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대통령 선거일을 앞둔 지난 14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내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에 재선이 유력시되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EPA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끝난 대선에서 이변 없이 5선에 성공하면서 앞으로 3년째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에 더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유럽과 서방이 푸틴의 재선을 큰 위협으로 보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과 북한, 이란 같은 국가들은 푸틴의 재선을 환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러시아 위상 끌어올려 지지도 높아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은 마땅한 적수가 없어 쉽게 5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전쟁에 반대하는 후보들은 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서류 문제를 이유로 등록도 못했다. 러시아 언론들은 푸틴을 국민의 후보라고 부르는 등 다른 후보들과는 다른 지도자임을 홍보해왔다.
지난 2022년 전쟁이 아닌 ‘특별군사작전’이라고 명명한 우크라이나 침공에 서방국가 중심으로 강도높은 경제 제재를 실시했으나 푸틴의 통치 기반은 견고했다. 지난해 6월 용병기업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전차를 이끌고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반란 위기도 넘길 수 있었다.
BBC는 러시아인들은 동기나 결과를 떠나 전쟁 중일때는 지도자를 지지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러시아가 아닌 서방국들이 일으켰다는 보도를 믿어왔다고 분석했다. 실제 러시아 국민들은 러시아가 서방 전체에 맞서는 상황을 보며 강대국의 위상 회복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나치 제거',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진 저지' 등 푸틴이 내세운 특별군사작전 명분에 동조하는 현지 여론도 크다. 푸틴은 지난 2000년 처음 대통령 당선됐을 때 ‘강한 러시아’ 정책을 내세우고 그동안 석유와 가스, 식물 등 풍부한 자원을 무기로 세계 경제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지난해 러시아 민간 여론조사기관 레바다센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푸틴의 지지율은 줄곧 80%를 웃돌았다.
우크라 전쟁에 더 주력 예상
그동안 푸틴은 여러 인터뷰와 연설에서 대선 이후 계획들을 시사해왔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최우선이 될 것임을 예고해왔다.
미국 워싱턴DC 소재 미국평화연구소의 고문 안젤라 스텐트는 월스트리트저널(WSJ)과 가진 인터뷰에서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은 '국가적인 전쟁'이며 자신은 세계에서 러시아의 역할을 지키고 자국 영토를 보존하려는 지도자임을 이번 대선을 통해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그가 예고한 것은 전쟁은 계속 이어가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서방국들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이 시들어지는 틈을 푸틴이 러시아군의 2차 군 동원령을 내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2022년 9월 30만명을 징집했을 당시 전문직 종사자들을 포함해 청년 수십만명이 해외로 도피하는 것을 경험한 러시아 정부는 방지를 위해 국경 폐쇄 같은 조치를 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미국평화연구소의 스텐트 고문은 설문조사에서 러시아 국민들의 다수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지하고 있지만 “가장이나 아들, 형제를 전장으로 보내게 된다면 달라진다”라며 2년전처럼 또다시 반발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 전문가들은 징집 병사들에게 수당 지급을 늘리고 의무 복무 병사들의 전장 투입 규모를 늘릴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러시아법에 따라 의무 복무 병사들이 우크라이나 전투에 참가할 수 없고 복무를 마친 예비군들은 동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WSJ는 이번 대선에서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의 가족들이 투표함에 불을 붙이는 것 같은 행동들이 있었다며 앞으로 러시아 정부가 국내에서 전쟁 반대 시험대를 맞을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평화연구소의 스텐트는 푸틴 대통령이 "앞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실시되는 선거 결과에 주목하면서 서방의 우크라이나 지원이 감소하면 어떻게 될지를 기다릴 것”이라며 “현재가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판단하고 계속 우크라이나 전쟁을 최대한 길게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엇갈린 주변국 반응
푸틴의 5선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서방 국가들은 푸틴의 압승은 사실상의 정적 배제와 선거 투명성 훼손 때문이라며 "놀라운 일도 아니다"고 비판했다.
18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에이드리언 왓슨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이 정적들을 투옥하고 다른 사람들의 출마를 막았던 것을 고려할 때 선거는 분명히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았다"며 "(그의 승리가) 새삼스럽지 않다"고 논평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외무장관은 소셜미디어에 "이것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의 모습이 아니다"는 입장을 내놨고 독일 외무부는 "푸틴 대통령의 통치는 권위주의적이며 검열, 억압, 폭력에 의존한다. 선거 결과에 누구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일부 유럽 국가들은 국영 언론이 장악하고 있는 러시아에서 공개적인 정치적 토론이 부재했던 것과, 지난달 교도소에서 사망한 러시아의 가장 유명한 반체제 인사인 알렉세이 나발니 등 정적에 대한 강력한 탄압을 비판했다"고 전했다.
반면 중국과 북한 등은 환영의 뜻을 밝히고 있다.
CNN은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러시아 정치계를 장악하고 있음을 보여줬으며 그의 재선을 서방 주도의 국제 질서에 반대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같은 지도자들이 환영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년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수주전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은 양국간 '무제한' 동반자 관계에 합의하면서 무역과 안보, 외교 관계 강화를 더 긴밀하게 이어왔다.
영국 런던대 SOAS 중국 연구소 소장 스티브 창은 “시진핑 국가주석은 푸틴을 진정한 전략적 동반자로 보고 있다”며 이번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이 압승한 것에 안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CNN은 중국 외에도 푸틴이 재선되면서 권력이 더 강해지는 것을 보게 될 북한, 이란의 지도자들이 박수를 보낼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한으로부터 포탄 구매가 필요했던 러시아를 방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푸틴과의 친밀감을 통해 고전하고 있는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역시 제재를 받고 있는 이란은 러시아에 드론과 탄약을 제공하면서 협력을 강화해왔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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