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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황후의 손목에 O을 묶어 진맥(診脈)을 하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한동하의 본초여담] 황후의 손목에 O을 묶어 진맥(診脈)을 하다
손사막의 고향인 중국 섬서성 요현(耀縣) 약왕산에 있는 약왕묘(藥王廟) 동벽의 벽화에는 현사진맥(懸絲診脈)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장손황후가 임신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도 출산을 하지 못해 중병으로 앓아누웠다. 황후는 의식도 명료하지 않았다. 여러 명의 태의(太醫)들이 진료를 했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태종은 매일매일 안절부절못했다.

어느 날, 당 태종은 국정을 처리한 후에 대신 중 서무공에게 “황후가 중병을 앓고 있는데 태의들이 계속해서 치료하고 있지만 백약이 무효하오. 경은 어디에 명의가 있는지 아시오?”라고 물었다.

서무공은 그 말을 듣고 곧 이어서 손사막(孫思邈)을 태종에게 추천하였다.

“신은 일찍이 듣기로 화원현(華原縣) 민간 의사로 손사막이 있다고 합니다. 그는 종종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여러 곳에서 약을 수집하는데, 특히 부인과와 소아과에 능숙하다고 합니다. 난치병은 일단 그가 손을 대면 묘수를 되찾을 수 있고 약으로도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인의 견해로는 그를 궁으로 불러들여 황후를 치료해 주는 것이 좋을 것으로 사료되옵니다.”라고 했다.

서무공의 말을 들은 당 태종은 수긍했다. 그래서 사신을 보내어 밤을 새워 화원현으로 보내 손사막을 황궁으로 불러들였다.

당 태종은 손사막이 도착하자마자 즉시 그를 불러 “손 선생의 의술이 뛰어나 만인을 회생시키는 공이 있다고 들었소. 황후가 중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져 특별히 선생을 부른 것이니 호전되면 반드시 큰 상을 내리겠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봉건사회로 남녀가 친(親)하지 않았다. 그래서 의례와 가르침에 따라 어의라도 궁내 부녀자를 진찰할 때 대부분 가까이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구술에 따라 처방을 받아야 했다.

손사막은 게다가 민간 의사로 무명베 옷차림으로 옷을 평범하게 입고 있었다. 그래서 황후의 봉체(鳳體)에는 더더욱 접근할 수 없다. 손사막은 제대로 진료가 안 될 것을 미리 간파하고서는 황후를 모시는 궁녀를 불러냈다.

그래서 궁녀에게 황후의 병세를 자세하게 물었다. 더불어서 담당 어의가 지금까지 작성해 놓은 병력과 처방전을 받아서 꼼꼼히 검토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근거하여 이미 황후의 병세를 거의 파악하였다.

손사막은 황후의 내실에 들어왔다. 그러나 짐작대로 황후를 마주할 수 없었다. 황후의 내실에는 큰 발이 쳐져 있었고, 손사막은 발과도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앉아야 했다. 그러니 진맥을 할 수 없었다. 황후는 의식도 명료하지 않아 물음에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떻게든지 진찰을 해야했다.

손사막은 붉은 실을 꺼냈다. 그리고 궁녀에게 실의 한쪽 끝을 쥐여 주고 황후의 오른쪽 손목에 매라고 부탁했다. 그러고서는 나머지 한쪽을 발에 통과시켜 자신의 앞쪽까지 당겼다. 손사막은 실을 팽팽하게 당긴 후 손가락을 실에 대고 진맥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껏 아무도 보지 못했던 진맥법이었다. 이것을 인선진맥(引線診脈) 혹은 현사진맥(懸絲診脈)이라고 한다.

손사막은 실 끝에 손가락을 대고 마치 사람의 손목에 진맥하듯이 정신을 집중했다. 황후의 요골동맥이 뛸 때마다 실을 통해서 느껴지는 진동을 파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황실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서 “손사막은 신의(神醫)로다.”라고 놀라워했다.

손사막은 진맥을 마친 후 “이것은 난산(難産)입니다. 황후의 태실 속의 태아의 심장이 약하고 위치가 불순(不順)한 것이 원인으로 그래서 10개월이 넘도록 태아가 나오지 않으니 중병에 해당합니다.”라고 했다.

당 태종은 “그럼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 것인가?”하고 물었다.

손사막은 “궁녀에게 대나무 발 가까이에 왕비의 손을 잡도록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침을 찌르면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손사막은 궁녀를 시켜서 황후의 왼손을 발 가까이 대게하고 가운데 손가락을 발 사이로 내밀게 했다. 손사막은 침으로 왼손의 가운데 손가락 끝에 있는 중충혈(中衝穴)을 강하게 찔렀다. 황후는 아파서 비병을 지르면서 온몸을 부들거리며 떨었다. 그러자 잠시 후 갓난아이 소리가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궁녀가 급하게 뛰쳐 나왔다.

