신 등에 따르면 최근 역시 일본 료칸 협회 부회장은 “싱가포르에서는 테마파크나 슈퍼마켓, 레스토랑 등에서 거주자에게 할인 혜택을 주는 방법으로 이중가격제를 운영한다”며 “외국인 관광객들은 돈을 더 내는 대신 패스트트랙이나 정중한 지원 등의 ‘좋은 불공정’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중가격제’는 같은 상품이라도 외국인에게는 더 비싼 돈을 받고 파는 가격 정책을 뜻한다. 일본 신분증 등 내국인임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보이면 호텔이나 음식점, 관광지 등에서 할인을 해주는 식 중 하나다.
이중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에는 장기화하는 엔저 현상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화시장에서 엔화의 가치가 떨어지자 일본 관광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에만 외국인 2,506만 6,100명이 일본을 찾았다.
이런 엔저 시기에는 외국인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에 일본에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었다. 예컨대 환율이 100엔당 1,000원을 넘었던 2022년 초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1,000엔짜리 라면을 먹으려면 실질적으로 1만 원 이상이 필요했다. 하지만 환율이 885원까지 내려온 지금은 8,850원만 있으면 같은 라면을 먹을 수 있다. 일본 관광에 드는 비용이 10% 이상 줄어든 셈이다. 반면 일본인들은 엔화 환율과 관계없이 같은 비용을 내고 생활해야 한다.
이처럼 치솟는 관광 수요가 인플레이션을 자극하자 나온 고육지책이 이중가격제다. 실제 일본 JR그룹은 외국인 관광객에게 판매하는 JK철도패스(7일권) 가격을 2만 9,650엔에서 5만 엔으로 69% 인상했다.
다만 이중가격제를 도입하면 엔저에 따른 내국인 물가 부담을 낮출 수 있지만 부작용도 있다. 외국인에게만 차별적 대우를 한다는 인식이 커지면 일본의 주요 산업 중 하나인 관광 산업이 타격받을 가능성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전체 일본 관광객 가운데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인 반발도 무시할 수 없다. JNTO는 지난해 한국인 695만 8,500명이 일본을 찾았다고 집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해 말 “방일 외국인 여행객들에게 물건이나 서비스 가격을 높게 받는 외국인 이중가격제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확산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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