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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대기업 일자리로 대변되는 좋은 일자리 부족이 우리 사회에서 대학 입시 경쟁 과열과 출산율 하락, 수도권 집중 심화 등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 결과가 나왔다. 대개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기에, 정부는 기업의 규모화(scale-up)가 원활히 진행될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 선임연구위원은 27일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보고서는 "일반적으로 청년들은 중소기업 일자리보다 대기업 일자리를 선호한다"며 "문제는 현실에서 존재하는 대부분의 일자리가 대기업 일자리가 아닌 중소기업 일자리라는 점"이라고 짚었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2023)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학생들이 취업하기 원하는 기업 가운데 중소기업은 16%에 불과했다. 반면, 대기업은 64%, 공공부문은 44%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대기업 비중은 OECD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OECD는 300인이 아닌 250인을 기준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구분하는데, 한국의 250인 이상 기업이 전체 일자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OECD 최하위인 것으로 나타난다. 즉, 이 비중이 우리나라에서는 14%인 데 반해 독일에서는 41%에 달하며, 스웨덴(44%), 영국(46%), 프랑스(47%), 미국(58%)은 독일보다도 높은 비중을 보이고 있다. 근로조건과 임금도 대중소기업간 차이가 크다. 출산전후휴가 및 육아휴직 이용률도 중소기업에는 크게 떨어지는 편이다.
보고서는 대기업 일자리가 부족함에 따라 좋은 대학에 입학하고자 하는 입시경쟁, 낮은 출산율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 연구위원은 "입시제도를 아무리 고쳐도 입시경쟁은 줄지 않고 있다"며 "문제는 입시제도에 있지 않고 대기업 일자리의 부족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는 임금 때문이다. 고 연구위원은 "상위권 대학 졸업생과 하위권 대학 졸업생 간의 임금격차가 크기 때문에 대학 입시경쟁이 치열하다"라며 "상위권 대학 졸업자들은 임금뿐 아니라 정규직 취업, 대기업 취업, 장기근속 등에 있어서도 유리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사교육 과열의 원인이기도 하다. 고 연구위원은 "정부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사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결국 좋은 일자리의 부족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또한 사회이동성(social mobility)도 제약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문제도 대기업 일자리의 부족과 관계가 있다. 중소기업에서는 모성보호제도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제도나 정책이 있더라도 현장에서 집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 일자리를 늘려 여성 근로자가 실제로 모성보호제도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매우 중요함을 의미한다.
수도권 집중 현상도 결국은 일자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 연구위원은 "시·도 단위에서도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노동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된다"며 "큰 사업체가 많을수록 임금수준이 높고 수도권으로의 인구유출도 적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고 봤다.
보고서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고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에 대해 여러 가지 지원이 제공되는 반면 대기업에 대해 여러 가지 규제가 부과된다면, 기업은 대기업으로 성장할 유인이 적어 규모를 키우지 않고 중소기업으로 남으려 할 것"이라며 "기업의 규모화(scale-up)를 저해하는 정책적 요인들을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과도한 입시경쟁을 줄이고 사회적 이동성을 제고하며, 여성 고용률과 출산율을 높이고, 비수도권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개별 정책분야 각각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이들 문제 전반에 공통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규모화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정책당국과 일반 국민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imne@fnnews.com 홍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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