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이 내놓은 분쟁조정 기준안
'해석' 필요한 정성적 지표 많아
기본배상만 20%p 차이 날수도
판매사-가입자 법적분쟁 불가피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피해자들이 지난 15일 오후 서울 중구 한 은행 본사 앞에서 '대국민 금융 사기 규탄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금융당국이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사태와 관련해 지난주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지만 금융회사와 소비자 간 기본배상비율만 최대 20%p 차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하는 항목이 있는 반면 일부 항목은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는 회색지대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금융회사와 투자자 간 추가적인 법적 분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번 분쟁조정기준안을 분석해 봤을 때 ELS 가입 횟수, 규모, 투자자 나이 등 배상비율을 정량적으로 산출할 수 있는 지표도 있지만 그 반대로 정성적 지표의 비중이 작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분쟁조정기준안과 함께 적용 시 배상비율 예시도 제시했지만 결론 내리기 어려운 '빈칸'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판매사 요인으로 기본배상비율을 결정하는 적합성 원칙, 설명의무 위반이나 부당권유 행위에 대해 의견이 엇갈릴 소지가 있다. 먼저 판매사가 상품 판매 시 소비자 재산상황, 투자경험 등 고객정보를 기초로 적절한 상품을 권유하지 않았을 경우 적합성 원칙을 위배했다고 판단될 수 있다. 만일 노후를 대비해 은퇴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할 목적의 은퇴자에게 ELS 같은 파생금융상품 투자를 권유하는 것은 투자목적 등에 적합하지 않으므로 적합성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이에 대해 금융권 관계자는 "우리가 갖고 있는 돈은 전부 노후준비자금으로 볼 수 있다"면서 "이렇게 판단한다면 (H지수 기초 ELS상품 투자의) 모든 경우가 다 해당한다"고 밝혔다.
기본배상비율은 적합성 원칙과 설명의무 위반, 부당권유 등 3가지 원칙 가운데 몇 가지를 위반했는지에 따라 최대 20%p까지 배상비율이 차이날 수 있다. 한 개 위반 시 20~25%에서부터 세 개 모두 위반 시 40%까지 기본배상비율을 정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세 가지 불완전판매 항목 중 몇 개가 위반인지 기준을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배상비율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금융당국이 제안한 배상비율이 너무 낮다는 투자자들의 불만과 일맥상통한다는 분석이다. 실제 분쟁조정기준안 발표 직후 한 투자자 커뮤니티에서는 확실한 입증자료가 없다면 금융회사를 상대로 싸워서 이기기 어렵다며 낙담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 외에 각각 최대 10%p 배상비율을 가산하도록 한 '내부통제 부실'과 '예적금 가입목적 고객' 항목 등에 대해서도 일부 잡음이 나온다. 내부통제 부실 여부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판단해야 할 문제이고, 모든 고객은 예적금 가입을 목적으로 은행을 방문하지만 이 중 더 높은 금리를 받기 위해 ELS 가입을 선택하는데 '무 자르듯' 배상비율을 가산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분쟁조정) 기준안을 봐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며 "사실상 이만큼(20~60%) 배상하라는 암묵적 시그널을 보낸 게 아니냐"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어떻게 입증하고 실제 적용을 어떻게 할지 조사가 더 이뤄져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금융권에서는 다음주를 자율배상 발표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다. 오는 22일부터 금융지주 주주총회가 줄줄이 예정된 만큼 그 전까지 이를 확정해야 최종 배상 규모에 대해 주주동의를 받고 이사회 의결까지 마칠 수 있다는 설명이다. KB금융·하나·우리금융그룹은 오는 22일, 신한지주는 오는 26일 정기 주주총회를 열 계획이다.
seung@fnnews.com 이승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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