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의 후티 반군 난동에 시베리아 철도로 물류 몰려
지난해 12월 이후 러시아 철도 수요 41% 증가
아프리카 돌아가는 해운보다 수송 빨라
경제 제재 받던 러시아 철도 기업들, 수수료 수입에 호황
지난해 11월 29일 핀란드 남동부 라펜란타에서 러시아 기관차가 화물을 끌고 러시아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AP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태로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는 뱃길이 위험해지면서 러시아 국영기업이 떼돈을 벌고 있다. 해운사들이 지름길 보다 5배 이상 오래 걸리는 우회로를 선택하면서 러시아의 시베리아 철도로 화물을 옮기는 화주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이후 시베리아 철도 이용 급증
독일 물류업체 DHL은 10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를 통해 러시아 철도로 화물을 옮겨달라는 요청이 지난해 12월 이후 40% 증가했다고 밝혔다. 독일과 폴란드에 본부를 둔 물류기업 레일게이트유럽도 러시아 철도 수요가 1년 전에 비해 25~30% 증가했다고 밝혔으며 네덜란드 물류기업 레일브리지카고 역시 같은 수요가 전년 동기 대비 31%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철도 물류를 관리하는 러시아 기업인 유라시아철도연합은 지난 1월에 중국에서 폴란드로 향하는 물류량이 TEU(길이 6m 컨테이너 1개) 기준으로 1만4532TEU였다며 전년 동기보다 36% 많았다고 밝혔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지난 2022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여러 러시아 기업들을 제재했다. 시베리아 철도를 포함한 대부분의 러시아 철로를 관리하는 국영기업 러시아철도공사(RZD) 역시 제재 대상이었다. RZD의 올레그 벨로죠로프 최고경영자(CEO)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졌으며 2022년 4월에 제재 명단에 올랐다. 유럽연합(EU)은 RZD가 일부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동시에 EU 화물이 러시아·벨라루스를 드나들지 못하도록 사실상 차단했다.
다만 러시아에서 화물을 싣거나 내리지 않고 그대로 통과하기 위해 러시아 철도를 이용하는 것은 제재 대상이 아니다. 스위스의 퀴네앤드나겔(Kuehne+Nagel), 덴마크의 머스크 등 일부 물류기업들은 제재의 구멍에도 불구하고 2022년 2월부터 자체적으로 러시아 철도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
DHL은 수에즈 운하와 홍해를 이용할 경우 중국에서 북유럽까지 해운으로 화물을 운반하는데 7~10일 정도 걸린다고 설명했다. 반면 중국 남서부에 위치한 쓰촨성 청두에서 독일 서부 뒤스부르크까지 러시아 철도로 화물을 운송하면 약 25~30일이 걸린다. 운반 규모 역시 현대적인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한 번에 약 2만4000TEU의 짐을 옮긴다. 지난 1월 유라시아철도연합이 언급한 운송량(1만4532TEU)은 선박 1척의 수송량에도 못 미친다.
지난 7일(현지시간) 홍해의 예멘 앞바다에서 촬영된 사진 속에서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침몰한 영국 소유 벌크선 '루비마르'호의 선수가 일부 물 위로 솟아 있다.AFP연합뉴스
혼란한 홍해 피해 안전한 육로 선호
화주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를 찾는 이유는 안전 때문이다. 예멘의 후티 반군은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충돌하자, 같은해 12월부터 이스라엘 및 서방을 견제한다며 홍해와 수에즈 운하를 지나는 선박을 본격적으로 공격했다. 이에 머스크를 비롯한 물류 기업들은 수에즈 운하 대신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 대륙을 둘러가는 우회로를 이용했다. 그 결과 중국·북유럽을 잇는 뱃길은 50~55일 거리로 늘어났다.
퀴네앤드나겔의 마이클 알드웰 해상물류 부사장은 홍해 상황 때문에 아시아에서 철도를 이용해 유럽으로 화물을 보내는 수요가 늘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싼 화물의 경우 철도 수송 수요가 항상 많았다”고 덧붙였다.
레일게이트유럽은 자신들이 직접 RZD와 거래하지 않고 독일 국영 철도기업 도이체반을 통해 화물 수송 예약만 잡아준다고 강조했다. 이에 도이체반은 자신들이 그저 중개인 역할만 한다고 밝혔다. FT는 RZD가 결과적으로 화물 수송비 및 철도망 이용료 모두를 가져간다고 지적했다.
매체는 유럽 화물의 대부분이 벨라루스와 러시아, 카자흐스탄을 통과하는 ‘서부 통로’를 통해 중국으로 이동한다고 설명했다. 러시아와 몽골을 통해 중국으로 향하는 ‘북부 통로’도 있다. FT는 아예 러시아에 진입하지 않고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으로 연결된 ‘남부 통로’도 있지만 해당 노선의 경우 카스피해에서 페리선 이용이 필수라며 서부나 북부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고 설명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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