“황제 폐하, 황후께서 손사막에게 침을 맞은 후 황자(皇子)도 무사히 태어났고 황후 의식도 되돌아왔습니다.”라고 했다. 훗날의 당 고종이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당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손사막에게 “손 선생은 과연 의술이 심오하고 회춘(回春)케 하는 묘수가 있으니 확실히 당대의 명의로소이다! 오늘의 치료는 대단하오.”하고 말했다.

태종은 손사막에게 좋은 말 한 필과 비단 백 척, 천 냥의 황금을 선물했고, 벼슬을 하사하고자 했다. 그러나 손사막은 금은 보화는 물론이고 벼슬 또한 사양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다.

손사막의 현사진맥은 의사들에게 회자되었다. 그래서 이후로 궁의 어의들은 왕비와 후궁을 진찰할 때는 현사진맥을 시도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청나라 건륭제 때 일이다. 건륭제의 공주가 병에 걸렸다. 그런데 건륭제는 어의들이 현사진맥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공주를 진찰하기 전에 어의를 시험해 보고자 했다.

우선 발을 몇 겹을 쳐 놓고 어의가 안쪽을 보지 못하게 했다. 어의는 단지 얼마 전 혼례를 올린 공주를 진찰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어의는 길게 늘어뜨려진 실을 통해서 진맥을 하고 나서는 황제를 기쁘게 하려고 웃으면서 “황제 폐하께 아뢰옵니다. 이것은 분명 희맥(喜脈)입니다.”라고 했다. 희맥은 임신맥을 뜻한다.

건륭제는 어의의 말을 듣자마자 속으로 웃으며 말했다. “이 가는 실로 진맥을 했다는 것인가? 지금 희맥이라고 했는가? 짐은 이를 믿지 못하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어의는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신은 지금껏 진맥을 했지만 한 번도 착오가 없었습니다.”라고 했다.

건륭제는 내시를 시켜서 발을 걷어 올리고 어의를 이끌고 안을 살펴보도록 했다. 그런데 명주실은 공주의 손목이 아니라 걸상다리에 매어져 있었다. 어의는 이것을 보고 깜짝 놀라 기절할 뻔했다. 이것은 황제를 속인 것으로 필경 죽임을 면치 못할 불경죄였다.

어의는 당황해하면서 바닥에 황급히 엎드렸다. 엎드려서 보니 걸상 다리에 작은 구멍이 하나 보였다. 어의는 노련했기에 침착하게 한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황제 폐하, 이 걸상 다리를 쪼개면 제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건륭제는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서도 즉시 내시에게 명하여 날카로운 도끼를 꺼내 걸상다리를 쪼갰다. 그랬더니 곁에서 봤던 구멍이 있는 곳 안쪽에 애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의는 다시 급히 무릎을 고쳐 꿇고서는 “이것 보십시오. 이것은 목(木)의 임신이기에 제가 희맥(喜脈)이라고 한 것입니다”라고 했다.

황제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때서야 황제는 어의에게 비로소 병든 공주를 진찰하도록 명했다. 그러나 어의는 땀을 뻘뻘 흘려 옷자락까지 흠뻑 젖었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어의는 공주를 현사진맥을 통해서 진맥했고 진맥 결과를 황제께 고했다. 어의의 진단은 거의 들어맞았다. 어의는 역시나 평소에 내시와 궁녀들을 통해서 후비나 공주의 생활습관, 식습관, 대소변 상태, 수면상태 등을 파악해 왔기 때문에 현사진맥을 통해서 병세를 알아낸 것처럼 말할 수 있었다. 어의는 이렇게 무사히 위기를 넘겼다.

당나라 때 약왕(藥王)으로 칭송받던 손사막이 실제로 손목에 실을 매달아 진맥했는지를 알 수 없다. 설령 실제로 시도를 했던 진맥법이라 할지라도 병세를 파악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의문이다. 그의 저서인 <천금방> 등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손사막 시대의 옛날의 의사들은 진맥하는 능력이 요즘보다 탁월했을 것은 분명하다. 촉각과 집중력이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뛰어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사진맥(縣絲診脈)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불가능한 진맥법으로 봉건적 남녀유별(男女有別)한 시대가 만들어 낸 웃지못할 촌극(寸劇)에 불과하다.

