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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톡] AI 차이나와 EV 차이나

[차이나 톡] AI 차이나와 EV 차이나
이석우 베이징특파원·대기자
베이징에서는 백화점과 고급 쇼핑센터 안에 쇼룸을 낸 중국 전기자동차(EV) 브랜드들을 자주 맞닥뜨린다. 귀금속 매장과 화장품 판매점, 고급 여성의류 매장 옆에 나란히 자리한 EV 쇼룸. 가전제품 매장을 찾듯이 부담없이 들어서게 된다. 쇼룸 한쪽에는 휴대폰과 태블릿 등 통신기기들이, 다른 한편에는 새로 출시된 EV를 전시해 놓은 화웨이의 쇼룸 같은 곳도 있다. "휴대폰을 바꾸러 왔다가 자동차를 바꿨다"는 말이 실감 난다.

베이징 왕징의 카이더몰 같은 쇼핑센터나 백화점 안의 자동차 쇼룸은 영역을 뛰어넘는 중국식 융합을 보여준다. 30년 전 중국 현지 자동차회사들이 해외 업체들과 합작을 통해 기술력을 흡수해 자체 기술력과 브랜드 파워를 끌어올리더니, 이제는 EV를 통해 세계 시장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유선을 건너뛰어 무선전화로 가고, 비디오테이프를 거치지 않고 CD·DVD를 거쳐 무선인터넷 플랫폼 시대를 연 중국. 내연기관 경쟁을 건너뛰어 배터리 구동의 EV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

점유율 세계 1위 닝더스다이(CATL) 등의 배터리산업, 화웨이나 알리바바, 샤오미로 대표되는 플랫폼기업 등 IT분야, 희토류 등 필수 원료들의 공급망. 중국 내 산업생태계는 애플이 10년간의 준비에도 EV 시장 진입을 포기했지만, 저가 휴대폰을 만들던 샤오미 같은 업체들은 왜 EV 시장에 뛰어들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샤오미의 오는 28일 출시 등 중국 IT업체들은 새 EV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투자부터 운영시스템 및 소프트웨어 개발 등도 주도한다. 화웨이는 자동차 스타트업 세레스와 함께 EV 아이토 M7 등을 내놓은 데 이어 치루이그룹과 함께 지난해 말에는 룩시드 브랜드 등을 출시하며 도전을 이어갔다. 알리바바그룹은 상하이자동차그룹(SAIC)과 함께 EV 즈지 LS6, LS7 등을 내놓았다.

리창 총리가 지난 5일 전인대 업무보고에서 미래산업 육성을 강조하며 한 첫 언급도 "스마트 커넥티드 신에너지 자동차산업의 선두 우위를 더 공고하게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EV는 중국의 산업·디지털전환의 자신감과 성취를 상징한다. EV 한 대에 중국이 자랑하는 인공지능(AI)과 IT 기술들이 집적돼 있다. 차량 운행 소프트웨어를 휴대폰 소프트웨어 바꾸듯이 한 달에도 몇 차례 이상 바꿔야 한다고 집착하는 스타트업 방식의 사고가 중국 EV산업의 바탕에 깔려 있다. 플랫폼기업 등이 주도하다 보니 제작·판매 접근법도 내연기관에 익숙한 기존 업체들과는 사뭇 다르다. 경제침체 국면에서도 디지털 차이나는 또 다른 패러다임을 그려가면서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고 있다.

"'신형 거국체제'의 우위를 살려 첨단 과학기술의 자립자강을 더 서두르겠다"는 총리의 업무보고도 그냥 빈말은 아니다. 올해 과학기술 예산은 우리의 2.6배 정도인 3708억위안(약 68조7129억원). 전년도에 비해 10% 늘었다. 반도체 등에서 정부와 산학연이 일체가 된 '거국체제'로 "디지털 경제혁신을 이끌겠다"는 의지도 뜨겁다. 부동산 침체와 지방 재정위기 속에서도 첨단 산업·기술을 향한 구조조정은 속도를 냈다.

리 총리는 전인대 폐막 직후인 지난 13일 AI에 사활을 건 '중국의 구글' 바이두 등을 방문하고 AI 기업 대표와 전문가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내세운 '신품질 생산력'의 실천과 '새로운 생산력의 가속화'를 위해 'AI'에 방점을 둔 것이다. 산업 전반에 AI 융합의 고도화로 EV나 배터리, 태양광처럼 다른 분야에서도 세계 선두를 차지하겠다는 야망과 기대가 전인대 목표에 담겼다. 시 주석은 지난 6일 전인대 일정 속에서도 정치협상회의 과학기술 분야 위원들을 따로 만나 첨단 과학기술입국에 대한 지도부의 비전과 의지를 다시 부각시켰다. 지도부의 강한 의지와 장기 비전, 일관되고 지속적인 정책 아래 한걸음씩 첨단화로 나아가는 'AI 차이나' '디지털 차이나'에 대해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 걸까.

june@fnnews.com