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민경 정치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참 야당 복이 많다." 최근 한 정계 인사에게 들은 말이다. 총선이 40여일밖에 남지 않았는데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공천 파동으로 휘청이는 상황이 이 한 문장에 담겼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만든 신조어 '친명횡재 비명횡사'는 언론과 정계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고, '심리적 분당'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돌이켜 보면 공천으로 인한 민주당의 계파 분란은 예견된 일이었다. 지난해 연말 취재 과정에서 여러 명의 친명 인사에게 공천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한 의원은 "이번 민주당의 공천기준은 앞으로 이재명 대표와 함께 갈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라고 했다. 또 이번 총선에 후보로 뛰어든 '자타공인 친명' 인사는 "현역의원 평가에는 동료의원의 평가가 들어가기 때문에 '하위평가 20% 명단'은 비명계 의원들로 채워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들이 노골적으로 '비명계 공천 학살'을 언급하는 것에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 말이 현실화되면 민주당이 분당되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하지만 실제 일은 벌어졌고, '명문(이재명·문재인) 통합'의 길은 멀어지고 있다.
특히 운동권의 대표주자인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노동운동가 출신 홍영표 의원의 컷오프로 계파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임 전 실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며, 홍 의원은 문재인 당대표 시절 친문 '부엉이 모임'을 조직하는 등 '친문 좌장'으로 불린다.
이에 이재명 대표가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계획에 발맞추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한 위원장이 이번 총선의 화두로 '운동권 청산'을 내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이 대표가 앞장서 운동권 척결에 솔선수범하고 있다는 '뼈있는' 농담이다.
민주당의 공천 내홍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의 새누리당 '옥새 파동'을 떠올리게 한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당시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친박감별사' 소동을 겪으며 리더십은 붕괴됐고 선거는 참패했다.
최근 여론조사상 하락세인 민주당 지지율은 결국 국민의힘에 역전당했고, 위기감을 느낀 민주당 인사들은 이 대표의 2선 후퇴를 외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연쇄적으로 탈당을 결단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당 지도부들이 "단수공천되면 친명, 경선을 치르면 비명이라고 한다"며 폭소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담겼다. 반전이 없는 한, 민주당이 새누리당의 전철을 밟게 될 수 있다는 긴장감을 가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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