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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불완전판매 근절로 금융 후진국 오명 벗어야

금감원, ELS 배상 기준안 공개
느슨한 판매 규제안도 개선하길

[fn사설] 불완전판매 근절로 금융 후진국 오명 벗어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열린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관련 분쟁조정기준안 발표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의 투자손실을 배상해주는 기준안이 나왔다. 금융감독원이 11일 발표한 분쟁조정기준안에 따르면 판매금융사는 투자자 손실에 대해 최저 0%에서 최대 100%까지 배상하는 안이 담겼다. 과거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당시 투자손실의 40∼80%로 잡았던 기준보다 폭이 더 넓다. 다만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별 특성에 따라 배상비율이 정해지도록 세밀하게 설계했다.

이번 분쟁조정기준은 시장에 미칠 충격과 갈등을 최소화하도록 절묘하게 고려한 듯하다. 40만계좌 가까이 팔린 H지수 ELS의 예상 투자손실이 6조원에 육박하고 있어 배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고 배상요구를 다 들어주면 투자자가 책임지는 시장원칙이 무너질 우려가 크다. 이날 발표된 기준은 억울하게 손실을 본 투자자는 합당한 보상을 받게 하되,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적정선을 찾은 셈이다.

진통 끝에 배상기준안이 나왔지만 이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부터 시작이다. 당장 판매사들이 배상 대상자와 배상 규모에 대해 불만을 피력할 소지가 크다. 배상비율을 정하는 기준은 판매사 요인(최대 50%)과 투자자 고려요소(± 45%p), 기타요인(±10%p)이다. 그런데 기준을 판단하는 건 판매사 자율이다. 어떻게든 판매사가 책임을 회피하려는 행태가 벌어질 수 있다.

배상기준안을 폭넓게 잡으면서도 책임 소재에 따라 세밀하게 구분, 논쟁의 소지를 줄였다. 그러나 이처럼 자율적이고 디테일한 기준선이 고무줄 잣대로 변질될 우려도 있다. 따라서 투자자가 판매사의 배상 결정에 불복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금감원이 이 같은 사태에 대비하는 절차를 탄탄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가장 큰 과제는 불완전판매 관행을 뿌리 뽑는 것이다. 금감원이 배상 기준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은행·증권사에 대한 현장검사를 실시한 바 있다. 이 결과 판매정책·고객보호 관리실태가 부실하고 개별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가 있었던 점을 확인했다.

애초 이번 사건이 불거졌을 때 투자 손실을 본 금융소비자들이 무리한 배상을 요구하는 것 아닌가 우려하기도 했다. 그런데 현장 조사를 해보니 불완전판매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었다. 개별 영업점에서 대리가입이나 서류 변조와 같은 불완전판매 행위가 적발된 것이다. 고령 투자자에게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를 위반한 사례도 확인됐다고 한다. 무리하게 영업목표를 높여 잡고 판매직원들에게 과도한 실적경쟁을 조장한 데 따른 부작용이 실제로 벌어진 것이다. 국내 금융소비자 보호실태가 이렇게 낙후됐다는 점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금융선진국으로 거듭나려면 거래관계에서 신뢰가 돈독해야 한다. 불완전판매야말로 금융업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는 최대 적이다. 어쩌다가 대형 불완전판매 사고가 되풀이되는지 답답할 따름이다. 금융당국은 이번 ELS 손실사태를 해결할 때 불완전판매에 따른 배상이 합리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기 바란다.


판매사들의 배상안이 총선 기간에 이뤄지는 탓에 소비자의 불만이 커질 수도 있다. 배상 논란이 법적 다툼으로 이어져 장기화되면 사회적 비용만 늘어날 뿐이다. 아울러 이번 검사 결과를 토대로 다시는 고위험 상품에 대한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판매 규제방안을 꼼꼼하게 검토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