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S '불완전 판매' 민낯
손실위험 커지는데 목표는 높여
투자성향 임의 조정 등 비일비재
#. 지난 2021년 3월 A은행 판매직원은 영업점을 찾은 87세 고령 투자자 B씨의 투자성향 분석을 했다. 투자성향 분석을 마친 뒤 판매직원은 B씨에게 '예금을 선호하는 것으로 체크하면 홍콩H지수 기초 ELS상품 가입이 안 되기 때문에 가입할 수 있도록 투자성향을 상향했다'고 안내했다. 지난 2021년 6월 C은행 영업점에서도 고령 투자자의 투자성향 분석을 조작하는 등 무리한 영업행태가 벌어졌다. C은행 판매직원은 투자성향 분석을 하는 과정에서 87세 D씨가 청력이 약해 '들리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겠다'는 취지로 얘기했는데도 '이해했다'고 답할 것을 반복 요청했다. '중도해지수수료'에 대해서도 '가능하면 해지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라고 거짓 설명했다.
올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에서 약 6조원의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H지수 기초 ELS 판매사들이 투자자 손실 위험이 확대되는 시기에도 판매한도를 오히려 확대하거나 영업목표를 과도하게 설정하는 등 전사적으로 상품 판매를 독려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영업점에서도 투자자 성향 분석 결과를 왜곡하거나 고객 대신 대리가입 또는 허위녹취를 하는 등 불완전판매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금융감독원은 11일 "홍콩H지수 기초 ELS 판매사 11곳에 대해 현장검사 및 민원조사를 실시한 결과 본점의 판매시스템 설계 미흡으로 인한 판매규제 위반 및 일선 판매현장의 다양한 불완전판매 사례 등 위법·부당사항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 1월 8일부터 이달 8일까지 2개월간 5개 은행(국민, 신한, 하나, 농협, SC제일)과 6개 증권사(한국투자, 미래에셋, 삼성, KB, NH, 신한) 등 총 11개 주요 판매사에 대해 현장검사 및 민원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현장검사 및 민원조사 결과 △본사 차원에서 무리한 실적경쟁 조장(판매정책·고객보호 관리체계 미흡) △고객 투자성향 고려 소홀(판매시스템 부실) △영업점 단위 불완전판매 등의 문제가 포착됐다.
판매사들은 H지수의 변동성이 확대되는 시기에 오히려 영업목표를 상향하고 영업점에서 ELS 판매를 확대하도록 성과지표를 설계해 전사적으로 판매를 독려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험상품 투자에 적합하지 않은 고객에게 상품판매가 가능하도록 상품판매 기준을 임의조정한 사례도 확인됐다.
일부 판매사는 투자자 성향분석 시 필수 확인항목을 누락하고, 고난도 장기위험상품에 부적합한 투자자에게 판매가 가능하도록 판매시스템을 설계하기도 했다. ELS 상품 판매 시 설명해야 하는 손실위험 시나리오, 투자 위험등급 유의사항 등을 누락하거나 왜곡하는 사례도 확인됐다.
개별 영업점에서도 판매 과정에서 다양한 형태의 불완전판매가 발생했다. 안정적 성향의 투자자에게 투자성향을 상향하도록 유도하거나 영업점 방문이 어렵다는 투자자를 대신해 투자성향진단설문지, 상품가입신청서 등을 대리작성·서명하는 식이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불완전판매 사례는 개별 판매사의 일탈로 보기 어렵다"며 "특히 은행의 경우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불완전판매가 반복된 데는 금융당국의 책임도 일정 부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부원장은 "불완전판매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상황 반복이 제도에 기인하는지, 관행이나 조직문화가 더 큰 원인인지 면밀하게 진단하고 본격적으로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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