* 제목의 ○은 ‘실’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중국고사> ○ 長孫皇後與懸絲診脈. 唐貞觀年間太宗李世民的長孫皇後懷孕已十多個月不能分娩, 反而患了重病, 臥床不起. 雖經不少太醫醫治, 但病情一直不見好轉. 太宗每日愁鎖眉頭, 坐臥不寧. 有一日, 唐太宗理完朝政以後, 留大臣徐茂公問道:“皇後身患重病, 經太醫不斷診治, 百藥全無效果. 卿可知哪裏有名醫? 請來爲她繼續治療才是” 徐茂功聞言, 便將孫思邈推薦給太宗說道:“臣早聽說華原縣(今耀縣) 有位民間醫生孫思邈, 常到各地采藥爲群眾治病, 對婦兒科尤其擅長. 疑難之症一經他手, 都能夠妙手回春, 藥到病除. 以臣之見, 還是將他召進宮來, 爲皇後治療才好!” 唐太宗聽過徐茂功的一番話後, 表示同意. 便派遣使臣馬不停蹄, 星夜奔赴華原縣, 將孫思邈召進了皇宮. 唐太宗見孫思邈已經來到, 便立即召見了他, 說道:“孫先生醫術超群, 有起死回生之功, 皇後身患重病, 昏迷不醒, 特請先生前來治療, 若能好轉, 寡人定有重賞.” 但是, 在封建社會, 由於有男女授受不親的禮教束縛, 醫生給宮內婦女看病, 大都不能夠接近身邊, 只能根據旁人的口述, 診治處方. 孫思邈是一位民間醫生, 穿著粗布衣衫, 皇後的鳳體他更是不能接近的. 於是他一面叫來了皇後身邊的宮娥采女細問病情, 一面要來了太醫的病曆處方認真審閱. 他根據這些情況, 作了詳細的分析研究, 已基本掌握了皇後的病情. 然後, 他取出一條紅線, 叫采女把線系在皇後右手腕上, 一端從竹簾拉出來, 孫思邈捏著線的一端, 在皇後房外開始 ‘引線診脈’了. 沒有多大工夫, 孫思邈便診完了皇後的脈. 原來, 孫思邈醫術神奇, 靠著一根細線的傳動, 竟能診斷清人體脈搏的跳動. 這就是他被群眾稱爲神醫的原因. “萬歲! 民醫已對病症經過了查問診脈, 診斷其爲胎位不順, 民間叫做小兒扳心, 故而難產十多個月不生, 致使皇後身患重病.” 孫思邈診斷完畢, 向太宗稟告了病因. 唐太宗聽完以後, 問道:“孫先生言之有理, 但不知你打算怎樣治療?” 孫思邈答道:“只需吩咐采女, 將皇後的手扶近竹簾, 民醫在其中指紮上一針即見效果.” 於是采女將皇後左手扶近竹簾, 孫思邈看准穴位猛紮了一針, 皇後疼痛, 渾身一顫抖. 不一會兒, 只聽得嬰兒呱呱啼哭之聲, 緊接著采女急急忙忙跑出來說道:“啟稟萬歲, 皇後被孫醫師紮過一針後,產下了皇子, 人也蘇醒了!” 唐太宗聞言大喜, 對孫思邈說道:“孫先生果真醫理精深, 妙手回春, 確實是當代名醫!” (장손황후을 현사진맥하다. 당나라 정관 연간에 태종 이세민의 장손황후가 임신한 지 10개월이 넘었는데도 출산을 못하고 중병에 걸려 앓아누웠다. 많은 태의의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태종은 매일 미간을 찌푸리고 안절부절못했다. 어느 날 당 태종이 조정의 일을 마치고 나서 대신 서무공에게 물었다. “약은 효과가 없다. 유명한 의사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가? 계속 치료하도록 하라.” 서무공은 이 말을 듣고 손사막을 당 태종에게 추천하면서 말했다. “화원현에 민간의사 손사막이라는 의사가 있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들어왔습니다. 그는 종종 여러 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을 수집했고, 특히 산부인과와 소아과에 능숙합니다. 그 사람은 치료할 수 있을 텐데, 소인의 생각에는 그를 궁궐로 불러내어 왕비를 치료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서무공의 말을 듣고 당 태종은 이에 동의하여 별이 빛나는 밤에 화원현에 쉬지 않고 사신을 보내 손사막을 궁궐로 불러들였다. “손사막 당신은 의술이 뛰어나고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고 들었다. 왕비가 중병에 걸렸고 의식도 없어서 특별히 당신을 불러 치료를 받고자 한다. 만약 능히 호전이 되면 과인이 큰 상을 내리겠다.”라고 했다. 그러나 봉건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가 ​​친밀해서는 안 된다는 예법 때문에 궁궐에서 여자를 진료하는 대부분의 의사들은 그들과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단지 타인의 설명과 진료기록 등을 보고서 판단할 수 밖에 없었다. 손사막는 민간의사로서 거친 옷을 입고 있어서 왕비의 봉황 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왕비 옆에 있는 궁녀에게 연락해서 상태를 자세히 알아보고 동시에 어의의 진료기록부와 처방전을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 이를 바탕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연구를 진행한 결과 왕비의 상태를 기본적으로 파악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그는 붉은 실을 꺼내서 채녀에게 왕비의 오른쪽 손목에 실을 묶고 대나무 커튼에서 한쪽 끝을 당겨달라고 요청했다. 