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폭언으로 극심한 수치심…업무와 사망 인과관계 인정"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우울증을 앓다가 상사의 폭언 등 업무 스트레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 업무상 재해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이정희 부장판사)는 사망한 A씨의 부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지난 2020년 B사에 입사한 A씨는 같은 해 10월 회사 회의실에서 투신해 사망했다. A씨 부모는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하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은 "회사 대표가 망인에게 심한 질책과 폭언 등을 했고, 망인은 정식 채용을 앞두고 해고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꼈다"며 "이로 인해 망인의 우울증이 급격히 악화됐고,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실제 A씨는 사망할 무렵 여자친구와의 대화에서 회사 대표가 질책 등을 했다고 거론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전 일기에는 "생각이 복잡하다. 잘 정리가 안 되고, 이번 주에 일도 잘하려고 했는데, 욕먹었던 대표님의 말들이 자꾸 생각난다. 복기할수록 감정도 함께 올라와서 힘들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재판부는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유족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망인은 스트레스에 취약한 개인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2018년 12월부터 우울증 등으로 치료를 받아왔다"며 "우울증상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했으나,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직장생활을 계속할 정도로 유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망인은 3개월 수습기간 후 채용을 조건으로 이 회사에 입사했고, 3개월 후 해고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상당히 느끼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같은 상황에 회사 대표로부터 여러 차례 질책을 들었고, 사망 전날에는 직원들이 있는 자리에서 '처음 들어왔을 때랑 달리 낯빛이 좋지 않다', '정신질환이 있냐'는 폭언을 들어 극심한 수치심과 좌절감 등을 느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가족관계에서의 스트레스, 지속된 좌절,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있다"면서도 "망인이 받은 업무상 스트레스와 무관하게 오로지 이같은 사정만으로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고 볼만한 근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부연했다.
jisseo@fnnews.com 서민지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