손사막은 실의 한쪽 끝을 잡고 실을 잡고 맥을 잡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손사막은 진단을 시작했다. 손사막의 의술은 너무나 신기해서 실의 파동을 통해 사람의 맥박을 진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대중들에게 기적의 의사로 불렸다. “황제 폐하, 민간인 의사인 제가 병을 살펴보니 맥박을 진단한 결과 태아의 위치가 이상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민간에서는 이것을 태아의 심장이 아프다고 합니다. 그 결과 왕비는 10개월이 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는 중병에 걸린 것입니다.” 손사막은 진단을 마친 후 당 태종에게 병의 원인을 알렸고, 이 말을 들은 당 태종은 “손 선생의 말씀은 일리가 있지만 어떻게 치료할 생각인 지 모르겠다.”라고 물었다. 손사막은 “채녀에게 대나무 발 가까이에 왕비의 손을 잡도록 요청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제가 침을 찌르면 효과가 나타날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래서 채녀가 왕비의 왼손을 대나무 발 가까이에 대고 손사막은 혈점을 찾아 침을 놓자 왕비는 온몸을 아파하며 떨었다. 잠시 후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더니 채녀가 급히 달려가서 말하기를 “황제께 아뢰옵니다. 황후가 손사막에게 침을 맞은 후 황자를 낳고 의식도 깨어났습니다.”라고 했다. 당 태종은 크게 기뻐하며 손사막에게 “손 선생은 과연 의술이 심오하고 묘수가 회춘하니 확실히 당대의 명의다.”고 말했다.)
○ 乾隆皇帝與懸絲診脈. 一日乾隆皇帝宣禦醫看病, 禦醫不知那位妃子染恙, 心想先討吉利再說. 於是就在懸絲上診了一會兒脈後, 喜形於色地說 : “啟稟萬歲, 喜脈!” 乾隆一聽, 暗地笑了, 說道“憑這根細絲診脈看病?朕不信!” 禦醫忙磕頭道:“臣診脈, 從未有過差錯.” 乾隆命太監帶禦醫去看懸絲另一頭. 原來, 皇帝想試試禦醫的本領, 絲線的另一端並未系上病人的手腕, 而是系在凳腿上. 禦醫看了大吃一驚, 險些嚇暈——這可欺君之罪啊! 但他不愧有經驗的老禦醫, 稍定了一下神, 他搬起凳子細細查看一遍後, 說:“敢請劈開凳腿, 便知微臣講的真假.” 乾隆立即命太監取出利斧劈開凳腿, 只見凳腿中有一小蛀洞洞內有只小蟲正蠕動, 禦醫忙跪奏:“萬歲請看此爲木之孕也, 叫喜脈.” 皇上一聽, 面露喜色點頭表示認同, 這才命其給正生病的格格診治. 此這位禦醫已嚇得大汗淋漓, 連衣襟都濕透了. (건륭황제와 현사진맥. 어느 날 건륭제가 어의에게 진찰을 부탁했는데, 어의는 후비가 아픈 것을 모르고 먼저 행운을 빌고 싶어서 현사진맥을 통해 확인했다. “황제 폐하께 아뢰오. 임신맥입니다!”라고 했다. 건륭은 이 말을 듣고 몰래 웃으며 “이 얇은 실로 맥박을 진단할 수 있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다!”라고 말하자 어의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저는 맥박을 통해 판단하는 데에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사옵니다.” 건륭제는 내시에게 명령하여 어의를 데리고 실의 묶인 반대쪽 끝을 보게 하였는데, 알고 보니 비단실의 반대쪽 끝은 환자의 손목이 아닌 의자 다리에 묶여 있었다. 어의는 그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거의 기절할 뻔했다. 이것은 황제를 속인 범죄다. 그러나 그는 노련한 황실 어의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그는 잠시 진정한 후 의자를 들어 올려 유심히 살펴보며 말했다. “감히 의자 다리를 쪼개면 신이 말씀드린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건륭은 즉시 내시에게 명령하여 날카로운 도끼를 꺼내 의자 다리를 쪼개어 보니 의자 다리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 속에서 작은 벌레 한 마리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의가 무릎을 꿇고 말했다.
“황제 폐하, 이것은 나무의 임신이기에 이 또한 임신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황제는 행복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그에게 병든 공주를 진단하고 치료하라고 명했다. 어의는 너무 겁에 질려 땀을 많이 흘리고 옷까지 흠뻑 젖었다.)

* 상기 관련 고사 출처 : 중국 <백도백과(百度百科)> 사이트의 ‘懸絲診脈’ 관련 내용임.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